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York__뉴욕
아침에서 12시를 지나 오후 2시 문턱까지의 시간들이었다.
지난달 멜버른 비행 때 호텔 로비에서 나를 기다리던 여동생을 보고 반가움에 와락 끌어안았던 것처럼, 형체가 없는 무언가를 포옹하고 싶어 질 때면, 어떤 방법으로 안을 수 있을지... 벅차오는 마음에 손을 얹고 무언가라도 찾으려 이쪽저쪽 주위를 둘러볼 뿐이다.
오번데일 역 (Auburndale station)으로 돌아가는 한산한 기차에 앉아 있었을 때, 오후 1시 햇살이 기차 안을 환하게 비추었을 때, 둥글고 투명한 과일 샐러드 뚜껑을 열어 보랏빛 포도 한 알을 입에 쏙 집어넣고, 살살 돌리다 톡 터트리니 달콤함이 내 입안을 가득 매웠을 때, 두 번째 포도를 골라 입에 넣으며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보았을 때가 딱 그랬다.
항상 시차적응에 노이로제가 걸릴 것 같다. 새벽 4시쯤인가 눈이 떠졌다. 더 자고 싶은데 몸시계는 말을 듣지 않는다. 네가 내 말을 듣지 않는 건 아니고? 오히려 몸이 물어오자, 대답을 회피하듯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호텔방은 청소 마무리 단계에 하우스키퍼가 몇 번 칙칙 뿌렸을 것 같은 인공 꽃잎향 같은 것이 스몄고 그 향은 불현듯 외롭고 낯설었다.
딱 내 앞에 서있는 사람까지만 포함하겠다며, 누군가 "자... 딱 여기까지만 할게요." 다정한 척 하지만 내가 그 자리를 금세 떠나지 않을세라 조금 힘을 주어 오른팔 뒷면으로 내 가슴팍을 뒤쪽으로 밀어내는 것 같다. 나도 모르게 힘에 밀려 슬며시 뒷걸음질 처지는 소외감 같은 것이 느껴지는 시간이다. 그런 공간이다.
호텔방에 홀로 있을 때 느껴지는 정적이 자신을 무척 외롭게 만든다고 말하던 리타가 생각났다. 그러냐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공감하지 못했다. 나는 호텔방의 고요함이 항상 편안했기 때문이다.
그때 그녀가 말한 느낌이 이런 것인가?
왜 이렇게 마음이 휑하고 차가울까?
바스락 거리는 하얀 이불을 아무리 목 위까지, 코 밑까지, 그다음 이마까지 끌어올리고 몸을 웅크려봐도 차가운 기운이 따뜻해질 기미가 느껴지지 않자, 나는 양 어깨를 손으로 비비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호텔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캐리어에서 도톰한 후드티를 찾아 입었다. 한 여름, 7월이었다.
이른 아침, 출근하는 사람들과 시티로 가는 기차에 앉았다. 다시 잠드는 건 힘든 일이었다. 초등학교 명절 때 어린 동생 둘과 두 자리 좌석에 낑겨앉고 반대편 엄마 아빠와 마주 보고 앉아 시골할머니댁으로 가던 무궁화호 열차가 떠오른다. 앞자리에 앉은 흑인 아줌마가 누군가와 오랫동안 통화한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리지 않지만 어렸을 때 거실바닥에 앉아 둘째 이모와 이야기하는 엄마등에 기대어 잠들 때, 등을 통해 울리던 엄마음성 같다.
"여기서 펜 스테이션 (Penn Station)이 오래 걸리니?" 옆좌석에 앉은 동양남자아이에게 물었다. “다음 역이야. 마지막 역 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내릴 거야. 걱정 마." 내려야 할 역이 어딘지 알게 된 것보다 그의 자상함이 나를 더 안심하게 했다.
이곳에 마지막으로 왔던 것이 벌써 10년 전쯤이다. 시티에서 길을 잃을만하다고 위로했다.
