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트라떼 Apr 23. 2018

1-5-2. 설명하기엔 너무 복잡한 도시, 바라나시

마치 꿈을 꾼 것처럼

 우리들 중 대부분은 같은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었고 한 명은 에어컨 방을 구하겠다고 따로 이동했다. 때는 5월이었고, 5월의 바라나시는 뜨거웠다. 인도와 사랑에 빠졌다고 썼지만 사실 매일같이 이어지는 40도를 넘나드는 불볕더위는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한국에서부터 더위에 약해 여름을 싫어했던 나는 해가 가장 뜨거울 때인 오후 두 세시 경에는 보통 밖으로 나가지 않고 주로 숙소에 머무르며 책을 읽거나 낮잠을 잤다. 심지어 그마저도 침대가 있는 방은 너무 더워서 숙소 1층 공용 공간의 타일 바닥에 누워 얼음물이 든 페트병을 껴안고 쪽잠을 청하곤 했다. 에어컨이 있을 리 만무한 값싼 게스트 하우스에서는 잦은 정전으로 인해 선풍기 바람조차 귀한 것이었는데, 그것은 밤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무더운 열대야를 이겨내기 위해 우리는 종종 숙소 옥상에서 침낭을 깔고 잠을 자기도 했다. 침낭 안에 누워 별이 빛나는 까만 밤하늘을 바라보며 잠이 들고, 원숭이가 옥상을 돌아다니며 내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다시 잠을 깨는 일상은 여행을 떠나오기 전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참고로 옥상 숙박을 하며 나를 놀라게 한 것 중 하나는 원숭이들은 페트병 뚜껑을 돌려서 열 줄 안다는 것이었다. 부스럭 소리에 잠을 깨어 주변을 돌아보면 늘 원숭이가 페트병 뚜껑을 열고 병을 들어 물을 마시고 있었다. 이 글을 쓰며 혹시 내가 그때 꿈을 꾼 것은 아니었나 싶어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았는데 페트병을 직접 열고 물을 마시는 야생 원숭이 사진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나는 바라나시에서 꿈을 꾼 것이 아니었다.  



  해가 조금씩 기우는 늦은 오후에는 시타르를 배웠다. 시타르는 무려 19개의 현으로 이루어진 인도 전통 악기로 기타와 비슷하지만 조금 더 애절한 한이 담긴 듯한 소리를 낸다. 나는 시타르가 가진 구슬픈 음색의 독특한 매력에 빠져 비록 짧은 기간이었으나 일행 중 한 명과 함께 시타르를 배우기로 했다.  

 바라나시의 여행자 구역인 뱅갈리 토라 골목에 위치한 한 악기 교습소에서 1시간에 250루피(당시 한화 약 5,000원)를 내고 일종의 1:1 개인 교습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배운 곡은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이었는데 시타르의 음색과 정말 잘 어울리는 곡이라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우리는 한 곡 전체가 아닌 몇 구절 만을 배웠는데 그동안 각자 다른 시간에 같은 곡으로 교습을 받다가, 레슨 마지막 날에는 함께 가서 그동안 배운 구절들을 합주했다. 대부분은 내가 실수를 했지만 가끔 내가 실수를 하지 않으면 일행이 실수를 했다. 과연 우리가 한 번의 실수도 없이 합주를 마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으나 숱한 시도 끝에 우리의 연주가 완벽하게 끝났고, 악기에 문외한이었던 나에게는 생애 최초의 합주에 성공한 그 순간이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바라나시에서 보낸 11일은 지극히 단순했다. 아침에 일어나 가트 산책을 한 뒤 밥을 먹고 낮 시간에는 숙소에서 쉬다가 오후에 악기를 배우고 저녁이 되면 다시 가트를 걸었다. 그리고 망고를 잔뜩 사서 숙소로 돌아가 옥상에서 사람들과 함께 망고를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나에게 5월의 인도는 8할이 망고였다. 한국에서는 비싸고 흔하지 않아서 제대로 먹어 보지도 못한 망고를 바라나시에서 원 없이 먹었다. 1kg에 40루피, 당시 우리 돈으로 약 800원, 한국에서는 생각지도 못할 저렴한 가격이었다.  


 오후가 되면 라씨를 한 잔씩 사 먹는 것도 일과 중 하나였다. 라씨는 인도의 전통음료로 일종의 걸쭉한 요구르트 같은 것이었는데, 숙소에서 한국인 여행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라씨집까지는 미로 같은 뱅갈리 토라 골목길을 약 20분 정도 걸어가야 했다. 나는 종종 이곳에서 길을 잃곤 했었다. 하지만 길을 잃어서 헤매더라도 어차피 뱅갈리 토라 안이었고, 어디로 가든 길은 늘 통했기 때문에 길을 잃는다는 것이 무섭지 않았다.  


