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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 Jan 22. 2023

(40) 한국인은 밥심

공깃밥 속에 담긴 역사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보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장 앙텔므 브리야 사바랭




한국인이라면 꼭 보았을 법한 물건이 있다. 식당에서 보이는 동그란 철제 밥공기다. 여기에 밥을 담아 온장고에서 보관하다가 식사와 함께 내어주는 것은 한국의 독특한 식문화라고 할 만 하다. 평소에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던 것이지만, 왜 이러한 문화가 생겼을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왜 수많은 식당에서, 똑같이 생긴 같은 크기의 밥공기를 사용하여 밥을 제공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역사를 알아보자.



밥은 먹고 다니니


우리는 안부 대신 '밥 먹었니', 걱정할 때는 '밥은 챙겨 먹어라', 약속을 잡을 때는 '밥 한 번 먹자' 라고 한다. 그만큼 식사는 중요한 행위고, 한국에서의 식사란 곧 밥을 먹는 행위인 것이다('음식' 의 동의어로 '밥', 즉 쌀을 호화시켜 만든 음식을 지칭하는 단어를 쓴다는 것이 그를 지지하며, 생 쌀과 요리한 쌀을 지칭하는 단어가 다르게 있다는 것 또한 그렇다-영어로는 그저 cooked rice이지 않는가(미주 1)).

여기서 유추할 수 있듯, 지금도 우리 나라 사람들의 주된 탄수화물 공급원은 쌀이다.


그림 1. 화본과의 식물에 대한 묘사화. 구조적인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하단의 낟알 구조에 주목할 것. 켜켜이 감싸진 전분질 배아는 화본과의 특징 중 하나다.


신석기 시대 농경이 시작함에 따라 사유 재산과 잉여 재산, 분업이 생겨나며 문명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것이니 굳이 반복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이러한 농경이 시작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초본류 식물의 생존 방식을 거론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이전 글에서 짧게 다루었듯 화본류, 그러니까 풀(grass)근에 등장한 물군이다(그림 1).  화본류에는 인간의 주된 식사를 담당하는 벼, 밀, 옥수수, 귀리 및 보리가 속한다. 이들의 주된 특징은 한해살이 풀로, 한 해를 살고는 다음 세대를 위한 씨앗만을 남기고 죽는다는 특징을 가진다. 그렇기에 이들은 내년을 위하여 남기는 것 없이, 모든 에너지를 씨앗에 담는다. 인간은 이렇게 축적된 씨앗을 수확하고 저장하는 법을 알아냈다. 그것이 바로 농경의 시작이 되었다(빠르게 상하는 과실과는 달리, 화본류의 씨앗(곡식)은 수분기 없이 농축된 단백질과 전분으로 되어 있고, 외부의 침입을 막는 단단한 껍질이 켜켜이 감싸고 있다. 이는 식물이 자신의 종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으나, 인간은 이 특징을 추수 후 장기간 보존하기 위하여 사용하고 있다(그림 2)).


그림 2. 장기간 보존되는 화본류의 낟알은 떨어내 장기간 보관하기에 적합했고, 이는 곳간 문화로 이어졌다. 출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이런 화본류 중, 최소한 9천 년 전부터 경작되기 시작한 쌀은 밀, 옥수수와 함께 인류의 탄수화물 공급을 담당하는 3대 작물 중 하나이며 그 중에서도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전 세계적으로 40억 명이 쌀을 주식으로 살아가며, 특히나 아시아권에서는 그 비중이 높아 90% 가량의 쌀 소비가 아시아에서 일어난다(미주 2)). 비록 국내 쌀 소비량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음에도(대략 30년 전보다 절반밖에 섭취하지 않으며, 작년 대비도 3% 가량 감소했다) 여전히 우리는 인당 연간 60kg가까이의 쌀을 섭취하고 있다.

이런 쌀을 섭취하는 대표적인 방식은 '밥을 짓는' 것이다. 즉 물을 도정된 쌀알에 넣고 적절한 온도와 시간을 맞추어 끓여 쌀알 내부의 전분을 호화시켜 소화되기 좋도록 만들되, 낱알이 푹 퍼지지 않도록 만든 것이다(그림 3).


그림 3. 동아시아에서는 단립종의 자포니카 쌀을 이용해 밥을 짓는다. 이런 쌀로 짓는 밥에는 딱 적절한 양의 물과 불 조절이 필요한데, 이는 전기밥솥이라는 독특한 가전을 낳았다.


여담이지만, 렇다면 왜 서양권의 밀로 만드는 빵과는 다른, 이러한 식사법이 생기게 되었을까? 그는 곡물의 다른 특성에서 기원하는데, 밀은 쉽게 부서져 가루를 내기 수월할 뿐 아니라 글루텐이 풍부하여 반죽을 만들 수 있다(쌀은 반죽이 되지 않아서, 동남아 등지에서는 쌀가루 반죽을 얇게 펴서 쪄내는 방식으로 국수를 만든다). 이렇게 만든 밀가루 반죽은 토기에 물을 넣고 장시간 가열하여 조리할 필요 없이 달군 돌에 붙이면 몇 분만에 식사를 할 수 있었고, 수분이 날아가 보존성도 우수해진다(그림 4; 미주 3).


그림 4. 밀가루 반죽을 고온으로 바로 구워 만든 플랫브레드. 수많은 사람들의 주식이 되고 있다. 미주 3 참조.

