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단편 <버스데이 걸>을 읽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국내에서 <1Q84>, <노르웨이의 숲> 등 장편소설로 더 유명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그의 단편 혹은 중편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하루키의 문체와 그 특유의 상황 설정, 감정을 묘사하는 방식 등과 사랑에 빠진 이후로 나는 하루키가 쓴 모든 글을 다 찾아서 읽기 시작했다.
2년 전, 하루키 문학을 처음 접한 이후로 나는 일주일에 한번씩은 꼭 내가 사는 동네 한인타운에 있는 알라딘 중고서점을 가서 하루키 책을 사서 읽곤 했다. 미주 지역이다보니 역시 구할 수 있는 책이 한정적이었다. 그래서 내가 애용한 것은 E-Book 이었다
전자책으로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작품을 구할 수 있었다. 종이책이 주는 특유의 느낌은 없지만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었고 그저 하루키의 책을 읽을수만 있으면 되었다. 전자책 목록을 훑던 중 기존 하루키 책의 표지와는 조금 다른 느낌의 작품이 있었다. 추상적인 그림이 그려져있는 다른 것들과는 달리 그 책의 표지엔 뚜렷하게 그려진 여자 얼굴의 일러스트가 있었고, 그 때문에 약간은 동화책 같은 느낌이 있었다.
책 소개를 보니 하루키와 일러스트레이터 카트 멘시크가 합작하여 만든 책이었다. 구미가 당긴 나는 그 전자책을 구매했다. 책을 실제로 보고 샀다면 책을 들어올림과 동시에 그 두께를 미리 알았을테지만, 전자책으로 구매한 나는 책의 길이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책은 생각보다 아주아주 짧았다. 마지막 장인지도 몰랐던 마지막 장을 끝냈을때 나는 정말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스데이 걸>은 내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 책을 물리적으로 손에 쥐고 읽었더라면 분명 책장을 넘기는게 아쉬웠으리라.
2020년의 연말이 다가오고 내 생일 또한 가까워졌다. 그것을 기념(?)하여 이 책을 읽고 또 읽고 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더 빠져드는 책이다. 두 가지 포인트가 있다.
첫째, 생일을 특별하게 보낸다는 것.
둘째, 소원을 들어준다는 것.
첫번째 포인트, 생일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하자면. 생일은 참 여러모로 복잡한 날이다. 아무런 축하를 받지 않으면 서운하고, 그렇다고 내가 나서서 알리기도 뭐하고. 그냥 알아서 좀 특별해졌으면 하는 그런 날. 그런 날이, 하루키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매우 공평하게"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다. <버스데이 걸>의 주인공인 '그녀'도 본인의 생일을 기대하며 여러가지 준비를 한다. 스무살 생일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생일도 아니고, 스무살 생일은 뭔가 좀 달라야하지 않을까. 그녀는 그 날 그녀 대신 아르바이트할 사람을 구하고 남자친구와의 데이트도 약속해놨다. 하지만 그녀 대신 일을 해주기로 한 친구가 갑자기 아프고, 오랫동안 교제해 온 남자친구와는 생일 며칠 전 큰 싸움을 한다. 그것은 "뭔가가 둘 사이에 끊어져버리는" 싸움이었다. 결국 그녀는 그녀의 스무살 생일을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저녁으로 갈수록 뭔가가 뒤틀리기 시작하는데, 그 뒤틀림은 흐름을 바꾸어놓는 뒤틀림이다.
그녀가 일하는 레스토랑은 호텔 건물 1층에 위치한 곳으로 적절하게 평범하고 적절하게 특별해서 꾸준하고 적당하게 장사가 잘 되는 곳이었다. 근무인원도 꼭 필요한 인원만 근무한다. 한 명의 매니저, 두 명의 웨이터, 요리사, 계산대에 1명, 그리고 그녀. 플로어 매니저는 이 곳에서 10년을 넘게 근무했다.
“그녀가 일하는 곳은 그럭저럭 이름이 알려진 롯폰기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1960년대 중반부터 하고있는 가게로, 나오는 요리에 선구적인 예리함은 없지만 맛 자체는 지극히 정직한 것이어서 아무리 먹어도 물리는게 없었다. 가게 분위기도 억지스러운 데 없이 온화한 차분함이 있었다. 젊은 손님보다는 나이 든 단골이 많고, 위치상 그중에는 유명한 배우나 작가도 섞여있었다.”
