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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 Jan 08. 2023

(39) 눈 먼 시계공, 그리고 눈

눈은 어떻게 진화하였는가?

유일한 시계공은 눈 먼 물리학적 법칙들뿐이다.

-리처드 도킨스, <눈 먼 시계공> 중



생명이 가지는 놀라움


생명은 놀랍기 그지없다. 그것은 돌이나, 인공물과 같은 물건들과는 뚜렷하게 구별되며, 우리는 아직도 생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미주 1). 그러한 놀라움은 (인간의 지적 호기심에 힘입어) 생명의 기원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졌고, 이에 대한 제일 '간단한' 해답은 '신이 하셨다' 였다. 어떻게인지는 모르겠지만, 전능한 신적 존재가 그것을 만들었고, 이후에는 생명체의 복제하는 특성을 통하여 유지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논증이 윌리엄 페일리의 시계공 논증인데, 간략하게 소개하면 이런 것이다: "길을 걷다가, 시계를 발견했다고 해 보자. 그 시계는 너무나 복잡하기에, 자연스럽게 부품들이 굴러다니다가 한데 모여서 기능하는 시계가 되었을 리는 없다. 누군가, 그러니까 시계공이 만들었다는 것이 분명하다. 더욱 복잡한 생명체도 마찬가지다. (초자연적/신적인) 누군가가 그것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림 1)


그림 1. 복잡한 기계식 시계. 이 시계는 다양한 기능(컴플리케이션) 을 가지는데, 우리는 그것이 일견 복잡해 보일지라도 톱니의 움직임에 의한 것을 직관으로 안다.


잘 알려진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이에 대해 이렇게 논박한다: "그렇다, 생명은 시계공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 시계공은 눈 먼blinded 시계공이며, 그 정체는 진화다". 이는 진화 과정이란 어떠한 목적과 설계를 가지고 진행되는 것이 아닌, 닥치는 대로 손에 잡히는 것을 이용해 임기응변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땜장이와 같다는 의미를 내포한다(이전 글의 6번 미주 참조)


오늘은, 이 눈 먼 시계공이 어떻게 눈을 만들어 냈는지에 대해 알아보자(나는 이 글을 전략적으로 카메라의 역사를 담은 글 뒤에 배치하였는데, 그 이유는 글의 진행에 따라 살펴볼 수 있을 테다).



진화의 시간을 거슬러


이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 우리는 시간을 거슬러 진화의 방향을 거꾸로 돌려야 한다(미주 2). 눈의 기원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무려 37억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눈은 커녕, 세포 단 하나로 이루어진 생명체까지 돌아가야 한다. 남세균과 같은 광합성을 하는 자그마한 세균들이 그 주인공이다.


그림 2. 최초의 광합성 생물 남조류. 37억 년 된 화석인 스트로마톨라이트에서도 이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남세균은 약 37억 년 전 나타난 광합성을 진행하는 생명체다(미주 3). 이들이 광합성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결국 빛을 받아들여 생명의 화학적 신호로 바꾸어 주는 물질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어떠한 물리 현상을 생명이 사용하는 물리화학적 신호로 변화시키는 물질이 없다면 우리는 그것을 인지할 수 없다는 말과도 같다. 우리가 중성미자나, 중력파나, 전파나 자기장을 감지하지 못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우리는 중성미자나 전파를 우리가 사용하는 화학적 신호로 바꾸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중성미자나 중력파를 검출하는 것은 현대 인류의 첨단 공학 기술로도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그림 3)). 이것이 바로 레티날과 같은 광수용성 물질들이다. 이러한 물질들은 빛을 만나면 그 구조가 변화함으로써, 빛을 화학적 신호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 옵신이라고 부르는 단백질이 결합함으로써 신호의 전달을 더욱 유연하고 민감하게 만들었으며, 이것이 바로 로돕신이다(우리는 로돕신에 대해 이미 알아본 적이 있다: 1년 전의 글 참조).


그림 3. 일본의 중성미자 검출기인 수퍼 카미오칸데. 5만 리터의 물과 1만 개의 검출기가 지하 1킬로미터 깊이에 위치한다. 우리는 이런 시설 없이는 중성미자를 느낄 수 없다.