공깃밥의 역사


약간 다른 논점으로 넘어갔는데, 우리의 본디 궁금증으로 돌아가 보자. 왜 한국에선 독특한 공깃밥 문화가 있을까? 이는 1960년대 전후의 한국으로 돌아가야 이해할 수 있다. 이 당시는 전쟁 후 쌀 생산량은 부족한데 태어난 사람들은 많아 식량이 부족한 시기였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미국에서 다량으로 지원받은 저렴한 밀가루 및 잡곡의 섭취를 장려하는 혼/분식 장려운동을 시행했었다(그림 5; 당시에는 식당에서 주 2회 쌀을 이용한 음식 판매를 금지하였었으며, 설렁탕이나 곰탕 등의 국물 요리에 보통 밥을 말아 먹음에도 불구하고 소면이 들어 있는 것도 해당 정책의 잔재이다(미주 4)).


그림 5. 혼분식 장려 운동 포스터. 국수나 빵 등이 서서히 대중화되기 시작하였고, 그 잔재는 지금도 '분식' 이라는 카테고리로 남아 있다.


그림 6.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할, 밥공기.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독특한 식문화다.


당연히 식당에서 마구잡이로 밥을 퍼주는 문화도 개선의 대상이었고, 이를 획일화하여 정리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1974년 음식점에서는 반드시 통일화된 스테인레스 밥공기에 담은 밥만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규칙을 공표하게 되었다(그림 6; 이 규격은 1976년에 정확히 정해졌는데, 10.5cm의 지름에 6cm 높이의 밥공기에 80% 높이로 담는 것이 규정이었다. 우리가 많이 보는 그 밥공기다!). 비록 이제는 쌀 소비량이 너무 줄고 공급은 늘어나 쌀 장려 운동을 펼 만큼 상황이 역전되었지만, 이미 널리 퍼져 문화가 되어 버린 밥공기는 여전히 우리의 식탁을 차지하고 있다.



미주Endnote


미주 1. 우리 말도 그렇지만, 영어에서도 주식인 빵은 그 중요성에 따라 수많은 단어를 낳았다. 영주(load) 라는 말은 '빵을 관리하는 사람hlaford' 이라는 앵글로색슨어에서 왔다(비슷한 맥락으로 부인(lady) 또한 '빵을 반죽하는 사람hlaefdige' 에서 왔다). '빵을 나눠 먹는 사람com+panion' 은 곧 '동료' 와 '회사' 가 되었고, '빵을 두는 곳pantry' 는 '식료품 저장고' 가 되었다. 빵을 뜻하는 라틴어 단어 panis 는 로망스어 세계의 단어로 퍼져나가서 이탈리아어 pane, 프랑스어 pain, 포르투갈어 pan 가 되었고 일본의 팡을 거쳐 우리나라 말의 빵이 되었다. 게르만 계열은 반대로 발효하다brew 에서 온 bread 계열의 단어를 가진다(독일의 Brot, 네덜란드어의 broot, 덴마크어의 brøt 등).


미주 2. 쌀 농사는 밀 대비 단위면적당 높은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어서, 인도나 중국과 같은 아시아권 국가가 엄청난 인구를 지탱할 수 있는 주요한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따뜻한 기후에서 자라는 쌀은 날만 잘 맞는다면 연간 두 번, 세 번도 수확을 할 수 있다. 대신 늘 논밭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대규모 관개 시설이 꼭 필요했고, 손이 많이 가는 농사법 때문에 집단 내의 협력이 필요했다. 일부 학자는 이와 같은 사회적 차이가 동서양의 집단주의에 대한 관점의 차이로 이어졌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펴기도 한다. 이전의 글에서 살펴본 것처럼, '먹는 것이 곧 우리' 가 된 것.


미주 3. 이러한 빵을 플랫브레드라고 부른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인도의 난이 있으며, 더 익숙한 음식으로는 피자가 있다(피자는 피타라는 플랫브레드 위에 소스를 올린 음식이다). 제빵에 있어 '반죽을 구운 것' 이 첫 번째 도약이었다면, 두 번째 도약은 이 반죽을 바로 굽지 않고 따뜻하고 습한 곳에 보관한 것이다(아마 귀찮았던 제빵사의 발견이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연히 섞여 들어간 빵효모는 발효를 통해 반죽에 기포를 불어넣으며 반죽을 더욱 푹신하고 부드럽게 만들었다. 그러나 반죽을 치대고 발효하는 것은 고된 일이므로(그래서 중세 유럽에서는 전문 직업으로의 제빵사가 있었다), 전 계적으로 보면 일상적인 식사로는 플랫브레드가 훨씬 많이 소모된다.


미주 4. 이때 생겨난 새로운 문화 중 하나가, 또 우리 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녹색 병에 담긴 소주다. 본디 소주란 쌀과 같은 곡물 발효주를 증류하여 만드는 증류주인데, 쌀 소비를 줄이기 위해 이를 금지했고 카사바와 같은 저렴한 재료로 만든 주정을 희석해 만든 녹색 병의 희석식 소주가 등장한 것이다. 나는 술을 꽤나 사랑하는 편인데, 유일하게 좋아하지 않는 술이 희석식 소주다(안동소주는 정말 좋아한다). 안타까운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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