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 번씩 식단일기를 쓴다. 블로그를 시작하면서부터 일상 중에 사진을 찍는 것은 이미 습관이 되었기 때문에 매 끼니 식탁의 모습을 모으는 건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었다. 식단일기는 크게 날짜를 쓰고 그날 먹은 것들의 사진을 2-3개 올리는 것으로 구성된다. 일주일에 하나씩 작성하니 주일부터 토요일까지 총 7일의 식단이 하나의 포스팅에 담긴다.
각각의 사진 아래에는 식탁에 얽힌 사연과 분위기, 그 식사의 가격 등을 쓴다. 예를 들어, 오늘 점심 식사가 외식이었다면 그게 어떤 식당이었는지, 사장님은 어떤 분이고 어떤 경로를 통해 그곳을 알게 되었는지도 함께 쓴다. 만약 집밥이라면 그 반찬은 어디서 왔는지, 누군가 집으로 배송을 시켰거나 선물로 줬다면 그 사람은 나에게 왜 그렇게 했는지 생각해 본다. 식탁이라는 게 누구 한 사람의 손길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자취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사소한 것들이 정말 중요해졌다.
식단일기를 쓰기 위해 꼭 지켜야 하는 규칙은 없지만 내가 느끼기에 인상적인 것을 위주로 쓴다. 때로는 식단 종류의 다양성일수도 있고, 적절한 영양 밸런스일 수도 있고, 야식과 간식에 초점이 맞춰질 수도 있고, 규칙적인 식사습관이나 돈을 사용하는 기준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모름지기 그런 생각들은 나를 계속해서 건강하게 해 준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와 함께 식사를 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일주일의 식사 중 혼자이거나, 함께 있지만 외롭거나, 외롭기 때문에 식사를 거부한 끼니는 얼마나 되는가? 그게 나에게는 가장 중요하다.
행복한 식탁은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먹느냐로 결정된다고 어디서 들은 적이 있는데, 크게 동의하는 부분이다. 상경한 이후로 내 밥상은 온전히 내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을 매일 마주하는데, 그때마다 나는 나의 식탁을 풍성하게 할 의무가 있었다. 그래서 내 식탁에는 늘 누군가의 이름이 함께 등장한다. 먹는 것에 그다지 욕심이 없는 나는 ‘누군가’로 인해 삼시 세 끼를 잘 챙겨 먹게 되는 것이다. 식단일기를 쓰지 않을 때는 하루에 한 끼, 인스턴트로 겨우 먹던 것도 ‘내 시간 속에 누군가의 자취가 남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온전한 성실함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한편 다른 부분도 있다. 중학생 때 다이어트를 호되게 한 이후 나는 한 번도 다이어트를 해본 적이 없는데. 애초에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무의식이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런 덕에 입이 짧아지기도 했지만 대체 인위적인 노력을 가해 만들어야 하는 몸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은 의미의 다이어트라면 나도 늘 하고 있다. 하루에 한 끼는 밥을 먹고 인스턴트는 얼마간의 간격을 두는 등의 다이어트 말이다. 사람들과 어울려 한껏 기름진 외식이 이어지는 주간에는 절제를 구하고, 혼자 먹는 식탁에 우울감이 깃들면 활력을 찾아다닌다.
그렇게 쌓인 식단 일기는 꽤 많은 경우 도움이 된다. 약속을 잡을 때 무엇을 먹을까 생각하면 그 주에 먹지 않았던 메뉴를 우선순위로 둘 수 있고, 집에서 어떤 반찬을 하면 좋을지도 참고할 수 있다.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거나 선물로 먹거리를 배송받았을 때를 기록해 두면 그 당시의 가장 기본적인 느낌을 기억해 내기 쉽다.
먹고산다는 것은 사람이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좋은 근거가 된다. 무엇을 먹는지는 신분을, 어떻게 먹는지는 문화를, 누구와 먹는지는 지향을 알려준다. 기록된 식단을 다시 읽다 보면 알게 된다. 내가 언제쯤부터 이렇게 변했구나. 그것은 나의 깊은 곳에 있는 욕망에 질서 있게 자극을 주고 또 다른 모습으로, 또는 이전의 모습으로 가고자 하는 힘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차치하고, 밥을 먹을 때는 복잡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