카페는 아침이다. 급하게 커피를 마시고, 크롸상을 두 입에 마무리하고 출근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다 나는 따뜻한 카페라테와 버섯오믈렛을 주문했다. 브라운 설탕 한 스푼을 라테에 넣고 둥글게 저은 후 한 모금, 한 모금 천천히 마셨다. 그들처럼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
1층 카페 창밖으로 아침햇살이 떨어진 나무를 바라보았다. 눈을 떨구고 머그잔을 들어, 커피를 입으로 가져오다 반대편 테이블에 앉은 그녀를 봤다. U자로 깊게 파인 타이트한 검은색 티를 입었다. 블론드 머리는 대충 뒤로 묶었고, 묵었을 때 끝머리가 살짝 그녀의 뒷목에 닿을 정도다. 나와 비슷한 나이인 것 같다.
그녀는 작은 볼 (bowl)에 담긴 샐러드와 그 옆에 커피를 다 마셨다. 줄곧 얼굴을 묻고 아이패드에 무언가를 적다가 한 두 번쯤 고개를 들어 목적 없이 이곳저곳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생각할 때 그녀 얼굴을 볼 수 있다. 모든 것이 심플해 보이는 그녀 중에,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목에서 예쁘게 빛나던 목걸이, 작고 파란 물고기 펜던트는 여전히 내 기억에 있다.
10명이 넘는 대가족이 들어와 함께 앉기 위해 그녀와 나 사이에 놓인 테이블 서너 개를 붙이고 있다. 커피 한 잔을 더 마실까 하다가, 머그잔 바닥에 딱 반모금 정도 얇게 퍼져있는 차가워진 커피를 빠르게 홀짝 마시고 일어났다.
입고 나왔던 얇은 긴팔 재킷을 벗어 검은색 숄더백에 걸친 지는 오래되었다. 아마 아까 역에서 내려 렉싱턴 가 (Lexington Avenue)의 경사진 구간을 오를 때쯤이었던 것 같다. 스트랜드 서점 (Strand Book Store)에 들르고 싶은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지만, 저녁비행을 위해 잠을 좀 자 두려면 곧 호텔로 돌아가야 한다. 스트랜드 서점을 '잠시' 들를 수는 없다. 그렇다고 급한 마음으로 대충 둘러보자니 누구한테인지는 모르지만, 송구한 마음이 든다.
약 1시간 반정도 남은 기차 시간은 사실 좀 애매했다. 언제부터인지 쇼핑은 재미가 없다. 배도 부르니 더 이상 무엇을 먹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다. 잠시 거리에 서서 이쪽저쪽을 바라보다, 슬며시 불어오는 바람이 얼굴을 스치자 눈을 감고 두 팔을 들어 크게 한번 기지개를 켰다. 기차역에서 너무 멀지 않게만 움직여보지 뭐.
여긴 뉴욕이잖아. 맨해튼이잖아. 걸어 그냥!
길거리 핫도그, 길거리 아이스크림, 피자집, 베트남 식당,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들, 고급 의류 매장, 헌 옷 가게, 온몸에 문신을 하고 반바지와 끈 나시를 입었던 그녀, 딱 귀 밑까지 내려온 칼각 백발 단발머리에 두꺼운 검은색 돋보기 안경을 쓰고 담배를 피우던 여인을 거쳐 도착한 곳은 매디슨 스퀘어 공원이었다.
길거리 판자 테이블 위에서 성실히 자신의 구실을 하듯, 한 권 한 권 책 앞표지가 하늘을 향해 놓여 있던 책들. 가까이 다가갈수록 설레었다.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작가들의 책들은 호기심에 책 뒷면을 읽어 보기도 하고, 그냥 아무 책이나 한 권 집어 들어 쓰윽 쓰다듬고 내려놓기도 한다. 헤밍웨이, 브론테, 주디 블룸, 토니 모리슨 같이 낯익은 걸작들이 보일 때면 우연히 아는 어르신을 만난 것처럼 목례하듯 인사를 건넨다.
