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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 Sep 04. 2022

(29) 머릿속의 우주 하나

하윤의 Resolution

"언젠가는 더 깊은 연구를 통해, 더 깊이 추적함으로써 이 정신적 사건의 유기적 토대를 발견할 것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 인용 과정에서 단어를 임의로 강조하였음. 여기서 말하는 정신의 유기적 토대란, 결국 뇌와 신경이 될 테다.


지구에서 제일 복잡한 조직


나의 전공은 뇌과학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뇌에 대한 여러 지식을 공부하는 것이 나의 일인데, 문득 첫 이 길을 걷게 된 계기를 생각해 보면, 아직도 우리가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 뇌라고 하는 지구에서 가장 복잡한 생명 조직에 대해, 어떻게 이러한 유기적 토대가 정신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대하여 더 알아보고자 했던 마음이 그 시작점이었다(그림 1).


그림 1. 실제 인간의 뇌. 보통 이와 같은 실험용 조직은 핏기를 제거하고 화학 용액을 통해 방부처리를 하는데, 그런 처리를 하지 않은 뇌는 선홍빛을 띤다. Edlow, 2019.


기나긴 역사의 흐름 속에, 인간이 신체의 다른 부위에 대해 비교적 잘 알게 된 반면 뇌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적확한 이해는 매우 최근에서야 이루어졌다. 그리스 시대부터, 몇몇 학자들은 뇌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의 중추라는 것을 이야기하였고 신경에 대한 해부학적 구조가 알려져 있었으나 ¹, 그것이 어떻게 기능하는가에 대해서는 1800년대가 되어서야 전기를 다루던 과학자들이 '생명체 내에 있는 전기' 에 대하여 공부하며 알려지게 되었으며², 그마저도 이러한 '생체 전기' 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뇌가 어떠한 세포들로 이루어졌고, 이 세포들이 어떻게 기능하는지에 대해 밝혀진 것은 빨라야 1900년대 중반의 일이다.


이미 그보다 수백 년 전 심혈관계의 작동 원리와 근골격 해부학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던 것을 고려하면, 우리의 뇌에 대한 지식은 매우 늦게 시작된 편이다. 심지어, 아직도 우리는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한 것들, 예컨대 우리가 어떻게 의식을 가지는지, 어떻게 물체를 인식하는지와 같은 질문에 대해 완벽히 답하지 못하고 있다.



머릿속에 담긴 저마다의 소우주, 뇌


그만큼, 우리 목 위에 얹힌 두개골 속의 이 1.4kg짜리의 푸딩처럼 부드러운 이 조직은 복잡하고 또 신비롭다. 우리의 뇌에는 약 1000억 개의 신경세포가 들어 있는데³, 이는 대략적으로 우리 은하 내에 들어 있는 별의 수와 비슷한 수준이(그림 2). 또한, 이 뇌세포들은 서로와의 연결('서로 붙잡다' 는 뜻의 시냅스라고 부른다)을 통하여 그 기능을 하고 있는데, 뇌 내의 연결은 대략 1000조 개에 달하리라 추산된다.


그림 2. <우리 은하>. 그 지름은 10만 광년, 지구에서 태양까지 거리의 62억 배 정도다. 참고로 태양에서 지구까지의 거리는 1억 5천만 킬로미터 가량이다.

우리의 자그마한 마음 속에 지구의 크기에 대한 척도조차 직관적으로 담아내지 못한다는 것을 고려할 때, 의식에 담기에도 차마 아득한, 불가해한 우주를 우리는 각자의 머릿속에 담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여러분의 머릿속에도, 지나가며 마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그것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앞서 말했듯, 수많은 선구자들 덕분에 우리는 이제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하여 흐릿하게나마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발견들은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에게 돌아간 목록을 살펴보면 깨달을 수 있는데, 다음은 기초적인 뇌의 기능을 설명하는 이론들이다.


- 첫째, 뇌는 수많은 신경세포와 그 역할을 지지하고 돕는 교세포로 이루어진다.

(1880년대, 라몬 이 카할의 뉴런 독트린)
- 둘째, 이 신경세포는 둥글고 납작한 다른 세포들과는 달리, 아주 기다란 섬유를 내뻗고 이를 통해 서로 맞닿아 있다.
(역시, 골지 염색을 통한 카할의 관찰로 시작되었으며 실제 이 미세한 틈의 존재는 전자현미경의 도입으로 1950년대에 와서야 시각적으로 확인되었다)⁴,⁵
- 셋째, 이 섬유를 통해 신경세포는 <활동 전압> 이라는 전기 신호를 통해 신호를 주고(이것은 굵은 주 섬유인 축삭돌기를 통해 이루어진다), 받을 수 있다(이것은 얇고 펼쳐진 형태의 수상돌기를 통해 이루어진다, 1902년의 베른슈타인부터 1952년의 호지킨-헉슬리의 발견까지는 이 활동전압에 대하여 상세히 밝혔다).
- 넷째, 신경세포는 자신이 받아들인 신호들을 통합하여 다음 신경세포로 신호를 전달하거나, 하지 않는다(대개 카츠에 의하여 근신경접합에서 연구된, 1940년대부터 이어진 Summation 과 synaptic transmittion 연구).


말은 거창하지만, 간단히 풀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의 뇌에는 수많은 신경 세포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데, 이 각각의 신경 세포는 마치 흐르는 물과 같이 방향성을 가지고 있어서, A -> B -> C ->... 의 방향성을 갖추어 연결되어 있다. 이들은 이 방향을 따라 신호를 보내는데, 예컨대 B는 A로부터 신호를 받는다(상상해보라, 이들은 마치 팔을 위로 벌린 사람같이 생겼다. 위로 펼쳐진 팔은 안테나처럼 위에서 오는 신호를 받고, 다리와 발을 통해 다음 세포로 신호를 다시 보낸다, 그림 3).


