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단어는 그냥 넘어가자

공부보다 즐거움에 집중하는 새로운 습관

by 하영

그냥 넘어가라니 무슨 말일까? 자고로 모르는 것은 반드시 확인하고 가야 하는 법 아닌가? 모르는 단어나 어휘를 그대로 두고 다음 장을 읽어버리면, 모르는 것이 겹겹이 쌓여 엉망진창인 독서가 되지 않을까? 그렇게 허술한 노력이 무슨 성장을 가져온단 말인가?


그 의심을 누구보다 이해한다. 나도 학창시절에는 한 꼼꼼 했다. 교재나 문제집에 모르는 내용이 쥐톨만큼이라도 있으면 알게 될 때까지 자료를 찾아보거나 선생님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페이지 위에 있는 모든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올 때까지 암기를 반복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도저히 넘어갈 수가 없었다. 어떤 구석탱이에서 시험문제가 나올지 알 수 없었으니까.


그러나 우리는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다. 독해나 해독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독서'를 하는 중이다. 그러니 공부할 때 동력 삼았던 불안을 지금은 잠시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그냥 넘어가도, 의외로 괜찮다


책을 읽다 모르는 단어를 그냥 넘어가도 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영어책을 읽다 보면, 내가 몰랐던 단어의 의미를 바로 다음 줄이나 문단에서 설명하고 있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소설이든 비소설이든 마찬가지다. 말 그대로 의미를 '설명'해 주는 경우도 있지만, 그 뜻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상황이나 대화가 바로 뒤에 펼쳐지기도 한다.


뒤 내용을 봤는데도 모르겠다면, 그 전에 나온 앞 내용을 다시 훑어보면 된다. 내가 뭔가 놓쳤던 단서가 있을 수도 있다. 처음 읽을 땐 그냥 지나왔는데 다시 읽어보니 그 단어의 등장이 예고되고 있었다든지, 그 단어와 함께 다시 읽으니 전체적인 그림이 비로소 그려진다든지 하는 식이다.


이렇게 앞뒤를 살피다 보면 몰랐던 단어의 뜻이 유추되거나, 적어도 엉성하게라도 파악된다. 단어의 정확한 뜻을 알게 된 게 아니더라도, 그 단어가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는지를 경험하게 된다.


그렇게 대강 이해되었다면 그냥 또 그 다음 내용으로 넘어가면 된다. 그래야 읽기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는다. 만약 흐름상 정말로 중요한 단어라면, 뒤 내용이 이어짐에 따라 그 의미도 조금씩 더 선명해질 것이다. 흐름상 중요하지 않은 단어라면, 그 정도로 느낌만 갖고 넘어가도 독서에는 큰 지장이 없다.


이미 아는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과는 다른 의미로 사용된 것 같을 때도 있다. 그러면 이번에 접한 새로운 맥락을 음미해 보자. 이런 경험이 곧 나의 내공이 된다. ‘이 말이 이렇게도 쓰이는구나’ 생각하며 어휘력을 확장해 가는 것은, 영어 공부를 넘어 영어 독서를 하는 사람들만이 맛볼 수 있는 단단한 성장이다.




꼭 필요하다면 영영사전을 찾아보자


물론 예외는 있다. 글의 분위기상 좀 중요한 역할을 맡은 단어 같아 보이는데, 앞뒤 맥락을 아무리 봐도 도저히 뭔지 모르겠는 경우다.


형용사나 부사보다는 명사나 동사의 경우에 그런 일이 생기기 쉽다. 주로 수식을 위해 사용되는 형용사나 부사의 경우 눈치로 의미를 짐작하기 쉬울 때가 많다. 특히 소설이라면 이전까지 쌓아올려진 인물의 특성이나 상황의 분위기가 충분한 단서를 제공한다.


그러나 동사나 명사는 조금 더 까다로울 수도 있다. 새로 등장한 사물이나 어떤 사람의 행동이 너무나 생소한 단어로 언급되어 있는데, 그 단어를 이해하지 않고는 도저히 전체 그림을 그리기 어렵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럴 땐 비로소 사전의 도움을 받아보면 된다. 그러나 내가 추천하는 것은 영한사전보다는 영영사전이다.


대부분의 영한사전에는 영단어에 해당하는 한국어 단어들이 나열되어 있다. 반면 영영사전은 영단어의 의미를 영어로 ‘설명’한다. 보통 설명해야 하는 그 대상 단어보다는 쉬운 어휘로 설명해 놓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사실 우리가 어떤 단어를 통해 전달하는 것은 그 단어를 둘러싸고 있는 분위기다. 영영사전을 보면 그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그 단어를 어떤 분위기로 대하는지를 좀 더 넓게 느껴볼 수 있다. 그 단어를 설명하기 위해 가져오는 다른 단어들을 통해서다.


그리고 영영사전에서는 질 좋은 예문들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어휘 습득 과정에 예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내가 보고 있는 이 문장 말고도, 다른 어떤 상황에서 어떤 형태로 쓰일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단어의 쓰임을 이해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영영사전을 사용하는 데에는 노력도 시간도 많이 들어간다. 독서의 흐름이 끊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이왕 어떤 단어를 꼭 확인하고 넘어가야겠다고 결정했다면, 기억에라도 확실하게 남기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장담컨대 이렇게 정성들여 집어넣은 단어는 머리에 훨씬 오래 남는다.



맥락을 통째로 받아들이는 습관


영영사전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독서를 할 때 가장 추천하고 싶은 습관은, 처음에 말한 것처럼 모르는 단어가 나오더라도 앞뒤 맥락을 살피고 일단 넘어가는 것이다. 읽는 과정의 부담은 덜고 즐거움만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일단 넘어가더라도 독서를 계속하다보면 어떤 글에서든 같은 단어를 다시 마주치게 된다. 그러면 이번에는 그 단어를 둘러싼 또 다른 경험이 쌓이게 된다. 독서를 계속함에 따라 그런 과정이 반복되며 결국 그 단어는 서서히 하지만 풍성하고 확실하게 나의 것이 되어간다.


어휘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이 쉽지는 않다. 한국의 초중고등학교 영어 교육과정을 거쳐 왔다면, 주어진 지문을 빈틈없이 이해하고 분석하는 태도가 계명처럼 몸에 새겨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잘못 이해하면 큰일날 것 같고, 왠지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것 같아 죄책감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계속해서 상기해 보자. 영어는 독서의 즐거움, 나아가 삶의 즐거움을 확장시켜 주는 수단일 뿐이다. 영어가 독서의 장벽이나 괴로움이 될 필요가 없다. 단어 찾기를 멈추고 맥락을 통째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독서가 훨씬 편해지고 즐거워진다. 조금 낯설고 불안하더라도, 진정한 즐거움에 더 집중할 기회를 나 자신에게 줘 보자.


Stephanie Guarini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