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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죽음의 경중에 대해

by 이윤서 Hayley

2025-04-24

(이 글은 제2023.12~2024.07 사이의 평생 잊지 못할 경험과 그 영향을 되돌아보며 쓴 글입니다. 지금의 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네요.)


윤리적으로 인간과 동물 목숨의 경중을 따지면 인간이 더 무겁지 않은가? 적어도 저는 많은 경우 그렇게 배워왔습니다. 특히나 종교와 관련된 수업에서는 더욱이. 그런데 내 몸 구석구석은 이 연속된 사건에 대하여 이와 반대로 작용습니다.


2023년 12월 21일

반려견이 죽었다.

당시 나의 반평생보다도 더 오랜 기간을 함께 했었다. 갑작스러웠다. 하루 만에 영영 떠나게 되었다.


2024년 2월 6일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초기암 형태인 종양을 발견한 후, 항암치료를 두세 번 받으시며 비교적 정상적인 생활을 하시다가, 마지막으로 아프실 때 힘든 항암 치료를 거부하셨고, 그때부터 급격히 병세가 악화되어 두 달간 퇴원과 입원을 반복하며 치료 후 영면에 드셨다.





그래 실은. 난 할아버지의 죽음이 전혀 슬프지 않았어.


돌아보면 저는 당신의 죽음이라는 명제에 그 어떠한 토도 달지 않았습니다. 그 전화를 받고도, 장례식장에서도, 화장터에서도, 수목장터에서도, 당신 존재의 소멸에 대한 최선의 애도를 표했지만 여전히. 제 마음은 나의 반려견에게 가 있었습니다. 마음 한편이 가있던 것도 아니오라 내 심장은 처음부터 그날 동물병원에 눌어붙어 버린 것입니다.


몇 달이 지나고, 4월, 봄에 정신질환자가 급등한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듯이 저의 뇌도 삐그덕거리는 시기가 찾아왔습니다. 처음에는 허하고 붕 떠있는 듯한 그 감정이 형태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감정선이 얼추 계절에 따라 엎치락뒤치락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작 저는, 제 심장을 어디에 두고 온지도 모르고 있더군요.


실은 이보다 딱 두 달 먼저 찾아올 수순이었던 그 감정은 그저 겉보기에 더 큰 사건에 밀려 잠시 몸을 낮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에게 있어 살면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에 대한 수순으로 응당 나를 쫒던 죽음의 후폭풍은, 내 인생에서 두 번째로 슬픈(슬퍼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사건이, 본인이 도착할 즈음 일어나 버리는 바람에, 몸을 잠시 바짝 엎드렸다가 어느 순간 바닥에서 일어날 엄두를 내지 못하여 나를 혼란하게 만든 것입니다.


사람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우울이라는 감정 하나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무너진다는 표현이 과하게 극적으로 들리지만, 정말 그런 양상이었습니다.

가령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나면, 생각해 보니 그날 오전엔 이런 일정, 오후엔 이런 일정이 있었어서 급하게 양해를 구하고 다른 날로 옮겨서 한숨을 돌리면, 또 그날엔 잊고 있던 다른 일이 있어서 거듭 사과를 하며 일정을 옮기느라 머릿속이 밑도 끝도 없이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이것이 매일 거의 모든 약속을 잡을 때마다 반복되는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아차 싶었습니다. 저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저도, 제 가까운 주변인들도 눈치채기 시작했습니다.

(그땐 또 왜 그렇게 일정이 많았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마 제 정신을 무의식 중에 분산하려는 시도였을까요?)


내 안쪽에서 균열을 발견하는 것과, 내 외벽의 콘크리트 패널 한 두 개가, 그러다가 열댓 개가 동시에 금이 가는 것을 목격하는 것은 실로 규모의 차이가 있었고, 견디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그에 더해 제 속은 끝없이 땅에서 멀어져 붕뜨고, 지상과 제 발꿈치의 격차만큼이나 많은 공간이 중력을 잃은 채로 굴러다니며 속을 은근히 쿡쿡 찔러 대는 것이었습니다. 공허감이 마음을 찌르는 느낌은 불안, 죄책감, 부채감과 비슷한 것이라 제 한가운데를 불편하게 짓눌렀습니다.


장례식장에서 흘린 내 눈물의 방향이 할아버지를 향하지 않는다는 꺼림칙한 기분 또한, 들어맞더군요. 저는 참 유치하게도, 내가 사랑한다는 걸 평생 인정하지 않는 엄마 아빠 할머니라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을 목격하고 그에 충격을 받아 눈물을 흘린 것이었습니다. 그들을 위로하는 눈물을, 흘린 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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