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__서울
파이, 안돼.
파이, 기다려.
파이, 산책?
분명 이 셋 중 하나가 내 이름인 게 확실해. 가장 많이 듣는 말 이거든. 두 번째나 세 번째가 아닐까... 추려지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확신이 안 선단 말이야. 두 번째 후보로 나를 부를 때면 엄마도, 아빠도, 형도, 잠시 또 여행을 떠난 지 12일째 되는 누나도 '파이, 기다려.' 하고 화가 난 듯 중저음이란 말이지. 그러나 내가 엉덩이를 바닥에 대는 순간, 고구마를 내 입에 쏙 넣어주니 행복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고구마는 내가 세상에서 두 번째로 좋아하는 간식이야. 내 인생 간식은 방금 삶아 나온 김이 모락모락 나는 닭고기!)
하지만 세 번째 후보인 '파이, 산책?'의 기쁨을 따라올 수는 없지. 이 이름으로 나를 부를 때면, 나는 드디어 밖으로 나갈 수 있거든. 특히 엄마가 항상 나를 데리고 가는 봉제산은, 풀냄새부터 꽃, 흙, 바람 냄새가 내 코를 춤추게 해. 또 딱정벌레 친구들뿐 아니라 걷고 뛰는 내내 동네 친구들을 만나고 안부를 물을 수 있으니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지! 숨 넘어가게 기분 정말 째진다고!
뚜뚜뚜뚜 띠띠띠띠
띠리릭~
어, 뭐지? 엄마는 요리하고 있고
(냄새를 맡아보니 잡채야, 이건. 잡채!)
해가 중천인 지금, 집에 들어올 사람이 없는데,
누가 현관문을 여는 거야?
오.마.이.갓!!!! 누나, 맞아???
지난번처럼 120일은 지나야
다시 올 줄 알았는데,
이렇게 12일 만에 다시 오다니.
말도 안 돼! 이게 꿈이야 생시야, 못 믿겠어!!!
어! 그런데 한쪽 어깨에 메는 천 가방만 메고 왔네?
그럼 내일 햇살이 비출 때 또 여행을 떠나겠구나...
바퀴가 달리고 누나 몸만큼 큰
네모난 하얀색 가방을 가져오면 10일 이상 머물텐데...
아니야 아니야. 그래도 하루가 어디야!
하루동안 이 집에 누나 냄새가 가득할 텐데, 그게 어디냐고!
너무 좋고, 너무 흥분되고, 너무 뜻밖이고,
나 지금 너무 좋아서 진정이 안되니, 좀 놔봐!
잡으려고 하지 말아 봐!
안으려고 하지 말아 봐!
점프하고 뛰어다니게 잠시 내버려 둬 보라고!
누나, 기다려!
왜 사람들은 나에게 수백 번도 기다리라고 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잠시도 기다리지 못해?
그리웠다고 말할 수 없으니, 나도 내 반가움을 표현해야 할거 아니야! 잠시 누나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앉아있어 보라고! 내가 고구마는 못주지만 (어차피 누나는 고구마를 좋아하지도 않잖아), 지금 엄마가 잡채를 하고 있으니 곧 마음껏 먹게 될 거야.
그나저나 이렇게 서프라이즈 해주는 거야?
이런 서프라이즈 라면 더 기쁜 마음으로
누나를 기다릴 수 있겠어.
오랜만에 누나 겨드랑이에 파묻혀 자니
포근해. 마음이 놓여. 모든 게 다 괜찮아.
언제 다시 오는지, 언제 다시 떠나는지는 안중에 없어.
중요하지 않거든.
지금 내가 누나와 함께 있는 것.
이것이 중요한 거야.
지금이 소중한 거야.
그런데 왜 누나에게서 근심의 냄새가 나?
비행이 많이 힘들어? 그럼 쉬는 거야.
고민이 있어? 그럼 해결하는 거야.
내가 많이 그리웠어? 지금 이렇게 보고 있잖아.
우울해? 그럼 꽃, 바람, 흙냄새를 맡는 거야.
잠을 못 자는 거야? 그럼...
아, 맞다! 줄 게 있어.
잠깐 기다려봐.
아 놔봐! 아빠한테 가서 자는 게 아니야.
잠깐 뭐 좀 가지고 다시 누나에게 올 게.
자 여기, 핑크 코끼리!
지난번에 엄마랑 통화하는 거 들었어.
독일에 가도, 뉴욕에 가도, 더블린에 가도
비행 가는 어디라도 공원을 보면 내 생각이나 그립다고 했잖아.
이 핑크 코끼리,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난감인 거 알지?
누나 줄게, 가져가.
잠이 안 오면, 내가 보고 싶으면 이걸 만져.
나는 이 세상 아무리 멋진 공원 어디도 다 필요 없어.
누나 냄새를 맡는 게 나에게는 가장 행복한 산책이야.
누나는 나의 세상이야!
누나가 힘들면 나는 염려가 돼.
누나가 웃으면 나는 안심이 돼.
어제 엄마가 만들던 잡채네.
그리고
킁킁... 파김치,
킁킁... 연근조림,
킁킁.... 이건 뭐였더라...
아 아몬드 멸치볶음.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들 챙겨서 조심히 가.
건강해. 잠도 많이 자.
좋아하는 책도 읽고. 누나에게 기쁨을 주는 거잖아.
다음에는 바퀴 달린 가방을 가져왔으면 좋겠어.
매일매일 누나가 그립지만
언제라도, 어디를 가더라도
다시 돌아오기만 하면 돼.
누나를 기다리는 게 내가 제일 잘하는 거야!
어? 핑크 코끼리를 안 가져갔네?
그럼 나를 보고 싶어 할 때, 잠을 이루지 못할 때
누나에게 무엇이 위로가 될 수 있지?
다음에 오면 다시 줘야겠다.
왜 인간들은 '안돼', '기다려', '손 줘'만 알려주고
그들이 그리울 때 우리가 어떡해야 하는지는 가르쳐주지 않는 걸까.
이번에도 12일 만에 다시 올까?
아니면 더 빨리 올까?
아니면 지난번처럼 100일 이상이 걸릴까?
잘 가. Goodbye for now.
다시 누나가 떠난 첫 번째 날,
다시 누나가 돌아올 날을 헤아리는 첫 번째 밤.
오늘, 다시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