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디오만의 장점으로 살펴본 라디오의 미래
TV라는 혁신적인 미디어가 생긴 이래, 라디오의 종말론은 항상 회자되어 왔다. The Buggles의 'Video kill the radio star'라는 노래를 당장 들어봐도 비디오가 라디오에서 활약하던 성우들을 다 죽였다는 가사가 반복된다. 그리고 종말론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제는 TV를 넘어 스마트폰을 비롯한 각종 뉴미디어가 쏟아져 나오는 시대이다. 새로운 미디어의 인기에 힘입어 이젠 TV 시청률조차 예전 같지 않은 시대에, 업계에서는 영상보다는 음성 정보를 주로 다루는 라디오는 정말로 수명이 다해간다는 위기론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하지만 라디오는 여전히 살아있다. 오히려 TV와 달리 인터넷 라디오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갔으며, 팟캐스트라는 플랫폼이 현재 뉴미디어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을 만큼 라디오는 여전히 힘을 가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영상 구성의 부담이 없어서 음성정보에만 집중한 플랫폼 특성으로 인한 범용성을 지니고 있다.
물론 TV 매체도 나름의 대안을 찾아가고 있다. CJ의 Tving이나, 지상파 방송사가 모여 만든 pooq 등의 애플리케이션이 그것이다. 시청자들은 해당 앱을 이용해서 소속 방송사의 실시간 채널을 감상할 수 있는가 하면, 추가 요금을 내고 관심 있는 프로그램을 언제든지 다시 볼 수 있기까지 하다. 2020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는 5G 기술은 이러한 시청 행태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다. 약 10초 만에 5Gb가량의 데이터를 수신할 수 있게 되면서, 끊김 없는 고화질 시청이 모바일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모바일 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TV와 라디오 매체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다른 매체와 비교한 라디오만의 경쟁우위는 어디에 있을까? 바로 앞서 말한 음성정보에 집중한 플랫폼 특성이다. 청각과 시각 기관을 온전히 맡겨야 하는 영상매체 시청자들과 달리 라디오 청취자들은 대부분 시각 기관이 자유롭다. 그래서 고된 노동이나 작업을 할 때도 라디오는 청취자의 좋은 친구가 되어줄 수 있으며, 심지어 취침 전에 라디오를 청취하면서 잠을 청할 수도 있다(자동 꺼짐 기능은 이미 널리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멀티태스킹의 장점 덕택에 라디오는 여전히 꾸준한 청취자를 확보하고 있다.
이동하는 중간에 시각 기관을 온전히 프로그램에 맡기지 않기 때문에 획득하는 안전성의 경쟁우위도 있다. 스마트폰 시청 중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가 나거나 운전 중 DMB 시청을 금지하는 법 조항이 만들어지는 등 이동 중 영상매체 이용의 위험성은 심각한 데 반해, 라디오는 시각 기관이 비교적 자유롭다. 이 때문에 라디오를 청취하면서 운전하는 것이 가능함은 물론, 외출하면서 매체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너무 깊게 내용에 빠져들면 역시 위험할 수는 있다)이 라디오가 가진 또 하나의 우위이다. 라디오가 이러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한, 지속 가능한 매체로 꾸준히 자리매김할 것이다.
한편, Siri나 빅스비 등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음성 비서 기술이 점차 발달하면서 라디오 업계에 새로운 위기가 불어닥치고 있다. 영상매체보다 더 큰 잠재력을 가진 경쟁자가 등장한 것이다. 이 때문에 예전에는 좋은 콘텐츠만 만들면 청취자가 자연히 따라온다는 인식이 있었으나, 즐길 거리가 많아진 요즘은 더 이상 무의미한 말이 되어버렸다. 특히, 단순 정보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프로그램은 인공지능과의 출혈 경쟁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청취자들이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짚어내려는 시도가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중요하다. 한 명의 사연과 상담에 집중하면서 음성정보의 전달력과 깊이를 적극 활용하는 '딥 토크 쇼' 프로그램, 독서를 원하지만 바쁜 일상에 치여 안타까워하는 직장인들을 위해 책의 내용을 요약해서 나름의 해석을 덧붙여주는 '책 읽어주는 오디오' 프로그램도 이런 점에서 새롭게 주목할 만하다. 그런가 하면 KBS의 '김생민의 영수증'은 팟캐스트 프로그램이 청취자들의 인기를 얻어 플랫폼에 의존하지 않는 콘텐츠로 진화했다. 이 프로그램들의 잠재력은 요즘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짚어 내는 데서 나온다. 4차 산업 혁명 시대와 뉴미디어를 마냥 바라만 볼 것이 아니라, 라디오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바탕으로 어떻게 청취자들을 끌어모을 것인지 제작자들이 사람의 마음공부에 더욱 열을 올려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