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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yden Feb 24. 2018

뜨는 히어로, 안 뜨는 히어로

영화 속에 담긴 '캐릭터 플레이'

※ 영화에 관한 내용이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야흐로 히어로 영화 전성시대이다. '어벤저스'를 필두로 한 마블 스튜디오의 히어로 영화들은 이미 흥행 보증수표가 되었다. 마블 시리즈의 가장 최근작인 블랙 팬서(Black Panther, 2018)는 현재까지 관람객 평균 8.42(네이버 영화)의 평점, 로튼 토마토 지수 97%, 상영작 예매순위 1위를 기록하며 선전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마블의 가장 큰 경쟁사로 이야기되는 DC(DC Comics)가 있다. 하지만 요즘 DC는 마블과 비교해 힘이 빠지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DC는 시리즈의 히어로들을 한데 모아 야심 차게 저스티스 리그(Justice League, 2017)를 내놓았지만, 관람객 평균 7.92(네이버 영화)의 평점, 로튼 토마토 지수 40%로 기록을 마감했다.

명작의 반열에 든 크리스토퍼 놀런의 '다크나이트 트릴로지'

 하지만 DC Comics에게도 영광의 순간이 있었다. 배트맨 비긴즈(Batman Begins, 2005)를 시작으로 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다크 나이트(The Dark Knight, 2008)는 아카데미 시상식 8개 부문 노미네이트, 2개 부문 수상(남우주연상, 음향효과상), BBC 선정 미국의 위대한 영화 100선 중 96위, 21세기의 위대한 영화 100선 중 33위에 이르는 등 그야말로 히어로 영화 역사상 최고의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렇듯 '뜨는 히어로'와 '안 뜨는 히어로'의 차이를 만드는 요인은 무엇일까? 정답은 바로 영화가 보여주는 캐릭터 플레이 방식에 있다. 탄탄한 배경 줄거리 구성과 반복되는 사건 해결 속에서 나타나는 캐릭터별 성격 표현이 치밀할수록 영화는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아무리 유명한 히어로 이름을 걸고 나와도 여지없이 무너진다. 이번에는 영화 속의 캐릭터 플레이가 왜 중요한지, 어떤 방식으로 연출해야 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캐릭터 플레이가 중요한 이유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배경지식이다. '어벤저스 히어로'의 경우, 반복되는 시리즈를 통해 관객들에게 캐릭터의 능력, 문제 해결 방식, 성격 등을 어필한다. 그러면 관객들은 영화 관람에 앞서 주인공이 어떤 유형의 인물인지를 알게 된다. 영화에 필요한 배경지식이 자연스럽게 깔리는 셈이다. 그러면 연출자는 새로운 영화를 시작할 때마다 인물들이 어떤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어떤 문제 해결 방식을 가졌는지에 대한 부분을 과감히 생략하고 이야기 전개 과정에 더 많은 힘을 쏟을 수 있다. 그래서 마블 스튜디오는 어벤저스 시리즈를 출시하기 전 캐릭터 각각의 솔로 영화에 많은 공을 들인다. 배경지식이 영화에 미치는 힘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DC 역시 점차 솔로 영화에 힘을 쏟고 있는 모양새다. 워너 브라더스(Warnar Bros.)는 개봉 예정작인 아쿠아맨(Aqua man, 2018)이 초기 테스트 심사에서 유쾌한 반응을 얻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아쿠아맨은 DC를 살리는 히어로가 될 수 있을까? / 영화 아쿠아맨

 배경지식과 더불어, 캐릭터 플레이는 관객들에게 몰입 요소 또한 제공한다. 가지고 있는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관객들은 주인공이 사건을 어떻게 해결할지, 어떤 성격을 보여줄지를 추리한다. 이때, 연출자는 원래 관객들이 기대하는 바와 같은 전개를 보여주거나, 아니면 캐릭터를 살짝 비틀거나 하는 등의 이야기 변주를 할 수 있다. 관객들과 마치 포커 플레이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토르: 라그나로크(Thor: Ragnarok, 2017)에서의 브루스 배너 박사(헐크)는 관객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이미지와 다른 성격을 보였다. 차분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낯선 별에 와서 당황해하는 모습을 통해 신선한 이미지를 안겨주었다.

브루스 배너 박사(헐크)는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 영화 토르: 라그나로크

 그래도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역시 히어로에 대한 관객들의 '감정이입'이다. 제아무리 히어로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내적 갈등 상황을 겪기 때문에 관객들은 캐릭터와 동질감을 느낀다. 그들도 결국 사람인 것이다. 평범한 사람처럼 눈물을 흘리고, 화내며 약점을 보이기 때문에 어렵게 쟁취한 승리가 더욱 값지다. 관객들은 히어로의 고뇌와 약점을 보며 함께 소통한다. 팬을 넘어 자기 자신과 주인공을 동질 시 하게 되는 순간이다. 익히 알려졌듯, DC Comics 최고의 작품인 '다크 나이트'는 주인공의 인간적인 내면을 살려 캐릭터 플레이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그런가 하면 마블 스튜디오의 히어로들도 하나같이 인간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영화가 주인공의 약점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크게 드러내어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캐릭터 플레이'는 비단 히어로물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서사의 흐름을 이끌어나가는 구심점은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이며, 인물의 표현이 섬세하고 치밀할수록 서사는 탄탄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캐릭터 플레이'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좋을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중요한 점은 다음과 같다.