이러한 광수용성 단백질을 가지고서 생명들은 광합성을 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곳에 가져다가 땜질하여 응용했다. 예를 들어서 플랑크톤과 같은 작은 생명체들은 빛이 있을 때는 따뜻한 수면으로 올라가 광합성을 하고, 빛이 없는 밤이 되면 가라앉는다. 이러한 빛의 유무에 따른 적절한 반응을 선택하는 데에 이용되던 광수용 단백질들은 그 양이 많아지고, 특정한 세포 또는 방향에 많이 몰리게 되었으며 이런 '광반응성 세포' 들은 빛을 감지하기 위해 한 쪽에 조밀하게 모였다. 일부 편충이나 작은 미생물 따위에서 관찰되는 안점(eyespot)이 생겨난 것이다(그림 4). 이들은 안점을 통해 빛의 유무뿐 아니라 강도와 대략적인 방향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이 생명의 번성에 크나큰 도움이 되었음은 자명하다. 먹이를 보고 쫒을 수 있는 포식자, 포식자의 접근을 보고 도망갈 수 있는 피식자는 그렇지 못한 생명체들보다 월등히 잘 생존하였을 것이다. 지어 일부 조개류들도 눈이 있다! 이들은 이 눈을 이용해 포식자로부터 도망친다(그림 5).


그림 4. 붉게 보이는 유글레나의 안점. 카로틴 색소 때문에 붉고 주황빛으로 보인다. 이 안점을 통해 빛을 따라가 광합성을 할 수 있다.
그림 5. 가리비의 눈. 가만히 앉아 고착형 생활을 하는 다른 조개들과는 달리 가리비류는 활동적으로 수영하기 때문에 이러한 시각계를 가지며, 독특히 이들은 반사식 눈을 가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안점은 더 많은 빛을 받아들이고, 방향을 특정하기 위하여 넓어지며 속으로 움푹 패여 구덩이와 같은 구조를 이루었다(컵 모양 눈eyecup, (미주 4)). 지속적으로 깊어지며, 보호를 위해 입구는 호리병처럼 좁아지게 되었고, 마치 핀홀과 같은 작은 구멍만을 남기고 입구는 거의 닫혀 버리게 되었다. 우리가 이전 글에서 살펴본 바늘구멍 사진기와 같이 작동하, 상을 형성하는 능력이 생긴 바늘구멍 눈이 탄생한 것이다(그림 6).


그림 6. 앵무조개의 눈. 이들의 눈은 아주 간단한 구조로, 자그마한 바늘 구멍을 남기고 닫힌 눈 안에 광수용성 세포들이 들어가 망막을 형성한다.


이후의 일은 우리가 잘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바늘구멍 안의 모양을 잘 유지하기 위해 탱탱한 물질이나 액체가 차오르게 되었을 것이고, 보호를 위해 표면에 튼튼한 막을 씌웠을 것이다. 이 막은 변형되어 더 높은 해상도를 위하여 둥근 렌즈처럼 변형되었고 결국 빛을 굴절시켜 모아 주는 역할을 하게 되었으며, 근처의 근육은 이 렌즈를 앞뒤로 밀거나 잡아당김으로써 초점을 조절할 수 있게 만들었다(물고기는 근육을 이용해 짜내듯이 렌즈를 밀어내는 식으로 작동하고, 조류나 포유류는 탄력 있는 렌즈를 둥근 근육으로 잡아당겨 조절한다). 카메라 눈camera eye 이 탄생한 것이다. 이 문단을 보며, 카메라의 발달 과정을 대조해 보라(그림 7). 빛에 반응하는 감광성 물질에서 카메라 옵스큐라(핀홀 카메라)로, 렌즈의 도입과 기계 장치를 통한 렌즈식 카메라로 전환된 과정을 비교해 보라. 놀랍도록 비슷한, 수렴하는 일치성을 보여준다(미주 5).


그림 7. 눈의 진화 과정과 대표적인 생물들. 좌측에서 우측으로 갈수록 더 최근에 등장한 눈의 형태다.

