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 행복한 곳
우리는 짧게 있어 아쉽기만 한 포카라를 뒤로 한 채 석가의 탄생지 룸비니(Lumbini)로 향했다. 포카라에서 룸비니까지는 로컬 버스로 약 6시간이 걸렸는데 이 버스 여행에서 나는 원인 모를 급박한 생리현상으로 화장실에 보내 달라고 버스를 2번이나 세웠고 이후로는 버스 여행에 대한 노이로제를 갖게 됐다.
룸비니는 불교 창시자 고타마 싯다르타의 탄생지로 불교 4대 성지 중 하나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도시이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대성석가사라는 한국 절에서 머물렀는데 숙박비를 받지 않고 대신 떠날 때 원하는 만큼 기부를 하고 가는 방식이었다. 삼시세끼 밥도 제공해주었는데 밥시간이 되면 종이 울리고, 방에서 멍 때리며 쉬다 종소리를 들으면 밥을 먹으러 나가는 단순한 생활을 반복했다. 새벽 예불에도 참석할 수 있었는데 딱 한번 참석했다가 졸음을 참지 못하고 더 이상 가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룸비니에서 인도 바라나시로 함께 국경을 넘어갈 사람들이 더 모였다. 그렇게 새로 동행을 하기로 한 사람들과 가로등이 없어 밤이면 암흑 천지가 되는 대성석가사 주변을 걷곤 했는데 태어나 처음으로 여우 울음소리를 들었고, 포카라로 넘어가던 버스 밖에서 본 것처럼 많은 반딧불이들도 보았고, 또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땅바닥에서 튀어 오르는 메뚜기떼도 보았는데 벌레를 싫어하는 나에게 메뚜기들은 견디기 힘든 것 중 하나였다. 그래도 가장 힘든 것은 방 안의 모기들이었다. 절 측에서 모기장을 제공해주지만 대부분 오래되고 낡아서 구멍이 뚫리거나 찢겨 있었다.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나를 비롯해 같은 방을 쓰던 사람들은 밤새도록 모기의 공격을 받느라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대성석가사가 있는 룸비니 국제 사원구역 안에서는 각 국의 사원들과 부처의 탄생지인 마야데비 사원을 제외하고는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고로 그곳에서는 할 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인도의 어느 도시에서도 할 일은 늘 없었지만 룸비니는 차원이 달랐다. 딱 한번 룸비니 시내에 다녀온 것 말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사원구역 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보냈다. 그리고 나는 그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들을 정말로 좋아했었다.
한국에서의 시계는 빨리 돌아갔었다. 왕복 3시간 거리의 학교에 다녔고, 생활비와 여행 갈 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대외활동을 하느라 일주일이 7일인 것이 아쉽기만 한 바쁜 대학생이었다.
그런데 나는 사실 그런 바쁨을 즐기는 류의 인간이 아닌 것 같다. 열심히 살았지만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 같다가 태어나 처음으로 아무것도 할 게 없는, 걱정할 것이라고는 모기와 메뚜기 밖에 없는 이곳에 오니 마음이 이상하리 만큼 편안해졌다.
콜카타에서 만난 일행 중 한 명은 이미 네팔에 다녀왔는데 룸비니에서 명상센터에 들어가 금언 수행을 했다고 했다. 그렇게까지 할 자신은 없었지만 룸비니는 할 것은 없어도 짧은 시간만 머무르기에는 아까운 도시였다. 하지만 14일짜리 네팔 비자를 받아온 터라 비자 기간이 끝나기 전에 인도로 돌아가야 했고, 우리는 인도 국경을 넘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