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어땠을까 - 수정

by 율이

사진의 하늘은 하루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대의 하늘이다.

이 시간대의 하늘은 핑크색이기도, 주황색이기도, 또 어느 날은 노란색이기도 하다.

걷다가 이런 하늘을 발견하면 아무리 바빠도 잠시 멈추고 느릿한 시간을 보내곤 한다.

하늘이 아득하게 물들어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도 더 찰나이기에.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하늘은 열세살 때 미국에서 봤던 하늘이다.

세 남매 중 가장 물욕이 없던, 더 정확하게는 오빠랑 동생이 배부르면 나도 배불렀던 내가 유일하게 욕심 부렸던 한 가지가 미국행이었다.

훗날 부모님은 "너가 더 큰 세상을 보고싶어 했다"고 포장했지만 당시 내가 느꼈던 것은 설렘, 벅참 같은 종류의 감정은 아니었다.

갑갑하다,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다 에 좀 더 가까운 감각.

어떤 생각이었는지 정확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다음에 가지 않겠냐"던 부모님의 말씀에 고집스럽게 "싫어. 무조건 갈거야." 라고 했던 장면만큼은 똑똑히 기억에 남아 있다.

이토록 선명히 뇌리에 박혀있는 이유는 나의 미국행이 부모님과 나머지 남매들에게는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질끈 외면해버렸던 탓이다.

죄책감 대신 감사함만 남기기로 하자.


마법같은 하늘에 정신을 빼앗겼던 그 날은 새로운 환경에 완전히 적응한 이후의 어느 날이었다.

호스트맘에게 허락을 구한 후 조깅을 하러 혼자 집 앞 거리로 나왔었다.

MP3로 노래를 들으면서 조깅도 하고, 줄넘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조깅을 할 때 힘이 달리기 시작하면 고개가 점점 들어지면서 하늘이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어?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분명 반대 방향으로 달릴 때 봤던 하늘은 지평선 부근이 주황색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 눈에 보이는 색은 분홍색이다.

뭐지?

잠시 멈춰 서서 뒤를 돌아 보니, 역시 주황색이 맞다.

이 쪽은 주황색, 저 쪽은 분홍색. 저기는 분홍색, 여기는 주황색.

한 바퀴를 핑그르르 돌면서 보니 꽤나 선명한 경계를 두고 하늘의 반은 지평선 근처가 주황색, 나머지 반은 분홍색이다.

그게 너무 신기해서 한 바퀴, 두 바퀴, 느릿한 원을 그리다가, 철푸덕 땅에 앉는다.

문득, 한국에 있을 때 넓은 운동장을 보면 마음이 아렸던 기억이 난다. 잊고 있었는데.

갑갑함, 숨막힘, 미어짐, 그런 것들이 다 아득하게 느껴진다. 1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도.


미국에서 돌아온 나는 내내 그 노을을 그리워했고, 내내 부모님을 많이도 힘들게 했다.

그러면서도, 미래를 내 손으로 망쳐버리고 누군가를 원망하는 것은 죽기보다 싫어서, 중요한 순간들에는 독하게 노력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대학 졸업 후.

대학병원에서 의사로서의 첫 해를 보낸 나는 곧장 레지던트가 되지는 않기로 결심했다.

더이상은 중요한 선택들을 스스로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로 하고 싶지 않았다.

끌려가기보다, 끌고 가고 싶었다.

그러려면 내 안에 무슨 소리가 진짜 내 소리고 무슨 소리가 외부에서 들어오는 소리인지 구별해내는 것이 시급했다.

그래서 워킹 홀리데이를 결심했다.

내가 물들어 있었던 문화와, 인간관계와, 사회적 환경, 그 모든 것들에서 한 걸음 떨어져 있을 시간이 필요했다.

가까운 대학 동기들이나 학창시절 친구들은 그럴 줄 알았다고 했고 다른 친구들을 미쳤냐고 했다.

부모님도 "이제 내 행복은 내가 찾겠다" 는 거창한 선포를 마냥 기쁘게 받아들이지는 못하셨다.

특히 겁이 많은 어머니는 나의 두 번째 사춘기가 얼른 끝나기만을 기다리시는 눈치였다.


그렇게 호주에 도착했다.

미국에서 돌아온지 다시 13년만이다.

해방감, 자유, 이런 것들보다도 마음이 급했다.

기분이 꿀꿀할 때에도 스스로한테 조각케잌 하나 사주지 못하던 나인데, 인생의 큰 결정들을 나만 생각하고 내 안의 소리들에만 귀기울여 할 수 있게 되기까지가 너무 아득하고 멀게 느껴졌다.

난 뭘 좋아하지, 어떻게 살고 싶지, 어디에 가치를 두고 있지?

그래도 하나씩.

천천히.

곧 나는 스스로가 플랫화이트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고민 많은 두 번째 사춘기의 초입에서,

마침 호주에 어머니 친구분이 계시고 나를 궁금해하신다는 소식에 시끄러운 게스트하우스에서 잠시 빠져나와 전화를 드렸었다.

"호주에는 어쩐 일이니? 의대 나왔다고 했던 것 같은데."

"네, 졸업하고 1년 정도 일하다가 워킹 홀리데이 하러 왔어요."

"혼자 온거야? 아무 지인도 없이?"

"네네."

"잘 곳은 있고?"

"일단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내고 있어요."

"혼자 괜찮겠니?"

"훨씬 어렸을 때 미국도 혼자 갔다왔는걸요. 괜찮아요."


"너 OO이 딸 맞구나."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 저희 엄마요?"

"응, 그럼! 너네 엄마도 장난 아니었어."


..

엄마?

엄마가?????????


얼마 전에 엄마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난 이제 혼자 지하철 타는 것도 무섭더라."

지하철 타는 것도 무서운 엄마. 아니, 무서워진 엄마인데.


엄마랑 나랑 많이 힘들었는데.

우리 서로를 많이 힘들게 했었는데.

그게 나는 우리가 많이 달라서라고 생각했는데.

엄마는 안전한 선 밖으로 발을 내딛는 걸 누구보다 경계하는 줄 알았는데.


추적추적 비가 왔었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라는 말이 절대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두운 밤거리에 눈이 익고도 한참을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시선의 끝에 비치는 새까만 시멘트 바닥이 자꾸만 흐려져서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자꾸만 하나의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엄마도 나처럼 분홍색에서 주황색으로, 또 주황색에서 분홍색으로 이어지는 하늘을 보았더라면,

그랬다면 어땠을까.

엄마는, 나는, 우리는,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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