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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이 May 02. 2023

제왕절개가 특별한 이유

대학병원 인턴이 보는 제왕절개

본 글은 비위가 약하신 분들은 읽지 않으시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학생 때부터 인턴이 된 지금까지 다양한 수술들을 보조했다.

일반외과, 정형외과, 성형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이비인후과, 안과 등.

각 과마다 수술장에서 나타나는 특징들이 있다.


정형외과는 무균 상태를 유지하는 것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소독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

신경외과는 종종 신경이 다치지 않았는지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환자를 깨워 놓은 상태로 수술을 하기도 한다.

흉부외과는 심장이나 폐를 건드리기 때문에 환자의 생체징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의무가 있는 마취과가 긴장한다.


그 중 가장 독보적인 것은 산부인과의 제왕절개다.

제왕절개가 특별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뱃속에서 아기 머리가 나온다는 것이다.

까맣고, 빳빳한 털뭉치가. 뱃속에서. 


보통은 배를 가르면 주로 보이는 색은 빨간색, 노란색, 하얀색, 갈색이다.

빨간 피, 노란 지방, 하얀 뼈와 혈관, 갈색 장기들. 

질감은 대부분 물에 적신 듯, 또는 기름막에 둘러싸인 듯 매끈하다. 

대개는 피가 조금씩 스며 나오면서 점점 붉게 물든다. 

배를 가르면 보이는 전형적인 모습에는 학생 때부터 수술을 참관하다 보면 금방 익숙해진다. 


제왕절개는 특히 피가 굉장히 많이 나는 수술이다.

아기를 꺼내기 위해 자궁을 가르면 양수와 함께 왈칵 피가 쏟아져 나온다.


그러면 붉은 피로 질척이는 자궁 안으로 교수님이 손을 집어 넣는다.

교수님 손이 아기 머리를 찾아내면 손으로 머리를 잡고 조심스럽지만 강하게 당긴다.

그러면 자궁의 절개부위 사이로 아기의 머리카락이 보이기 시작한다.

피와 양수에 젖어 잔뜩 엉켜 있는, 까맣고 삐죽삐죽한 머리카락 뭉치가. 


배를 갈랐을 때 항상 보던 광경, 질감, 색들에 익숙해져 있는 나의 눈에는

뱃속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머리카락이 상당히 이질적이다.


빨간색도, 노란색도, 하얀색도, 갈색도 아닌,

혈관처럼 탱탱하지도, 지방처럼 미끌하지도, 장처럼 흐물흐물하지도, 장기 표면처럼 매끈하지도 않은,

덥수룩하고 새까만 머리카락.


아기 머리카락, 힘을 주어 꺼내면 주욱 딸려오는 아기의 몸통, 사지, 뒤집으면 보이는 아기 얼굴. 


배를 갈라 손을 집어 넣어 꺼내보면 누군가의 머리카락이 있다니.

그 반대편에 오밀조밀 물에 푹 적셔진 아기의 얼굴이 있다니. 

저걸 꺼내면 그게 아기라니.


두 번째는 수술 중 모두가 한 마음으로 축하할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다른 수술과는 다르게 제왕절개에서의 긴장감에는 기대감이 포함되어 있다.

대개 수술은 뭔가 건강에 문제가 생겨서 바로잡기 위해 한다.

수술이 가장 잘 되면 다시 건강한 원래 상태로 돌아간다.

말하자면, 잘 되면 본전이다.

하지만 제왕절개는 다르다.

모두가 건강하게 수술이 잘 끝나면 아기가 태어난다.


대학병원의 제왕절개는 산모나 아기가 위험한 상황인 경우가 흔하다. 

그러다보니 일촉즉발의 다소 긴박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기도 한다.

집도하는 교수님은 예민해질 수밖에. 

"야 제대로 잡아!"

"빨리 주세요, 빨리."

수술장의 차가운 공기 속 날카롭게 울리는 말들. 


"으에엥"

다소 긴박하게 진행된 제왕절개 끝에, 

소중한 생의 시작을 알리는 가녀린 아기 울음소리.

많은 감정들이 수술장을 채운다.


학생들의 표정은 경외감으로 가득 찬다.

대개 학생들은 아기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제왕절개를 집도한 교수님들은 저마다 다른 행동을 한다.

대개는 산모에게 축하의 말을 건낸다.

"여자 아이네요. 축하합니다. 고생하셨어요."

신께 아이의 축복을 비는 기도를 올리는 교수님도 있다.

"하느님, 이 아이를 축복해주시고 아이의 가정을 돌봐주십시오."


산모는..

아이를 가져보지 않은 내가,

산모의 마음을 감히 헤아릴 수 있을까.


한 시름 놓은 교수님과 레지던트들은 아기는 소아과에 맡기고 이제 산모에게 신경을 집중한다. 