강렬한 레드빛 하드커버, 니키 지오바니의 "사랑의 시들 (Love Poems)"을 골라 들었다. 1943년생인 시인을 알게 된 건, 제임스 볼드윈과 대화를 나누는 영상을 통해서였다. 두 작가는 인종, 관계, 인권, 문화등에 대해 자유롭게 하지만 서로를 존중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방식이 무척 세련돼 보였다. 작은 몸집에 짧은 아프로(Afro) 머리를 한 니키 지오바니는 가치관이 뚜렷했고, 고상했으며, 지혜로웠고, 목소리가 예뻤다. 외모는 더 예뻤다.
그녀에게 매료되어 한동안 시집을 찾아 읽었고,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일들을 그녀만의 말하는 듯한 문체로 개성 있게 표현한 문장들은 재밌고, 친근하고, 사랑스러웠다.
"이 책 얼마예요?"
숄더백 한쪽 손잡이를 비스듬히 어깨에서 내리고 가방 안에서 지갑을 꺼내며 물었다.
"오! 이 시인을 알아?"
그냥 겉표지가 붉은빛이어서 눈에 띄어 사는 것인가, 책이 얇아서 사는 것인가, 아니면 책이 예뻐 보여서, 아니면 여행하면서 기념으로 끌리는 책을 사는 것인가....? 설마 이 동양 여자가 니키 지오바니를 알리가 없잖아? 하는 표정으로 그는 묻고 있었다.
"최근작인 A good cry는 읽어본 거야? 그녀의 책중에 딱 이 시집만 없어서, 내가 사는 거라면?" 그의 두 눈을 응시하며 조용히 답변했다. 말끝에 본의 아니게 지어진 당당하고 옅은 미소는 나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살짝 주먹진 오른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리며 "오호호....! 대단한데?" 하듯 나와 눈을 맞추며 웃었고 우리는 자연스레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가 끝나갈 무렵 그는 물었다.
"네가 이 책의 시 중에 하나를 읽어주면, 이 책은 무료야. 어때?"
미국에서는 시를 낭독하는 모임이 흔연했고, 그가 리더로서 매주 이끌어가고 있는 한 시 낭독 모임에 대해 방금 대화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제안은 여자에게 작업을 거는 의도 같은 것이 아님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마이크 들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얘 앞에서 조용히 읽으면 되는 건데 뉴욕 한복판에서 그냥 시 한 편 읽어봐? 하다가도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오케이, 오케이."
부끄러워하며 망설이는 나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는지, 그는 바로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한 편을 읽어주고 싶은데, 괜찮은지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나에게 그는 이 페이지 저 페이지 왔다 갔다 하며 정성스레 시 한 편을 골라 나직이 낭독하기 시작했다.
You Came, Too
I came to the crowd seeking friends
I came to the crowd seeking love
I came to the crowd for understanding
I found you
I came to the crowd to weep
I came to the crowd to laugh
You dried my tears
You shared my happiness
I went from the crowd seeking you
I went from the crowd seeking me
I went from the crowd forever
You came, too
80살이 되어도, 90살이 되어도, 이 장면은 평생 스냅샷으로 내 기억 속에 저장될 것이다. 그리고 스냅샷 뒷면에 자필로 작성될 사진설명은 - "자유와 낭만, 2017년의 뉴욕".
책 값은 받지 않았다. 선물이라고 했다.
아... 오늘의 외로움이 싫지 않다. 차갑지 않다. 따뜻하다. 좋다. 너무 좋다. 너무너무 좋다.
이런 날이 외로움에 대한 위로라면 얼마든지 안아줄 수 있다.
기차역으로 가는 길에 오렌지와 멜론, 포도가 믹스된 과일 샐러드와 스콘을 샀다. 걷는 내내 마음에 꽃이 피어났다. 기차시간이 임박해 오자 나는 역에 도착해 뛰기 시작했다. 승강장에 도착하니 숨이 차오르고, 온몸에 땀이 흘러내렸다. 그렇게 돌아오는 기차에 간신히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