과거에 대한 추측: 유연 관계와 분자 시계


사실 눈은 대부분 연조직으로 이루어져 있어 화석이 남아있기 어려워 화석으로 발견되는 가장 오래된 연대는 약 6억 년 전이다(그러나 거의 분명히, 그 이전부터 눈은 존재했을 것이다. 화석으로 남지 못한 것일 뿐). 그러나 현존하는 종들로부터의 진화적 유연 관계를 추측함으로써 위와 같은 추을 해 볼 수 있다. 비유하자면, 모르는 두 사람이 우연일 수 없는 서로 딱 들어맞는 펜던트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이용해 이들이 과거의 인연이었던 것을 알 수 있는 것과 같다(그림 8). 구체적인 예시로는, 대부분의 동물들이 갖는 망막은 그 구조가 비슷하지만(들어맞는 펜던트를 가지고 있지만), 그 앞의 수정체는 동물군마다 다르다(펜던트가 다르다)(미주 6). 이와 같은 진화적 유연 관계의 비교를 통하여 우리는 보지 못하는 과거를 추측할 수 있다.


그림 8. 전혀 모르던 두 사람이 정확히 들어맞는 두 장신구 조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은 과거의 연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진화적 추론도 그렇다.


이는 형태적 특징뿐 아니라 유전자 수준에서도 동일한데, 예를 들어, 인간과 쥐, 초파리까지 수많은 동물들은 동일한 유전자를 가지고 눈을 형성한다((그림 9-10); 초파리에서의 eyeless 유전자, 그와 상동인 인간이나 포유류의 Pax 유전자등이 그들이다. 퀴즈: 그렇다면 이 유전자의이름은 왜 eye 유전자가 아니라 eyeless 유전자인가?(미주 7)).


그림 9. 정상 초파리(좌) 와 눈이 없는 초파리 (우). 이러한 차이는 Eyeless유전자의 돌연변이로 인해 생긴다. 인간도


이 유전자를 직접 읽어들일 수 있게 된 지금, 이 유전자의 변화한 정도를 기반으로 우리는 특정 종과 종이 분화되고 유전자가 변화해온 것을 추적할 수 있게 되었다. 앞서 이용한 펜던트 비유를 그대로 사용하자면, 잘 들어맞는 펜던트를 이용하면 이들이 '과거에 만났었던' 것은 알 수 있지만, 그게 얼마나 과거인지는 알 수 없다. 이를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현미경으로 펜던트를 자세히 살펴보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표면에는 무작위적으로 생겨난 흠집이 보일 것이다. 예를 들어 평균 1년에 12개의 흠집이 생겨난다고 하면, 면밀히 조사하여 펜던트가 갈라진 이후 독립적으로 생겨난 흠집의 개수를 측정하고, 이를 이용하면 펜던트가 둘로 쪼개진 이후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비로 1962년 라이너스 폴링과 주커칸들이 만들어 낸(이들은 원래 헤모글로빈의 단백질 서열을 분석하는 생화학적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인간과 침팬지, 그리고 고릴라의 헤모글로빈에서 보이는 약간씩의 서열 차이를 이용해 이들 종이 분화한 시간을 추측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고 이를 현실화시키게 되었다) 분자 시계molecular clock의 간략한 개념이다.


그림 10. Eyeless 유전자의 인간 버전인 Pax 유전자가 하나 결손되면 인간에서는 무홍채증이 생긴다. 두 개 결손되면 눈이 전혀 발달하지 않게 된다.



나가며


오늘은 간략한 진화학적 연구 방법론에 대하여 알아보며, 이전 같이 살펴본 카메라와 눈의 상동성에 주목하여 눈의 진화 과정을 훑어보았다. 그 과정에서 놀라운 비슷함을 알아볼 수 있었는데, 빛에 반응하는 감광성 물질부터 핀홀 구조, 그리고 렌즈 등이 그렇다. 이러한 상동성은 무엇을 시사할까? 눈과 카메라는 우리가 살아가는 자연에 깔린 물리 법칙에 의하여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눈은 눈 먼 시계공에 의해, 카메라는 눈이 달린 인간 공학자에 의해.



미주Endnote


미주 1. 우리는 이제 생명체가 세포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세포는 마치 아주 작은 기계 장치처럼 결합하고, 회전하고, 변형되는 수많은 요소들로 이루어진 것을 알고 있다(그리고 그것은 그럭저럭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마치 정교한 기계식 시계처럼 작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마음과 의식에 적용되는 순간 그 경계는 흐려진다(이전의 글 참조). 우리의 신경 세포 하나를 들어내고, 그것을 미세한 실리콘 칩으로 대체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것을 끊임없이 반복하여 결국 우리의 뇌가 완벽히 대체된다면? 그래도 의식이 남아있는가? 우리의 이해는 아직 여기에는 도달하지 못하였다.


