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에서 마주하는 향긋한 커피 향과 낙엽의 느긋한 자연의 향이 어우러진 요즘.
한 없이 좋다. 가을을 마주한 이래, 이렇게 비가 안온 적이 있던가?
눈을 일찍 떴으나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화장실 가는 것조차 귀찮아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누워 휴대폰 하는 나의 주말 일상.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힐링이지!
블로그, 브런치 덕분에 일상이나 다양한 생각들을 글로 정리하는 습관이 생겼다.
나의 아주 소소한, 아니 하찮을 수 있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상들을 글로 쓰며
미처 알지 못했던 나의 감정을 마주할 때가 많아 심신수련하듯 편안해질 때가 많다.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 때, 최악의 시기였다.
미국에서의 별거 아닌 오퍼들을 전부 버리고 한국으로 왔고
그래서 파혼을 마주했으며, 슬픔을 뒤로한 채 싱글 라이프라고 커버하며 발광으로 바로 다음날 ex여친의 반대하던 거 전부 다했다.
이때 제대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시연했다. 다양한 사람 만나기부터 동남아일주까지..
지금 한창 이슈가 됐던 캄보디아 사기단과 비슷한 제안, 유혹(from 라오스)들도 있었고 (정말 큰일 날 뻔했다.),
스쿠터 사고로 다리에 아직도 큰 상처가 있다.(배낭여행자들은 그걸 치앙마이 타투라 부른다)
미국 도시에서 ex와 같이 살 던 집의 보증금이며 각종 생활가구 용품, 나의 저렴하지 않을 골프, 테니스용품, 전자제품, 의류, 가구 등등...
전부 알아서 하라고 했다. 그땐 그녀가 꼴도 보기 싫은 존재였기에… 나의 사랑했던 미국 생활까지 당시에는 접근조차 하기 싫었다. 다 싫었다.
현재 거지가 된 나에게 그것들은 상당히 큰 금액이다. 또다시 눈물 난다. 나의 미련함에, 바보 같음에, 감정에 좌지우지한 나의 무지함에…
주식 밈, 코인, 미국 석사까지… 투자로 퇴직금 일부까지 싹 다 잃었고
미국, 베트남, 서울에서까지 장사한다고 이것저것 다 해보며 발버둥 쳤지만
막상 그것 조차 실패로 돌아갔으며(나에게는 큰돈과 값진 시간이었다!)
한국 사기업의 매운맛(?)을 본 이후 공기업 준비로 장기간의 수험생 생활까지.
(지금 생각하면 내가 운이 없었다.ㅠㅠ 좋은 회사 참으로 많다.)
이렇게 이제 안정을 찾는 것 같다.
대략 일 년 하고도 11개월이 흘렀다. 자리 잡기까지 약 2년의 시간이 걸렸다. 다시 새로운 출발을 하는 이 상황을 맞이하기까지.
귀국 후 매일 밤 침대에서 울며 보냈던 세월,
스터디카페 옥상에서 보이는 장엄한 관악산의 기운과 반대 편 여의도의 화려한 건물들 사이에서
힐링하며 마음 다잡는 나날들, 때론 뛰어내리고 싶은 마음을 다 잡았던 일상들,
죽고 싶은 마음 붙잡으며 부모님 돌아가시지 전까진 절대 안 죽는다 소리쳤던 몇 개월 전의 나를,
울고 싶지 않지만 눈물이 한 방울 뚝 흐른다.
정말 잘 버텼다. 진심으로 고맙다. 진심으로 고생 많았다. 살아줘서 진심으로 고맙다. 나 자신에게~
나의 최악의 상황에서도 옆에서 욕하며 술 한 잔 건네준 친구들,
우울의 기운을 그대로 품어준 친구들, 상담사 선생님들,
우울증 다 티 났을 텐데 각종 검은색으로 아우라를 품는 나를 따스히 품어준 가족들까지.
나에게 사랑으로 넘치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 제발 꽃길만 걷자. 그 바닥, 지하의 어두컴컴한 길을 묵묵히 걷던 나에게,
걸음에 내성이 생겨 빛을 빛이라 인지하지 못한 나에게 건넨다.
이제 동굴에서 깊은 터널의 끝을 맞이하는 순간이라고 그게 오늘이라고. 이제부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