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ürich__취리히
한국에서 보내는 열두 번째 밤, 휴가 마지막 날이다. 내일이면 다시 아부다비로 돌아간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엄마는 어두컴컴한 집 옥상으로 나를 데리고 올라와 문창옥 씨가 많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나는 태어나 세 번 정도 누군가의 입을 통해 그 이름을 들은 것 같다.
아주 오래전, 세상으로부터 꼭꼭 숨기고 싶지만 영원히 사라지게 할 수는 없는 비밀을 종이에 적어두었다. 종이가 콩알만큼 작아질 때까지 작게 접어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에 숨겨두고 '이만하면 됐어. 아무도 모를 거야' 하고 안심한다. 나조차도 그 종이를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해 내어야 할 때쯤이 되면, 한 번씩 '나 여기 있어'하고 나타나는 바로 그 이름을 지금 엄마가 내 앞에서 말하고 있었다.
5살이었던가. 투박한 손으로 나에게 연두색 원피스를 입히고 머리둘레 부분에 꽃장식이 있던 둥근 갈색 밀짚모자를 씌워 함께 큰 이모를 만나던 날이 내가 그분을 마지막으로 본 날로 기억한다.
"귀찮아. 가고 싶지 않아."
너의 생부가 세상을 떠날 때가 된 것 같으니, 한번 시간을 내어 가보라는 엄마의 말에 나는 왜 '귀찮다'라고 답변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상황에 어울리지 않았던 표현이다.
한국시간 자정이 다되어 인천공항을 떠나 아부다비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승객으로 탑승할 때면, 보통 착륙할 때까지 꼬박 잠을 잔다. 눈에 졸음이 가득했지만 이번에는 잠들지 못했다. 다시 존재감을 드러내며 나타난 이름이 계속해서 내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나는 이불을 더더 머리끝까지 올리고 몸을 웅크렸지만 두려움의 무게는 내 온몸을 짓눌렀다. 심장이 고동쳤지만 울음은 나오지 않았다. 엄마는 나를 데리고 나가겠다고 소리쳤던 것 같다. 내 이름을 부르며 엄마에게 가던 나를 낚아챘다. 엄마가 아닌 자신에게 오라고 했다. 엄마는 다시 나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 사람은 더 강한 힘으로 발버둥 치는 나를 빼앗아 자신의 가랑이 사이로 넣었다. 작은 몸이 감당할 수 없는 압력이 죄어오자 나는 아프고, 두렵고, 무섭고, 공포스러웠다.
그날밤의 고함과 폭력은 고스란히 내 귀와 눈에 담겨 평생 나를 따라다녔다. 나는 엄마에게도 그 사람에게도 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옆집 민주네 할머니한테 가고 싶었다. 매일 나를 꼭 안아줄 때 할머니 가슴팍에서 나는 시큼한 냄새를 맡으며 할머니 품에 안겨 잠들고 싶었다.
휴가 후 정신없이 벌써 두 번의 비행을 다녀왔다. 여전히 축축하게 빨랫줄에 쳐 저 있던 스웨터는 바짝 말라있고, 샛노랗게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바나나는 어느새 갈색빛이 돈다. 이번 달은 몇몇 턴어라운드와 취리히 비행만 다섯 번이다. (턴어라운드/turnaround: 취항지에서 체류하지 않고 바로 베이스로 돌아오는 비행)
몇 달 전, 회사에서 새롭게 도입한 보잉 787 항공기종의 교육을 받았다. 이 트레이닝을 받게 되면 주로 787 가는 비행만 받게 된다고 먼저 교육받은 동료들에게 듣긴 했지만, 이렇게 한 취항지만 몰아서 받기는 처음이다.
정말 트레이닝 이후에는 뒤셀도르프, 상하이, 워싱턴 DC 등 대부분 해당 기종이 운항하는 취항지로 매달 비행하고 있다. 취리히는 그 도시 중 하나다.