미주 2. 지금까지의 내 글을 읽어 온 독자들이라면 눈치챌 법하지만, 나는 생리학(생물이 어떻게how 작동하는가?) 에 대해 연구하지만, 이는 결국 해부학과 발생학, 그리고 진화학에 기반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눈 먼 땜질로 만들어진, 명확한 정답과 법칙이란 없는 생명 현상에 '왜' 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게 해 주는 유일한 증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생명 현상에 있어, 유일한 법칙은 '번성하고 생육하라' 일 뿐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세 과목은 생명과학 분야에서 제일 인기 없고 마이너한 세 분야기도 하다.


미주 3. 이들은 산소를 만들어내서 오존층을 형성시켰고, 이는 결과적으로 산소 호흡과 생명의 육상 진출을 가능케 했다. 또한 이들은 아직도 우리 곁에 살아 숨쉬는데, 식물 속에 들어있는 엽록체가 이들이다. 식물이 되는 과정에서 큰 세포가 남세균을 '잡아먹어서', 이렇게 세포 안에 갇힌 남세균이 엽록체가 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37억 년 전과 마찬가지로 그대로 살아가고 있는 남세균도 있는데, 호주의 샤크 만과 같은 특수한 몇몇 지역에서는 37억 년 전과 그대로 스트로마톨라이트라고 부르는 독특한 구조체를 형성하며 남세균이 여전히 자라고 있다.


미주 4. 속으로 움푹 들어가는 것 대신, 밖으로 튀어나오는 식으로 방향성을 확보한 눈도 있다. 곤충의 겹눈이 그 예시인데, 이들은 마치 둥근 풍선 표면에 스티커를 다닥다닥 붙인 형식으로 눈의 구조를 이룬다.


미주 5. 이것은 생명이 창조되었다고 주장하는 몇몇 사람들의 '환원 불가능성 논증' 에 대한 좋은 반례가 된다. 간단히 이것은 '반만 만들어진 눈이 어디에 쓸모가 있는가?' 라는 주장인데, 실제 눈은 우리가 카메라를 부품으로부터 뚝딱 만들어내는 것처럼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간단한 구조로부터 점차 복잡한 부품이 점진적으로 추가되며 만들어지기 때문에, 충분히 환원 가능하다는 것이다. 참고로 이는 시계공 논증도 잘 설명해 줄 수 있는데, 생명의 유전 메커니즘은 아주 간단하고 무작위적으로 만들어질 법한 것을 만들어 내면 그것을 '고정하고' 개량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아주 끔찍하게 느리긴 하지만 결코 후진하지는 않는 기계와도 같다. 충분히 긴 시간이 주어지면, 이 기계는 결국 지구를 한 바퀴 돌 것이다. 실제로 한 논문에서 무작위적 변이를 통해 눈이 진화하는 데 걸리는 세대 수를 예측했는데, 그 값은 약 36만 세대다(Nilsson, 1994, Proc Biol Sci.).


미주 6. 예를 들어 삼엽충은 탄산칼슘으로 만들어진 수정체를, 무척추동물은 크리스탈린이라고 불리는 단백질류를 통해 수정체를 형성하며, 척추동물은 열저항성단백질과 유사한 다른 종류의 수정체 단백질을 이용한다. 이는 이들이 같은 망막을 가지고 있었지만 수정체는 독자적으로 만들어 내었음을 의미한다. 예컨대, 이들은 어릴 적 반으로 쪼갠 펜던트를 가지고 헤어졌지만 커가는 도중 여기에 다른 장식용 보석을 박아 넣었다.


미주 7. 이것은 고전적 유전학 연구는 어떤 유전자를 없애거나 기능을 잃게 만든 후, 그 때 나타나는 형태를 기반으로 이름을 붙였기 때문이다. A 유전자를 없애면 눈이 없는Eyeless 초파리가 태어난다는 것은, A 유전자가 눈을 형성하는 유전자라는 뜻이겠다.


* 참조 문헌:

Schwab, I. The evolution of eyes: major steps. The Keeler lecture 2017: centenary of Keeler Ltd. Eye 32, 302–313 (2018). https://doi.org/10.1038/eye.2017.226

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 지면 관계상 이 글에서 다루지 못한 흥미로운 포인트도 많으니, 읽어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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