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하고 부지런한 그의 성정을 알고는 있지만, 만나기로 한 시간이 되기도 전에 도착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내가 이전 일정을 마치는 시간에 맞추어 데리러 오겠다던 w는 근처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놓았다고 메세지를 남겼다.
내가 뛰어 가겠다고 답장했더니 제발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 말에 또 금방 안심이 되었지만 주차장이 눈에 보이자마자 거의 다와간다고 다급하게 알렸다. 어디 구역으로 가면 좋을지 전화를 하려는데, 흰색 자동차 하나가 아주 느린 속도로 서행하며 출구를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 차의 조수석 창문이 열리자 나는 그것이 w인 줄 알아보았다.
뒤에 따라오는 차는 없었지만 나는 얼른 달려가 조수석에 올라탔다. 그의 낯을 보니 어느때보다 컨디션이 좋아보였고, 나는 기대를 담아 물었다.
"잘 지냈어? 오랜만에 보네."
그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표시를 했다.
"어... 네. 저는 잘 지냈습니다. 그러는..."
그러는 나는 잘 지냈느냐고 묻고 싶은데 호칭을 뭐라고 해야할 지 몰랄 고르는 것 같았다.
"그러는 선생님은 잘 지내셨는지요?"
머뭇거리는 그의 표정을 보던 나는 피식하는 웃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는 나보다 한 살 많은 데다가, 우리는 10년이라는 시간을 알고 지냈고, 관계도 다름 아닌 친구이기만 했으므로.
"선생님? 호칭이 왜 그래."
그는 뻘쭘한 듯 머리카락을 툭툭 만지며 답했다.
"아, 일하다 보니 습관이 됐어."
"그런 사람들 있더라. 나 다른 친구는 '선배'가 입에 붙었대. 회사에서 너무 많이 써서."
하지만 w의 그런 말은 왜인지 모르게 익숙하게 느껴졌다. 후배인 나를 대하면서도 그는 종종 존댓말을 사용했고, 특히 본인이 잘 하지 못하는 맛집 서칭이나 다른 사람들과의 네트워킹을 부탁할 때는 특히 더 깍듯한 태도를 보였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이 스무살과 스물한 살 때의 일이니 w의 타고난 성정이 그렇다는 것에는 누구도 딴지를 걸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는 오랜 수험생활을 견딘 끝에 원하던 일을 하게 되었다. 실무가 적성에 잘 맞느냐고 물었더니 즐겁게 배우면서 하고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오랜 꿈을 이룬 뒤에는 간절함을 쉽게 잊는 여느 사람들과 다르게, 그는 이전에 서원한 대로 감사와 봉사의 마음을 잊지 않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길에서 최선을 다한 것 처럼, 포장된 도로에 올라와서도 겸손한 모습을 보니 나는 주제 넘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나 역시 비슷한 시기에 출판사로 이직해 적응을 했다. 그는 출판단지와 헤이리마을이 가깝느냐고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말하며 중간에 빠질 수 있으면 회사를 거쳐서 가보자고 말했다.
"운전을 원래 좀 했었나?"
"그냥, 주말에는 아버지가 안쓰시니까 주말 출근할 때는 내가 가지고 다니고 있어."
"주말 출근이 잦아?"
"꼭 해야 하는 건 아닌데, 거의 가는 것 같아."
"일이랑 공부를 같이 해서 그런거 아냐?"
그는 먼 곳을 보던 시야를 거둬오며 몰입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구미를 당기는 주제를 고른 것 같다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이었다.
"그렇지. 사실 아직은 단순히 업데이트 하는 내용이 많은데, 이전자료까지 찾아서 대조하다보면 공부가 되는 것 같아."
맡은 일을 꼼꼼히 하리란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지만, 나는 자꾸 비슷한 질문을 했다.
w가 자신에 대해 신나서 말하는 것이 보기 좋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기분에 대해 나눌 사람이 또 하나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나도 덩달아 신이 나는 것 같았다.
그는 나의 근황과 일터에 대해서도 물었다. 나는 그가 공부에 전념하는 사이 거쳐 온 이전 직장의 이야기와 만족스러운 지금에 대해 말햇다.
"선생님은 워낙 잘 하시니까요. 아, 그런데 이런 말 하면... 싫어했던 것 같은데."
"그런 말이 싫었던 게 아니고, 상대적으로 오빠를 낮추는 게 싫었던 거야. 그땐 w를 잘 몰라서 혹시나 하고, 걱정했거든."
차가 많이 막혔고, 찾아보았던 파스타 가게는 재료가 소진되어 갈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개의치 않고 일 이야기를 했다. 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와, 우리가 쉽게 가까워진 이유 역시 어릴적부터 이글거리던 야망 덕은 아닐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