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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yden Feb 23. 2018

우리를 힘들게 하는 자, 누구인가

- 관심의 표현을 가장한 무관심

 '취업대란'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은 시대이다. 그칠 줄 모르고 계속해서 얼어붙는 고용환경 탓에, 사회 진출을 코앞에 두고 취업준비생들의 마음은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보통의 취준생들은 청년층들이 대부분이지만, 정년퇴임을 앞두고 재취업을 위해 구직시장을 찾는 장년층의 고민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인생에 있어 고민이 어디 취업 뿐이랴. 좋은 학교 진학에, 결혼에, 육아에... 사연은 다양하지만, 삶은 걱정으로 가득찬 것 같다. 이럴 때 사람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고민을 주변 사람들과 서로 나누면서 도움과 위로를 받고 싶어한다.


 고민을 나누고자 하는 이를 가족으로 두고 있거나, 가까운 관계에 놓인 사람들은 본인의 일이 아님에도 함께 고민하고 걱정하게 된다. 내가 특별히 아끼는 사람이기에, 더 잘됐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지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그래서 이들을 위해 내가 가진 모든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인생 경험, 정보, 조언을 아낌없이 내어 준다. 하지만 이것들이 오히려 당사자에게 더한 압박으로 다가온다는 점은 뜻밖이다. 내가 더 아끼고, 더 잘 해 줄수록 어째 더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다. 내가 의도한 결과는 이런 게 아닐 텐데. 왜 그럴까?


 다시 고민을 가지고 있는 당사자로 돌아가보자. 스스로 주어진 삶을 소화해 내기도 버거운 우리들인데, 그런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주변 사람들이다. 주변 사람들의 조언은 처음엔 참 고맙지만, 정도가 지나치는 순간 우리를 옥죄기 시작한다. 속칭 '오지랖'이다. '다 너를 위한거야'라는 말을 시작으로 주변인들의 가치관에 우리를 끼워 맞추려 한다. 애당초 맞지 않는 퍼즐인데, 억지로 끼워 맞추려니 자연스럽게 충돌이 발생한다. 지난 추석, 인터넷에는 '명절 잔소리 메뉴판'이라는 웃지 못 할 유머까지 돌아다녔다. 특정 잔소리에 맞춰 돈을 받겠다는 취지의 유머인데, 청년들이 친인척의 잔소리에 얼마나 시달렸는지를 방증하는 부분이다. 이런 사람들이 친인척뿐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분명 나와 비슷한 길을 걸었고 고통을 겪은 몇 살 위의 선배들이 허울 좋은 '인생선배'라며 과도하게 가치관을 주입한다. '삶이란 게 원래 다 그래, 그냥 사는 거야.' 또는 '너의 이러한 문제 때문에 그래. 남 탓하지 말고 스스로를 돌아보는게 어때.' 따위의 충고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들어봤을 것이다.

박명수의 어록이 지나간다. / MBC 무한도전

 과연 이러한 오지랖이 관심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오지랖은 관심의 표현이 아닌 무관심이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얼핏 들으면 상대방의 많은 정보를 알고 있고 나의 경험으로 미루어 가장 좋은 길을 제시해 주는 모양새이지만, 그것들은 표면적인 정보에 불과하다. 어떤 목표, 어떤 과정, 어떤 배경. 사실 그것보다 비교도 안 될 만큼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사람의 '내면'이다. 지금 어떤 마음인지, 어떤 기분이 드는 것 같은 지, 나를 둘러싼 외로움은 대체 어디서 오는 지.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말이 불쑥 등장하는 것이다. '야, 삶이란 게 원래 다 그런 거야, 다 힘든 거야.'

당신의 오지랖은 얼마입니까? / MBN 신동엽의 고수외전(종영)

 이럴 때일수록 '역지사지(之)'라는 한자성어를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도와주고 싶은 사람을 도와준다는 것은, 먼저 상대방이 어떤 심정인지를 최대한 헤아리는 것이 먼저다. 물론 어려움의 크기를 가늠하여 나에게 적용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역시 어려움에 빠졌을 때 어설픈 조언을 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정보만을 나열하는 조언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개인의 가치관과 개성을 고려하지 않고 내 멋대로 방향을 결정해주는 태도는 더욱 안 좋다. 외로움에 목말라있는 상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관심은 바로 '사랑'이다.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보다 '네가 어떤 상태여도 나는 널 믿고 사랑해'라는 한 마디가 그 사람을 일으키는 힘이 된다. 어설픈 정보로 위장한 조언과는 확실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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