그림 3. 미안하다. 사실은 팔 벌린 사람같이 생기진 않았다. 쉬운 비유를 위한 약간의 왜곡으로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길. 윗쪽이 무성한 나뭇가지가 "팔", 아래의 긴 선이 "다리"


 B 는 사실 A 뿐만 아니라 수백 수천의 세포들로부터 신호를 받는데, 이 각각의 신호는 어떤 것은 +의 신호고 어떤 것은 -의 신호다. B는 자신에게 주어지는 수천 개의 +와 수백 개의 -를 더하여 (과도한 단순화를 무릅쓰고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가 더 크다면 다음 세포로 신호를 보낸다.


 이와 같은 무수한 연결들이 이어져, 이들은 '논리적 결정' 을 내리는 신호 처리 장치가 된다. 예컨대, 우리가 왼쪽 접시에 놓인 음식과, 오른쪽 접시에 놓인 음식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우리의 대뇌에 들어 있는 신경세포는 시각이나 후각과 같은 감각을 받아들이고 처리한 후, 과거의 기억과 그것을 대조하여 음식의 가치를 평가한 후, 더 높은 가치를 가진 음식을 선택하도록 만들 것이다. 이러한 처리는 각각 시각을 받아들이는 신경세포, 기억을 저장하는 신경세포, 대조와 가치를 평가하는 신경세포와 운동을 촉발하는 신경세포의 긴밀한 연결과 논리 계산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신경 세포의 미세한 박동을 통해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으며, 근육을 움직이고, 체온을 유지할 뿐 아니라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고, 결정을 내리고 기억할 수 있다(혹은, 아주 보수적으로 주의하여 말하자면 대부분의 뇌과학자들이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의 놀랍고 아름다운 정신 세계는 결국 이 작은 세포들의 전기 펄스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같은 사실들을 보고 뇌를 생체 컴퓨터로 비유하고 이해해 왔다. 다음 글에서는 이 놀라운 창발적 과정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고, 인간이 만들어낸 컴퓨터와 자연이 빚어낸 뇌를 비교함으로써 새로운 시각으로 우리의 정신 세계를 조망한다.



미주 Endnote


 1. 신경을 뜻하는 단어 nerve는 힘줄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왔다. 실제로 비슷하게 생기긴 했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심장에 연결된 힘줄들을 보고, 심장에서 나오는 이 '힘줄' 들이 온 몸을 움직이므로 우리의 마음과 영혼은 심장에 위치한다고 생각했다.  


2. 이탈리아의 과학자 갈바니가 한 개구리 다리 실험이 대표적이다. 갈바니는 원시적 금속 전지에서 나오는 전류가 다리에 닿으면 운동을 일으키는 것을 관찰하고는, 전기가 생체 내 신호 전달을 위해 이용된다는 생각을 갖고 이를 생체전기라고 명명하였다. 이러한 발견 이전까지는, 신경을 타고 흐르는 것은 막연한 초자연적 이름으로 불렸었다. 예컨대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신성한 숨(pneuma)이라고 생각했고, 데카르트는 마치 튜브 같은 관 형태의 신경을 타고 돌아다니는 '동물혼animal spirit'  상정하였다.


3. 좀 더 정확한 수치로는 860억 개 정도이며, 뇌 내에는 신경세포뿐만 아니라 그를 지지하고 먹여살리는 교세포-풀 교자를 사용하며, 영어로는 glia로 glue와 같은 어원을 갖는다-가 또 그만큼 들어 있다. 이것을 어떻게 셌을까? 뇌를 가져다가, 조각내어 잘 간 다음 세포를 모두 녹인다. 세포 하나마다 핵이 하나 들어 있을 테니, 세포 핵의 개수를 세면 된다. 860억 개는 그러한 방법으로 얻어진 수치다(Frederico A C Azevedo et al. J Comp Neurol. 2009). 재밌게도 이 세포들은 골고루 분포하지 않는데, 컨대 우리 뒤통수에 달린 소뇌는 주먹만한 크기의, 전체 뇌 무게의 10% 를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무려 전체 신경세포 수의 80% 가 여기에 존재한다.


4. 예를 들어, 우리의 몸에는 발 끝부터 허리춤까지 쭉 이어져 있는 신경다발이 있다. 세포가 그만한 길이의 돌기를 뻗는 셈이며, 마찬가지로 우리의 머리 꼭대기부터 허리까지 쭉 내려오는 기다란 신경다발들도 있다. 족히 1미터는 될 것이다.


5. 이미 이러한 결과를 눈을 통해 확인하기 이전부터, 이론가들은 여러 형태학적 그리고 기능적 관찰과 수학 모델링을 통하여 신경세포가 연속된 것이 아닌, 전기적으로 서로 격리된 단일 구조물일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이는 놀라운 인간 지성의 성취가 아닐 수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것을 눈으로 확인하고자 하였고 전자현미경이라는 기술을 통해 결국 성취하고야 말았다. 과연 인간은 시각적 동물이다, 이전의 글 (22) 와 (23) 을 참고하라.


 6. 보통 흥분성, 그러니까 +를 보내는 말단이 억제성, -를 보내는 말단보다 많은 편이다. 신경세포 종류와 위치에 따라서 그 값은 매우 크게 다르지만, 대개 흥분성이 5배에서 10배 가량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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