인도에는 이렇게 피부병에 걸린 개들이 많으니 함부로 만지지는 말자.

 





갠지스강 건너편에서 바라보는 바라나시의 저녁 노을


 갠지스 강변에 위치한 바라나시는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자 힌두교 최대 성지로 인도 내에서도 연간 100만 명이 넘는 순례자들이 찾는 성스러운 도시이다. 바라나시 하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화장터와 갠지스강에서 목욕을 하는 인도인들을 먼저 떠올릴 텐데 사실이 정말 그랬다.  

 갠지스 강변을 따라 가트(Ghat)라고 불리는 몸을 씻을 수 있는 돌계단들이 약 4km에 걸쳐 있는데 그중 북쪽에 위치한 마니까르니까 가트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라나시의 화장터 하면 떠올리는 바로 그 화장터가 있는 가트이다. 마니까르니까 가트의 화장터에서는 보통 하루에 약 200구의 시신이 화장된다고 한다.  

 가트를 따라 걷는 것은 바라나시에서의 일과 중 하나였는데 정말로 사람들은 갠지스강에서 목욕을 했고, 화장터에서는 시신 태우는 재 냄새가 하루 종일 났으며, 목욕하는 사람들 뒤로 강물에 시체가 떠다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마니까르니까 가트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화장터의 연기 냄새는 더욱 강렬해졌고 시야도 흐려졌다. 나는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화장터에 갔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화장터 앞 가트에 앉아 사색에 잠겨 보려고 시도도 해보았지만 실패했다. 얼마 전까지 나와 마찬가지로 숨을 쉬며 살아 있었을 사람이 지금은 이 화장터에서 재로 변해가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것은 나에게는 전혀 사색에 잠길 만한 거리가 되지 못했다. 살아있을 때는 그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존재였을 한 인생의 끝이 낯선 이방인 여행자의 호기심을 충족하는 데 이용되는 듯한 느낌에 약간의 죄의식이 들었기 때문이다.  



바라나시는 단순하지만 복잡했고, 알 듯 말 듯 알 수 없었으며,
손에 잡힐 듯 말 듯 절대 손에 잡히지 않는 도시였다.



 그래도 나는 인도를 떠난 지금도 가끔 길을 가다 무언가 타는 냄새를 맡으면 바라나시의 화장터 생각이 가장 먼저 나곤 한다. 바라나시는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이상한 도시였고, 가트에 앉아 강가를 바라보면 바로 그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모습을 숱하게 볼 수 있었다.

 나는 마니까르니까 가트에는 자주 가지 않았지만 숙소 바로 앞이었던 빤데이 가트에는 매일 앉아 갠지스강을 바라보곤 했었다. 혼자 가트에 앉아 있으면 어김없이 말을 걸어오는 인도인들의 관심이 귀찮았지만 그 역시 가트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당연한 풍경의 일부였다. 바라나시는 단순하지만 복잡했고, 알 듯 말 듯 알 수 없었으며, 손에 잡힐 듯 말 듯 절대 손에 잡히지 않는 도시였다.






  그 무렵 인도에서는 <예 자와니 하이 디와니 Yeh jawaani hai deewani>라는 영화가 개봉했는데, 인도인이고 여행자들이고 가릴 것 없이 워낙 대중적 인기를 끌었던 터라 아마 그때쯤 인도를 여행하던 여행객들 중에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처음으로 인도 영화관에서 본 영화가 바로 그 영화였다. 발리우드의 유명 영화배우인 란비르 카푸르와 디피카 파두콘이 주연을 맡았으며, 자막이 없어서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대충 젊은이들의 사랑과 갈등 이야기였다고 하면 될 듯하다.  


 사실 영화도 재미있었지만 그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인도인들의 영화 관람 태도였다. 영화관에서 대화를 하거나 큰 소리를 내면 민폐인 우리나라 문화와 달리, 인도인들은 신나는 장면에서는 소리를 지르고 박수를 치고, 화가 날 만한 장면에서는 야유를 하거나 갖고 있는 빈 물병을 던지기도 했다. 인도 영화 자체가 상영 시간도 길고 뮤지컬 형식으로 된 영화가 많아 신나게 춤추고 노래하는 장면이 많기는 했지만, 한국과는 달리 관객들이 자유롭게 감정을 표현하며 영화에 함께 녹아드는 모습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바라나시에서의 첫 번째 꿈같은 11일이 끝나고 타지마할을 보기 위해 아그라로 이동하면서 나는 머지않아 이곳에 다시 오게 될 것임을 직감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아그라행 기차에 올랐고, 기차로 몇 시간만 이동하면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신비로운 나라 인도에서 이번에는 또 어떤 풍경과 어떤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감을 안고 또 다른 도시를 향한 여정을 시작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1-5-1. 설명하기엔 너무 복잡한 도시, 바라나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