'어벤저스' 히어로의 리더 격인 캡틴 아메리카 / 영화 퍼스트 어벤져

 먼저, 인물들의 개성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캐릭터 플레이'에는 그보다 앞서 배경 설정의 개연성이 중요하다. 마블 히어로 영화의 중요한 특징은 탄탄한 배경 설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인데, '어벤저스' 시리즈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캡틴 아메리카' 역시 솔로 무비 '퍼스트 어벤져(Captain America: The First Avenger, 2011)'에서 배경 설정을 바탕으로 캐릭터의 정체성을 확실히 구축했다. 주인공 스티브 로저스는 2차 세계대전 시기에 활약했던 인물로, 누구보다 투철한 애국심을 바탕으로 군인이 되어 전쟁 중인 조국에 직접 승리를 안겨주고 싶어 했다. 하지만 신체조건이 열악해서 군인이 되기는커녕 매일 불량배들에게 두들겨 맞으며 철저히 외면당하기만 했다. 그런 그가 슈퍼 솔저 프로젝트를 통해 '캡틴 아메리카'로 거듭났을 때, 비로소 내면의 투철한 애국심과 정의감을 발현하는 캐릭터가 된다.

 빈약한 주인공은 슈퍼솔저 프로젝트를 통해 히어로가 된다 / 영화 퍼스트 어벤져

 관객들은 시대적 배경 속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캡틴'의 성격을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이어지는 시리즈에서 '캡틴'은 때로는 고지식할 정도로 정의에 집착한다. 투철한 정의감이 과도해져서 오히려 캐릭터의 약점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고집스러운 성격은 오해를 낳아 스스로 궁지에 몰리기도 하지만, 앞선 시리즈에서 이미 배경으로 제시된 성격을 통해 캐릭터의 행동이 타당한 이유를 가진다. 그래서 영화 속 캡틴의 생각과 행동들이 관객들의 관점에서 억지스럽지 않게 느껴진다. 중심 줄거리를 바탕으로 파생되는 다양한 캐릭터 플레이가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할리 퀸과 친구들 /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

 반대로 배경 설정을 살리지 못해 산으로 가버린 영화도 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Suicide Squad, 2016)'는 다양한 능력을 갖춘 슈퍼 빌런(악당)들이 팀을 구성하여 지구를 위기에서 구해낸다는 영화이다. 기존에 보지 못했던 참신한 설정과 주인공인 '할리퀸(마고 로비 역)'을 통해 초반 관객의 이목을 끄는 데는 성공했으나, 관객들의 공감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다양하고 개성 있는 캐릭터에만 집중한 나머지 '왜 굳이 악당을 중심으로 팀을 꾸려야 하는지'에 대해 충분히 대답해주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난데없는 '할리퀸'과 그의 연인이자 같은 악당 '조커'의 사랑 이야기로 점철되면서 영화가 안드로메다행 티켓을 끊었다. 개성 있는 캐릭터 묘사에만 집착한 결과이다.

다크 나이트를 돋보이게 한 악당 조커(故 히스 레저 역) / 영화 다크 나이트

 캐릭터 플레이의 두 번째 중요한 요소는 캐릭터에 인간의 보편적인 내면과 갈등을 주입하는 것이다. '지구가 위기에 처했는데 전지전능한 주인공이 지구를 구했다'로만 끝나는 영화는 이제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다. 잘 만든 히어로물일수록 주인공의 내면적인 상처와 약점에 집중한다. 앞서 서술하였듯, '다크 나이트'의 경우 악당인 조커에 맞서는 배트맨이 얼마나 인간적인 고뇌를 하는지를 치밀하게 서술하여 명작의 반열에 올랐다. 마블 시리즈의 캐릭터들도 예외는 아니다. 정의에 과도하게 집착하여 스스로 약점을 만드는 '캡틴'은 물론, 아이언맨의 경우 다양한 영화 시리즈를 통해서 부모에게 외면당한 과거의 상처를 드러내는 등 그가 돈 많고 머리 좋기만 한 캐릭터가 아니라는 점을 부각한다. 이렇듯 주인공을 우러러보는 존재가 아닌, 우리의 친구 같은 존재로 만드는 부분은 관객들의 마음을 살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한다. 외적인 문제 해결을 넘어 내면의 갈등 극복을 통해 매번  '뻔한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캐릭터 플레이의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추후 제작 및 개봉을 앞두고 있는 마블의 '어벤저스 : 인피니티 워' 와 DC의 '수어사이드 스쿼드2'

 다양한 영화와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오는 요즈음이다. 많은 콘텐츠가 있으므로 영화감독, PD 등 콘텐츠 생산자들은 매번 어떻게 참신하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까 고민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여전히 사람들은 인간 내면의 갈등과 극복을 다룬 이야기에 열광한다는 점이다. 그 중심에는 개연성 있는 배경 줄거리를 바탕으로 한 캐릭터 플레이가 있다. 올해도 많은 히어로 영화들이 줄줄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많은 사람이 영화의 전개를 예측하고 기대하지만, 영화의 흥행을 판가름하는 진정한 요소는 바로 탄탄한 배경에서 시작되는 '캐릭터 플레이'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새로운 영화들은 어떤 방식으로 각각의 캐릭터를 전개할지,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세계관을 더욱 공고히 할지 영화 속에 녹아 있을 제작진의 고민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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