그렇게 항상 특별한 구석 없이, 일상적으로, 돌아가는 공간이었지만, 한번도 얼굴을 비춘 적이 없는 이 레스토랑의 사장이 바로 이 레스토랑의 유일한 특별함이었다. 유일하게 그의 얼굴을 본 사람은 매니저로, 매일 저녁 8시에 자신의 방으로 저녁식사를 가져다 달라는 사장의 요구에 맞춰 그는 식사를 배달했다. 사장에 대해 알려진 정보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같은 호텔 건물 6층에 머물고 있다는 것. 그리고 언제나 저녁 메뉴는 닭 요리를 요청한다는 것. 굽든, 튀기든, 삶든, 닭 요리면 되었다. 이러한 미스테리함은 호기심을 유발한다기보다 존중받아 마땅한 비밀이라는 느낌을 들게 했다. 레스토랑이 그것만 제외하면 아무 문제 없이 —지나치게— 잘 굴러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스무살 생일날, 그 흐름을 바꿔놓는 균열이 시작됐다. 열차의 선로가 바뀌듯이. 조금씩 내리던 비가 점점 더 세차게 내리기 시작하고 저녁 예약을 잡아놓은 손님 몇 팀이 취소 전화를 걸어왔다. 그리고 저녁 6시, 매니저가 갑자기 복통을 호소했다. 여지껏 단 한번도 문제가 없었던 매니저는 하필 그 날, 바뀐 흐름에 휩쓸리듯, —혹은 큰 계획의 일부로— 사장에게 저녁을 배달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일을 대신할 사람으로 그녀가 지목 당한다. 저녁 8시. 그녀는 식사가 올려진 룸서비스용 카트를 밀어 호텔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604호 앞에 섰다. 초인종을 누르고, 문이 열린다. 그녀는 사장을 만난다.
사장은 묘한 분위기, 하지만 나쁘지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자그마한 60대 노인이었다. 해리포터의 덤블도어 교수처럼, 엄청난 지혜를 익살스러움 뒤에 감추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약간의 특이한 말투를 가졌지만 상황을 예리하게 보는 눈이 있다. 그는 —어쩌면 당연하게—그 날, 그에게 저녁을 배달해주는 그녀에게 특별한 일이 있음을 알아본다. 그 날이 그녀의 스무살 생일임을 들은 사장은 —"지금부터 정확히 이십 년 전의 오늘, 자네는 이 세상에 태어났어." —그녀에게 소원 하나를 들어준다고 말한다. 비현실적인 제안이 노인이 뿜어내는 특유의 분위기를 만나 그 어느 것보다 현실성을 가진다.
그리고 그녀는 소원을 빈다.
책에서는 그녀가 어떤 소원을 빌었는지 나오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보통의 소원과는 조금 결이 다르고, 젊은 여성이라면 으레 빌만한 소원; 이를테면 미, 부, 지성 등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이 걸리는 소원이다. 현재의 그녀와 '나'의 대화는 그녀가 그때부터 지금까지 (현재는 그로부터 10년이상 흘렀다) 그다지 나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녀는 꽤 지혜로운 소원을 빌었으며, 그녀는 그녀의 스무살 생일에, 평생 잊어버리지 못할 하루의 기억을 갖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내게도 이런 생일을 한번쯤 가지고 싶다,하고 생각했다. 누구나 갖고 있는 은밀한 꿈. '생일에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선물받고 싶다.' 하지만 지금까지 모아온 데이터에 따르면 기대는 실망을 가져온다. 작년 생일, 나는 그것을 아프게, 조금 지나치게 아프게 배웠다. 생일이 시작되는 그 순간부터 어두운 방에서 다시 잠에 드는 그 순간까지 내 기대가 산산조각 나는 것을 실제로 눈 앞에서 보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다짐하고 다짐했어도 나도 모르게 생일에 특별함을 기대하는 마음이 점점 더 커져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후로, 생일에 대한 기대를 버리려고 노력해왔다. 남들에게 내 생일을 알리는 모든 알림을 꺼놓고, 생일 당일엔 일부러 근무 스케줄을 잡아 놓았다. 평소와 같이 출근하고, 근무하고, 퇴근하고, 추운 밤을 뚫고 퇴근하고, 잠에 드는 내 모습을 상상하고 또 상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내 오랜, 강렬한 욕망을 다시 한번 들춰봤다.
“...모든 사람이 일 년 중에 딱 하루, 시간으로 치면 딱 스물네 시간, 자신에게는 특별한 하루를 소유하게 된다. 부유한 자도 가난한 자도, 유명한 사람도 무명의 사람도, 키다리도 땅딸보도, 어린이도 어른도, 선인도 악인도, 모두에게 그 '특별한 날'이 일년에 딱 한번씩 주어진다. 매우 공평하다. 그리고 사안이 이렇게까지 정확하게 공평하다는 것은 정말로 멋진 일이 아닐까.”
