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읽기 중 모르는 단어를 만났을 때 하지 말 것들
어떤 책을 고르든 원서를 읽다 보면 어려운 단어나 문장을 만날 수 있다. 이럴 때 영한사전에 검색해서 뜻을 확인하는 경우도 있고, 번역본을 옆에 두고 비교하며 읽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나는 두 가지 다 말리고 싶다.
일단 영한사전에 검색하는 버릇에는 몇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무엇보다, 독서의 흐름이 끊어진다. 인터넷 사전이든 종이사전이든 뜻을 확인하려면 내가 읽던 책에서 눈과 손을 떼고 뒤적거려야 한다. 몰입해 있던 이야기에서 벗어났다가 다시 들어가려면 그만큼의 에너지가 든다. 당연히 읽다 지치기도 쉽다. 몰입하는 재미야말로 독서하는 즐거움의 핵심인데, 이건 너무 큰 손해다.
둘째로, 영한사전에서는 영단어의 단편적인 번역어만을 확인하게 된다. 영어와 한국어는 완전히 다른 역사와 문화 속에서 태어난 언어다. 때문에 영단어 중에는 한국어 단어로 일대일 변환되지 않는 단어가 상당히 많다. (경험상 오히려 그렇게 딱 떨어지듯 번역되는 단어가 훨씬 적다.) 사전적 의미부터 확인하는 습관은 그 단어를 더 풍부하고 입체적으로 음미할 기회를 막아버릴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기억이 오래가지 않는다. 영한사전에서 뜻을 확인하면 왠지 곧바로 이 단어를 이해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그 사전적 의미를 확인한 것으로 만족하고 넘어가게 된다. 그러나 맥락과 함께 얻어진 단어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확인한 의미는 기억에서 쉽게 지워진다. 그럼 다음에 같은 단어가 나왔을 때 다시 찾아보게 된다. 빠르고 효율적일 것 같지만 사실 별로 효율적이지 않은 방법인 것이다.
한편 원서와 번역본을 나란히 펼쳐 두고 보는 습관은 훨씬 더 나쁘다. 물론 아예 처음부터 번역서를 선택해 읽는 경우가 아니라, '원래 목적이 원서읽기인데 해석이 잘 안 된다는 이유로 번역본을 병행해 읽는 경우'에 대한 이야기다.
일단 번역본에는 사전과는 정반대의 특성이 있다. 사전에서는 맥락이 소거된 사전적 의미만 확인하게 된다면, 번역본에서는 오히려 사전적 의미와 거리가 먼 의역의 결과만 확인하게 될 수 있다. 게다가 의역의 폭은 번역가의 철학과 성향에 따라 편차가 크다. 번역가가 원문을 중시하는 사람이었는지, 흐름과 효과를 중시하는 사람이었는지에 따라, 번역본과 원서의 표현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거나 가까워진다.
또한 자존심이 좀 상한다는 문제도 있다. 독서라는 경험에 있어 독자로서의 자긍심은 매우 중요하다. 저자가 선택해 적어내려간 문장과 단어들을 읽고 자신 안에서 재조합하며 의미를 구성하는 일은 독자의 특권이다. 이왕 원서를 읽기로 했다면 그 특권을 되도록 온전히 누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독서를 공부로 만들어 버릴 위험이 있다. 원서를 읽으며 번역본을 펼치고 싶은 데에는 '정답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깔려있을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코리안으로서 다양한 시험에서 정답을 찾는 연습을 해 왔다. 이런 태도가 뼛속 깊이 새겨져 있는 게 이상하지 않다. 내가 맞게 이해했는지, 번역본을 통해 한 번 확인하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이런 태도 자체가 독서를 공부이자 시험으로 만들어 버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내 해석의 정오를 확인하는 과정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뭐든 시험이 되면 싫어진다. 원서읽기라는 취미를 통째로 싫어하게 되고 싶지 않다면, 번역본을 통해 내 이해가 맞는지를 계속 확인하는 버릇은 들이지 않는 것이 좋다.
영한사전도 보면 안 되고, 번역본도 보면 안 된다니, 그럼 대체 어떡하라는 말일까?
쉽고 편하고 오래가는 좋은 방법이 있다. 일단 넘어가는 것이다.
모르는 단어를 확인하지 말고 일단 넘어가라니?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이 이상한 처방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더 자세히 얘기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