처음 비행을 시작할 때부터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는 것에 대한 환상이나 기대가 크지 않았다. 그보다는 끝내지 못한 업무가 있어 퇴근 후에도 마음이 쓰인다던지, 성과를 내야 하는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조마조마한 마음 없이, 쉬는 날이면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과,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 매일매일 한 공간에서 일해야 하는 것이 곤욕인 내게,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오고 가는 두 섹터의 한 비행만 견디면 헤어질 수 있는 업무환경이 애초에 내가 외항사 승무원으로 근무해 보고자 한 주된 이유였다.
혼자 책을 읽고, 요가를 하고, 사색을 하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가만히 있는 시간, 5일 근무 후 주말 이틀을 쉬는 루틴이 아닌 평일에도 쉬는 날들이 있고, 원한다면 그 시간에 가까운 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 것처럼 철저하게 직업의 업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이 보장되는 것이 나에겐 무척이나 중요했다.
이렇게 해야 충전이 되고, 이렇게 고요한 시간을 가져야 삶의 중심을 계속해서 잡아나갈 수 있다는 걸 사회생활하며 일찍이 나에 대해 깨닫게 된 건 참 다행이다.
막상 근무해 보니 이 부분은 만족도가 꽤 높다. 물론 부족한 잠과 밤낮이 바뀌는 생활리듬을 신체가 잘 견딜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달을 보며 잠들고 햇살을 보며 일어나는 루틴을 겨우 잘 만들어 놓아도, 어둑어둑한 밤하늘을 거쳐가는 비행 몇 번을 다녀오면 다시 리듬이 무너지곤 하니 건강한 수면패턴을 유지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서비스를 마치고 점프씻에 앉아 기내 창문커버를 위로 젖혀본다. 비행기 엔진소리가 아니라면 우리가 상공을 날고 있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하늘은 어두운 암흑일 뿐 아무 형체도 보이지 않는다.
쿠크다스를 입에 물고 누워 왼손으로 나에게 팔베개를 해주고, 오른손으로는 당신 배 위에 책을 얹고 읽었던 것 같다. 나는 작은 몸을 말아 그분 왼쪽 겨드랑이에 얼굴을 파묻고, 빼꼼히 그분 배에 올려진 책에 시선을 두다 스르르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따스한 어느 날, 목마를 태워 우물가를 지나 밭에 데리고 갔다. 나는 흙 위에 앉아 모래를 쌓아 성을 만들고 있었다. 갑자기 벌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나는 엄지와 검지로 집게손가락을 만들어 계속 벌의 엉덩이를 잡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갑자기 두 손가락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고 나는 울었던 것 같다.
'오늘은 별들 마저도 보이질 않네...' 창문에 뚜렷이 비친 내 모습만 마주한 후 다시 창문커버를 내렸다.
"해이는 이번 달 비행 어때? 괜찮아?"
한창 이번 달 비행 스케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동료가 묻자, 나는 종이컵에 담긴 따뜻한 꿀차를 나무스틱으로 휘휘 저으며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고 말했다.
아마 승무원들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가 본 곳 중 어디가 제일 좋아요?" 일 것이다. 가깝지 않은 사람과의 대화를 썩 즐기지 않는 나는 보통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해서 암스테르담이요.", "여동생이 있는 멜버른이요."와 같이 도시와 이유를 잘 준비해서 한 번에 답한다. 그럼 대부분 아 그렇구나 방향으로 간단히 마무리되곤 하기 때문이다.
사실 나의 진짜 대답은 "비행이 편한 곳"이다.
자주 비행하여 머무는 호텔과 그 주변이 익숙하고, 레이오버 루틴이 출퇴근하듯 정해져 있는 비행. 승객이 까다롭지 않아 상대적으로 피로도가 낮은 비행. 이것이 나에게는 '편한 비행'이다.
7am
취리히 공항 랜딩
공항 인근 호텔도착
샤워 후 따뜻한 카모마일차 마시고 한숨 푹 자기
2pm
일어나 주섬주섬 옷 챙겨 입기
로비층 야외 테라스에 앉아 30분 정도 햇살 광합성받기
(따뜻하고 심장이 아주 편안히 뛰는 내가 참 좋아하는 시간)
3pm
공항까지 천천히 걸으며 산책
지하 1층 출국장 푸드코트에서 늦은 점심
공항 마트에서 장보기
6pm
호텔컴백
(그날그날 기분 또는 컨디션에 따라)
창문 활짝 열고 마트에서 사 온 제철과일 먹기
이해하지 못하는 스위스방송 틀어놓고 멍 때리기
책 읽거나 일기 쓰기
10pm 취침
이따금씩 마음 맞는 동료와 시티에 나가 점심을 먹거나 겨울이면 크리스마켓에 가기도 하지만, 보통 나의 취리히 비행 루틴은 이러하다.