아이러니하다고 해야할까. 나는 여러모로 내 생일을 좋아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언제나 내 생일 날짜를 좋아했다. 11월 22일. 외우기도 쉽고, —지극히 개인적으로—예뻐보이는 숫자 조합이다. 그리고 내가 태어난 1993년 11월 22일은 절기 '소설' 이 시작되는 당일이었다.
“소설(小雪)은 24절기의 20번째로 태양 황경이 240도가 되는 때를 말한다. 살얼음이 얼기 시작하여 겨울 기분이 들면서도 따사로운 햇살이 있어서 소춘(小春)이라고도 한다.” — 위키백과
그리고 올해, 2020년 11월 22일도 절기 '소설'의 당일이다. 여러가지 끼워맞추기를 하다보니 올해 생일에 대한 기대가 조금씩 조금씩 고개를 든다. "거추장스러운 축하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저 인생에서 매년 오는 생일, 그 어느 하루 쯤은, 비밀스러운 어떤 특별한 기억을 갖고 싶을 뿐이다", 라는
사실은 큰 기대.
두번째로 <버스데이 걸>이 나를 흔든 단어는 '소원'이었다. 만약 그녀가 나라면, 그 특이한 사장이 나에게 소원 한 가지를 물어봤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살면서 확실하게 한 번 이상, 여러번 고민해 본 상상이다. 누군가 (대부분의 경우 파란 얼굴과 파란 몸의 지니가) 나에게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고 한다면, 어떤 소원을 말할 것인지.
그런데 단 한번도, 단언컨대 단 한번도, 이런 소원을 빌어야겠다, 하고 결론을 낸 적이 없다. 이 소원을 생각하면 다른 소원이 생각나고 결국은 원하는 것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런 상상은 처음엔 설렘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마지막에 드는 감정은 체념이다. 소원 하나가 아무리 특별해진다고 하더라도 나라는 사람 그 자체를 바꾸지는 못하는 것이다.
<버스데이 걸>의 '그녀'는 아주 지혜롭게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소원을 빌었다. “인간이란 어떤 것을 원하든, 어디까지 가든, 자신 이외의 존재는 될 수 없는 것이구나, 라는 것.” 자신을 인정하고 제 분수에 맞는 소원을 빈 것이다. 그녀가 감당할 수 있을만큼의, 그녀에게 필요한 소원을 빌었다. 더 예뻐지거나, 큰 돈을 손에 넣든가, 아주 똑똑해지든가 하는 등의 소원 대신.
그녀의 소원을 들은 노인은 얼마간 의아해했지만 곧 손뼉을 짝 치며 그녀의 소원이 이뤄졌다고 말한다. 현재에서 '나'는 그녀에게 묻는다. 그것을 소원으로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느냐고. 그녀는 예스/노 대답대신, 그리 나쁘지 않은 그녀의 현재의 삶을 떠올린다. 세 살 연상의 공인회계사와 결혼해 두 아이가 있고 일주일에 두 번 친구들과 테니스를 치는 삶. 차의 범퍼에 두 군데쯤 움푹 찌그러진 데가 있어도, 그녀는 그녀 존재에 알맞은 삶을 살고 있는 듯 보인다.
생일엔 생일자를 초를 꽂은 케익 앞에 앉혀놓고 촛불을 불어 끄며 꼭 소원을 빌라고 한다. 들어줄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Make a Wish!
비는 사람도 그런 말을 하며 축하해주는 사람도 아무 의미없이 뜻도 없이, 그냥 습관적으로, 관행적으로 하는 말이다. 그런데 <버스데이 걸>의 사장은 다르다. 그녀에게 소원을 들어준다는 것과, 그녀가 말한 소원이 이뤄졌다는 것은 완전한 진심이고 사실이다.
그리고 사장은 이 말로 축하를 마무리한다.
“아가씨, 자네의 인생이 보람있는 풍성한 것이 되기를, 어떤 것도 거기에 어두운 그림자를 떨구는 일이 없기를.”
생일은 어쩌면 매년 우리 존재의 크기를 확인하는 체크포인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우리에게만 특별한 그 날에, 우리 크기에 맞는 소원을 빌고, 우리 주위에서 축하를 보내는 이들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인생을 위해 한 호흡 돌린다.
그리고 생일에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의 말은,
당신의 인생이 보람있는 풍성한 것이 되기를. 어떤 것도 거기에 어두운 그림자를 떨구는 일이 없기를.
이것이겠다.
Happy Birthday to me,
and eventually, everyone.
2020.11.22 나의 28번째 생일에.
모든 인용구는 <버스데이 걸> 본문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