산모가 너무 많은 피를 흘려 위험해지지 않도록 주의하며 수술이 마저 진행된다.


모두가 이렇게 소중한 생으로 태어났겠구나, 하는 진부한 생각이,

머리가 아니라 마음에 떠오른다.


세 번째는 수술 중 환자가 깨어 있다는 것이다.


수술 중 환자가 깨어 있는 경우는 꽤 있지만,

제왕절개의 경우 환자의 요동치는 감정이 그 어떤 수술에서보다 극적이다. 


학생실습 때 제왕절개 수술 보조를 했던 기억이 4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본과 3학년 실습을 막 시작하고 첫 턴이 산부인과였으니까, 수술 보조 경험도 한두번 밖에 없었던 때였다.


제왕절개 수술 시에는 깨어 있는 산모를 바로 눕히고,  

수술이 이루어지는 부위인 아랫배를 소독한 후 절개부위 근처 외에는 모두 파란 무균 천 여러 장으로 덮는다. 

그 중 한 장은 산모의 어깨 부근에 커튼처럼 설치된다. 

이 천이 시야를 가려 산모는 수술하는 의료진을, 의료진은 산모의 얼굴을 볼 수 없다. 

가장 단순한 역할을 하는 보조자가 산모 머리와 가장 가까운 쪽에 서게 된다. 

그래서 학생은 대개 산모 머리쪽에 선다. 


의학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가운을 입고 장갑을 착용하여 무균적인 상태가 되고 나면 오염을 조심해야 한다. 

수술장에서 교수님과 레지던트들은 학생들이 무균 상태를 잘 유지하고 있는지에 상당한 주의를 기울인다. 

혹여나 오염이 되면 환자가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파란 무균 천 위는 안전한 곳이므로 대개는 학생이 무균천 위에 두 손을 올려놓도록 한다.  


산모의 머리 가까이, 산모 몸에 딱 붙어 서서 윗배 쪽에 손을 올려놓고 있는 나. 

열심히 수술을 지켜보던 중,

환자의 몸과 닿아 있는 내 몸으로, 그리고 손바닥으로 환자의 호흡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 순간 환자가 깨어있다는 사실에 모든 신경이 집중된다. 

수술에 집중을 해야 하는데..


머릿속이 온갖 생각과 감정들로 뒤엉킨다. 

얼마나 무서울까, 얼마나 걱정될까, 얼마나 낯설까, 얼마나 외로울까, 얼마나 불안할까.

의료진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반응하는 산모. 

긴장감에 불규칙하게 숨을 몰아쉬다가 의료진이 말을 하면 숨을 멈추고 귀를 기울인다. 


아기를 꺼낼 때에는 보통 윗배를 강하게 누르곤 한다. 

치약 짤 때와 비슷한 원리다. 

윗배를 누르는 것이 불편한지 작게 신음을 내는 산모. 

"더 세게 눌러!"

잠깐 산모의 감정을 무시하려 애쓰며 더 세게 윗배를 누른다. 

하지만 여전히 혼잡한 머릿속. 

힘들겠지? 아프겠지? 숨쉬기 어렵겠지? 무섭겠지? 불안하겠지?


드디어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고,

동시에 울음을 터뜨리는 산모. 

흐느끼는 소리와 함께 속수무책으로 들썩이는 산모의 몸. 

고스란히 내 몸에 전달되는 진동. 


어지럽다. 

사실 아까 환자의 호흡이 느껴진 순간부터 어지러웠다. 

눈 앞이 자꾸만 까매진다. 

큰일이다. 

고개를 들어 절레절레, 고개를 가로저어본다. 

다정하다고 소문이 난 교수님께서, "졸리니?" 물어보신다. 


"아닙니다, 어지러워서요." 

다음 순간 다리에 힘이 빠져 푹 내려앉는다. 

다행히 교수님의 재빠른 부축으로 아주 쓰러지지는 않는다. 

"아이고, 간호사 선생님 베드 하나만 가져다주세요. 학생부터 눕히고 마저 진행하죠." 


악! 쪽팔려. 

수술보조하다 신콥(*)해서 수술장 베드에 누워있는 신세라니. 

*신콥: 한글로는 "실신"이나 말이 주는 느낌에 비해 별거 아니다. 이유는 다양할 수 있으나 끔찍한 상처를 보거나 피를 뽑다가 신콥하는 경우가 있다. 모종의 이유로 순간 혈압이 감소해 쓰러지는 것. 주저앉아서 5분만 있어도 괜찮아진다. 

재밌는 건 나는 이후로도 환자가 깨어 있는 수술에서는 종종 신콥 전조증상을 경험했다는 거다. 

수술이 얼마나 그로테스크한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수술장을 나와 산부인과 의국으로 돌아가니 이미 소문이 퍼져 있더라. 

"씨섹(제왕절개) 보다가 신콥한 사람이 너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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