3pm. 오늘도 어김없이 출국장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 1층 푸드코트로 내려왔다. 주로 아시아 음식을 먹는 편인데 몽골리안 비프와 차우멘, 누들만 먹기 아쉬워 망설이고 있으면 그런 나를 아는 직원이 맛보기로 조금 더해주는 볶음밥과 냉장고에서 바로 꺼내주는 차가운 물 한 병이 나의 늦은 점심메뉴다.
자리에 앉아 먼저 물병을 열어 한 모금 마셨다. 지갑과 핸드폰만 담겨 모양새가 축 쳐진 나의 에코백과 달리, 크고 무거운 배낭과 캐리어가 가득한 공항 풍경을 훑어본다.
21살쯤으로 보이는 딸과 중년의 아빠는 주문한 햄버거를 다 먹은 트레이를 옆으로 밀어 놓고, 아직 남은 음료만 손에 쥐고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비어있는 다섯 테이블 정도가 그들과 나 사이의 간격이었다.
정면으로 보이는 딸은 어깨정도까지 내려오는 블론드 머리의 앞 가르마를 타 양갈래로 대충 땋았고, 플레인 핑크 반팔 티셔츠에 회색 청바지를 입었다. 빈티지한 갈색부츠는 앉았을 때 딱 그녀의 복숭아뼈까지 올라왔는데, 어디 브랜드인지 묻고 싶을 만큼 내 취향이었다. 뒷모습이 보이는 아빠는 머리가 희끗희끗했다. 하얀 남방으로 보이는 상의를 갈색 허리띠를 두른 진한 청바지 안에 넣어 입었는데, 허리띠 위로 두툼한 뱃살들이 올라와 있다.
얼마나 오랜 시간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던지, 나는 식사를 다 마치고 지상층 Marché 카페에 들러 커피도 한잔 가져왔다.
딸은 오른손을 머리 위로 쭉 뻗어 올렸다가 내린다. "내 기대는 이 만큼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조금 실망이었어요" 정도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닐지. 아빠는 딸의 이야기가 끝나자 엄지를 들며 "첫 번째", 조금뒤에 두 번째 검지 손가락을 펴며 "두 번째", 아빠의 의견을 들려주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모습은 권위적이지 않고, 나보다 조금 더 삶을 경험한 친구가 이야기해 주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하고, 따뜻하다.
딸도 아빠와 눈을 맞추고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에 집중하고 있다.
이번 달 첫 취리히 비행에서 보았던 부녀의 모습이,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오늘 네 번째에도 계속 그곳에 앉아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내가 엄마에게 '귀찮다'라고 말했을 때, 가장 먼저 느꼈던 감정은 놀람이었다. 그리고 영원히 모른 체 살아가길 원해도 항상 내 인생 어디쯤에서는 기어코 모습을 드러내는 그 이름에 대한 무력감이 차례로 뒤따라왔다.
그렇다면 나는 왜 그토록 싫었을까? 그분과 보낸 시간은 어려서 잠깐 이었고, 나는 이후 나의 가족과 잘 살고 있으니 궁금할 법도 한데 여전히 나에게 남아있는 감정은 반감과 거부감 같은 부정적인 것들이었다.
