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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나 Sep 06. 2024

퇴근무렵, 그가 메세지를 보냈다.

"곧 마칠 시간이네. 오늘도 일하느라 고생했어."

나는 한껏 들떠있었다. 얼마전 수습기간을 끝낸데 이어 좋은 소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료들은 축하한다며 내 사진을 찍어주었다. 나는 그에게 사진을 보내고 한마디 덧붙였다.


"응, 곧 퇴근! 오늘 내가 만든 책 나왔어."

그는 요란법석한 이모티콘을 보내며 축하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만나서 얘기했다면 꼭 그와 같은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오늘은 집에서 먹지 말고 맛있는 거 먹을까?"

생각지 못한 제안에 눈이 살짝 커졌다.

"좋아! 떡볶이 먹고 싶다."

"그래, 떡볶이 먹으러 가자! 너무 고생했어."


우리는 집에서 십분 쯤 걸으면 나오는 상가의 허름한 떡볶이집 앞에서 만났다.

나는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집에서 나오는 그가 도로 옆 보도블럭을 걷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좌우로 두리번거렸다. 평소 그는 사소한 생활습관을 신념처럼 준비하고 지내기 때문에, 그를 찾아 시선을 돌리는 사이 그의 신념 하나가 머릿속을 스쳐갔다.

'차도 옆을 걸을 때는 옆에 오는 차와 반대 방향으로 걸어야 해. 항상 자동차를 오른쪽에 두는 거지.'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피식거렸다.


내릴곳에 다다르기 전까지 그의 모습을 찾지 못했는데, 버스가 코너를 도는 순간 새어나오던 웃음이 팍 하고 터졌다. 멀리, 그의 것이 틀림 없는 단단한 종아리를 얼핏보고야 만 것이다. 역시나 그는 이미 버스정류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른 저녁이라 아직은 볕이 강하게 들고, 그는 버스에서 내린 내가 눈부시지 않도록 손으로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나는 해사하게 웃으며 그를 한번 쳐다보다가, 이내 그의 풍성한 가슴에 얼굴을 팍 묻었다.

그는 내 손에 들린 책을 보며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항상 너무 바르고 뻔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전혀 진부하지 않고 정성스러운 데가 있었다.

상냥한 말을 곱씹으며 오늘은 어떤 하루를 보냈냐고 물었다. 혼자 집에 있는 그가 잘 상상되지 않았다. 그는 대답을 하는 대신 휴대폰을 대뜸 내밀었다. 가지런한 글씨로 문자 두 통이 와있었고, 자세히 보니 이 동네 어느 복지관에서 온 문자였다.

[축하합니다. 면접 일시와 장소 안내드립니다.]

내가 상황을 파악하는 동안 그는 자신감이 넘쳐 흐르는 표정으로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오래 준비한 시험에서 미끄러져도 전혀 타격이 없는 것 같았던 그의 눈에, 이제는 광채까지 흐르는 듯 하여 보기 좋았다.


"서류 합격 한거야? 진짜?"

"응, 하지만 나는 마음을 비우고 면접을 볼 거야."

"너무 잘 됐다! 축하해요!"

우리는 천장이 낮은 분식집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메뉴가 다섯가지 있었는데 그 중 네가지를 주문했다.

나는 떡볶이와 순대가 목적이었고, 그는 이 집의 만두를 먹고 싶었다 했다. 직접 소를 만드는 십오년 전통의 분식집이라는 정보도 어디선가 입수해왔다.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 사이 그 건물 상가에 있는 학원에 다니는 청소년들이 몇 지나갔다. 조금 뒤에는 아빠를 따라 온 초등학생도 보였다. 분식집 주인은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방학 다음주에 하지"

열살쯤 되어보이는 아이는 쑥쓰러워하며 말을 우물거렸다. 앞치마를 두른 주인은 푸근하게 웃었다.

'그럼 우리가 청소년이던 시절부터 여기서 장사를 하신건가?'

나는 그 세월을 곰곰히 생각하며 앞자리에 앉은 이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끄덕였다.


떡볶이는 심심했고 조금 달았고 우리는 비슷한 시기 각자의 고향에서 먹은 학교 앞 트럭 떡볶이를 떠올렸다. 달큰한 맛을 느끼다가 모든 메뉴를 하나도 남기지 않게 되었을 때 그가 말했다.

"좋았어. 동기부여가 됐어."

"맛있게 먹었으니 면접 준비 열심히 하는거야?"

"서류 합격 했으니까 내일부터 달리기를 열심히!"

"그러니까 지금, 주체가 달리기야?"

"달리기가 면접이고 면접이 달리기야."

그의 엉뚱한 말에 웃음이 났다. 굳게 결심한 듯한 그를 보면서 물었다.


"만약에, 내가 우리 이야기를 쓴다면, 내 글에 등장하는 당신 이름은 뭘로 하면 좋겠어?"

"호호아저씨."

"그럼 그냥 '호'로 할게."

그는 입을 크게 벌리고 웃었다.

호. 그와 잘 어울리는 음절이었다. 호쾌, 호탕, 호기로움, 그리고 호기심. 기분이 좋아지는 단어를 몇 가지 떠올리며 집쪽으로 함께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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