핑크색 반팔티를 입은 딸도, 머리가 희끗희끗한 아빠의 뒷모습도 더 이상 없는 테이블을 오늘도 바라본다. 함께 여행을 하는 중이었을까? 느린 식사를 마치고 지상층에 올라가 후식으로 커피를 사 올 때까지 이어지던 그들의 대화가 다시 듣고 싶다. '아빠한테는 뭐든지 얘기할 수 있어' 하듯 신뢰가 가득했던 그녀의 눈빛과 계속 이야기하던 입술을 다시 보고 싶다. 그녀의 삶이 흔들릴 때 그녀를 지탱해 줄 아빠의 듬직한 그 어깨를 다시 보고 싶다. 자연스럽고, 편안하고, 따뜻했던 둘의 모습을 다시... 계속... 또... 보고 싶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던 에코백을 낚아채듯 잡아 들고일어났다. 멈춰있는 것 같은 에스컬레이터를 두 계단씩 뛰어 올라왔다. 현기증이 일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빠른 걸음으로 호텔로 돌아오는 길 내내 12월의 차가운 공기를 아주 깊게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화였다. 나의 반감과 거부감, 다시는 나타나지 말라고 밀어내고, 미친 사람처럼 허공에 주먹을 휘둘러 때리고 토해내고 싶었던 그것은 바로 '화'라는 감정이었다.
그 '화'는 그분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5살 그리고 20살의 나로부터 어른들을 향한 것이었다.
왜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거야!
왜 내가 어떤 감정인지, 어떤 생각이 드는지 묻지 않는 거야!
왜 나와 저렇게 눈을 맞추고 나를 들어주지 않는 거냐고!
왜 그냥 가라고만 해? 왜 그 사람이 아프니 가서 한번 보라고만 해?
왜 가기 싫다는 나를 생부가 죽는다는데 가서 보지도 않는 매정하고 모진사람 취급해?
'너 그래도 그러는 거 아니야. 너 나중에 후회해.' 왜 나를 그렇게 탓해?
왜 가고 싶지 않은지, 갑자기 느닷없이 이렇게 생부의 소식을 들으니 내 마음이 어떤지,
왜 이런 것들은 하나도 묻지를 않는 거냐고!
너무 나쁘고 이기적이야! 너무 이기적이라고!
마음 둘 곳이 없었다. 그분과 그분의 엄마, 형제들이 살던 시골집에 머물렀던 날들의 기억이 있다. 유일하게 따뜻함을 주었던 옆집 민주네 할머니가 집에 놀러 올 때면,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다가 나와 키가 비슷한 민주가 할머니 손을 잡고 있는 걸 보면 멈칫했다. 가끔 집으로 돌아가실 때 "할머니집 가서 민주랑 더 놀자." 남은 손으로 나를 끌고 민주와 함께 데려가시곤 했는데, 날이 어두워오면 돌아가기 싫어 밥상밑에 숨었다. 숨어있으면서도 나는 항상 알고 있었다. 어차피 여기는 잠깐 놀러 온 곳이라는 것을. 5살의 나는 다 알고 있었다,
20살이 될 무렵, 엄마는 내게 어딘가를 다녀오라며 보냈다. 가보니 "네가 이렇게 컸니? 어머 지나가다 마주쳐도 못 알아보겠네." 큰 아버지, 큰 엄마, 작은 아버지, 작은 엄마라고 했고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이 있었다. 어떤 몸짓으로, 어떤 표정으로, 어떤 답변을 해야 할지 찾지 못했다. 첫 대학등록금을 내주겠다고 했다. 감사하다는 말을 해야 할 상황 같았지만, 지나간 세월의 옷을 입고 쇼윈도에 서있는 마네킹이 된 기분만이 남아, 옅은 미소만 짓고 말았다.
내가 소포인가? 어디로 붙이면 그곳으로 가는 우편물. 가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 가고 싶은 마음이 없는지. 보통 그렇게 묻는 것이 아닌가? 사람에게는...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토해내고 싶은 감정이 북받쳤다. 이번에는 민주 할머니가 없었다. 그렁그렁 눈물이 차오르자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얼굴을 묻었다. 그렇게 또 밥상밑에 숨어버렸다.
후회는 내가 아니라, 5살 때도 20살 때 도 단 한 번도 내 감정을 묻지 않았던 어른들이 할 거야!
어두워진 호텔 밖 벤치에 앉아 조금 더 머물렀다. 로비에서 비추는 불빛이 어둠을 희미하게 밝혀 주었다. 유리창을 통해 투숙객들의 움직임에 한참 시선을 두고 있자니, 알아차린 감정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비로소 추위가 느껴지기 시작하자 나는 목도리를 코 위까지 올리고 터벅터벅 방으로 올라왔다.
있잖아... 나는...
엄마와 그 사람과 함께한 기억들이 살면서 나를 참 힘들게 했어.
그리고 외로웠어.
그러나 그 기억들 때문에 엄마도 그 사람도 미워한 적은 없어.
오히려 엄마도 그 사람도 참 힘들었겠구나 생각해.
두 분 각자의 삶을 생각해 보면 참 안 됐고,
또 가끔 엄마를 생각하면 딱하고 가엽기도 해.
내가 없었다면 더 쉽게 헤어질 수 있었을 텐데,
생각할 때도 있었어.
그리고 내가 그만큼 소중했으니 그렇게 서로 나를 데려가려 한 거잖아.
하지만, 그 아픈 기억은 딱 거기까지야.
내가 5살이었을 때는, 20살 때는,
나를 지킬 수 없었지만 지금은 나를 보호해 줄 거야.
아프고 힘든 모습일 텐데,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또 놀라고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낄 텐데. 감당하고 싶지 않아.
보고 싶지 않아 지금 그분의 모습.
그리고 나는 아빠가 있는데 헷갈리고 싶지 않아, 괜히 그분을 보고.
지금 내 가족 그대로 이대로 그냥 살고 싶어.
그분을 보러 가지 않을 거야. 나를 이해해 주면 좋겠어.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아무도 나와 눈을 맞추어 주지 않았지만
나는 호텔방 창문을 열고 혼자 조용히 말했다.
윙윙 모래성 주변으로 큰 벌 한 마리가 날아들어 윙윙 맴돌고 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무언가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누군가 다급하게 나에게로 뛰어와 나를 번쩍 들더니 이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내 엄지와 검지 손가락을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 있는 힘껏 빤다. 빨다가 내 손가락을 꺼내 몇 번을 확인하며 붓기가 완전히 가라앉을 때까지 반복한다. 나는 그분의 이마에 맺힌 땀을 바라보다 그곳에 작은 손을 가져가본다. 땀의 감촉을 느끼며 나는 말했다. "아빠, 이제 괜찮아요.".
그분의 등에 업혀 우물가를 지나 돌아오는 길에 나는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을 보며 스르르 잠들고 있었다.
알람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을 때는 아침 5시 반이었다. 밖은 아직 어두웠고 호텔방은 적막하고 고요했다. 나도 모르게 손가락을 확인하고 만져보다 다시 눈을 감았다. 방금 꿈에서 보았던 붉은 하늘이 아직 느껴졌다.
어제 공항 마트에서 장본 것들을 챙겨 캐리어에 넣고, 화장을 하고, 유니폼을 입고, 구두를 신었다. 다시 아부다비로 돌아간다. 손목시계를 확인하니 아직 픽업시간이 조금 남아 잠깐 앉았다 가자... 싶어 침대 모퉁이에 앉았다.
"어머, 비행 가는데 무음으로 해놓는다는 걸 깜빡했네." 핸드백 안에서 문자 메시지 소리가 울리자 급하게 핸드폰을 꺼냈다. 바탕화면에 엄마한테서 온 메시지가 펼쳐져 있었다.
"해이야. 문창옥 씨가 오늘 새벽에 죽었데."
취리히에서 아부다비로 돌아오는 하늘길은 햇살이 가득하다. 밝고 따뜻하다. 오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눈이 부시게 파랗다. 계속 바라보고 있으니 너무 파랗고 깨끗해서 꼭 바다 같다. 더 가까이, 더 멀리 보고 싶어 기내 창문에 콧잔등이 닿을 만큼 얼굴을 바짝 가져가 하늘바다를 바라보았다.
'이리로 와! 첨벙첨벙하고 싶니? 그렇게 해.
조금 있다가 들어오고 싶니? 그렇게 해.
예쁜 수영복을 먼저 입고 싶어? 그럼 그렇게 해.
괜찮아. 그렇게 해.
자유롭게 살아. 이곳에서 수영하듯 자유롭게, 알았지?'
하늘바다를 건너 답장이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