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활기차고 구겨진 데가 없었다. 전보다는 확실히 점잖아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특유의 둥글고 즐거운 어조를 듣고 그가 M인 줄을 단박에 알아챘다.
그는 어제도 나와 통화한 사람처럼 말했다.
"잘 지내십니까."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나는 순식간에 지난 시간을 복기했다. 얼마 정도의 공백이 있었는지도 잘 가늠되지 않았다. 다만 확실했던 건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던 것이 지난 겨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한참의 더위를 지나 이제 다시 날이 선선해지는 중이었다.
"이렇게 전화를 하게 되네."
그는 자신의 번호가 아닌 다른 이의 것으로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나는 눈을 꿈뻑이며 거실 의자에 앉았다.
호흡을 고르고 침착하게 이야기를 해보자고 생각했다. 그는 지금 옆에 다른 친구가 있고, 나에게 호의적인 입장이라는 것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그러게, 전해들었어. 미안하다는 말."
나는 갑작스러운 상황을 파악하지도 못하고 불쑥 진심 섞인 말부터 꺼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또 다른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응, 미안해. 나 결혼한다,"
뜻밖의 단어를 듣고 나는 재차 확인했다.
"결혼? 나 결혼하냐고?"
그는 난감한 듯 잠시 뜸을 들였다.
"아니..."
"무슨 소리야. 나 결혼하려면 몇 년은 더 있어야 하는데. 쌩뚱맞게."
나는 괜히 흥분하여 그의 말을 끊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묘한 긴장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M에게도 나의 흥분이 가닿은 듯 했다. 그는 다시 호흡을 다듬고 말했다.
"아니, 너 말고. 나 결혼한다고."
M이 만나고 있는 사람은 내 친구의 고등학교 동창이다. 나의 친구는 M의 애인과 사소한 일상을 공유할만큼 절친했고, 나 역시 M못지 않게 친구와도 가까웠으므로 의심없이 두 사람을 소개했다.
"지금 만나는, 그분이랑?"
"내년에, 이야기 하다보니 날짜까지 나왔어."
그 소식을 전하면서는 M의 목소리가 한풀 꺾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면서도 슬펐다. 당장은 슬픔의 이유를 알 수 없었으므로 이상했다.
M과 나는 성별이 다르다. 그러나 이름 석 자 중 성씨를 포함한 두글자가 같다. 한 살 차이가 나고, 이목구비가 큰 것이 비슷했다.
둘 다 교회와 공동체에 지극했으므로, 자주 섞여 밥을 먹었다.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것이 그가 사랑을 전하는 방식이자 언어임을 알게 되었다.
대학을 마친 뒤에는 각자 사역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진로를 정했다. 우리는 치열한 사회초년시절을 공유했다.
우리를 처음 본 사람들은 우리가 남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자매는 고향인 부산에 있었고, M의 형제는 우리와 같은 공간에 잘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새로 온 이들을 잠깐씩 속이며 짓궃은 장난을 치기도 했다.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사역을 그만두었다. 한국교회와 20대 초반을 쏟아부은 공동체에 실망감을 느끼며 고민했다. 새로운 교회를 찾아 같이 방문했을 때 역시, 사람들은 우리가 남매일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M과 나의 성별이 다른 것이 내 슬픔의 이유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잠깐 사이에 깨달았다. M도 그것을 아는 듯 했다.
"날짜가 언젠데? 시간 비워볼게."
내가 말했다. 여전히 긴장한 마음이었다.
"친척끼리, 간소하게 할 것 같아."
M이 대답했다. 조금은 힘을 주는 투로. 나는 걷잡을 수 없이 슬퍼져 목이 메었다.
"그럼 내가 못 갈 수도 있는거네? ... 아니 그럼, 내 결혼식에는 올 수 있는거야?"
"아무래도, 지금으로써는 여사친은 아무도 못 부르니까. 작은 결혼식 하기로 해서 결혼식은 동성 친구들도."
정적이 흘렀다. 나는 피하지 않고 말했다.
"애인이 싫어하는구냐?"
"이것만 빼면 다 잘 맞아. 나중에 만나서 이야기하자."
나는 지난 시간 누른 감정이 얼굴 쪽으로 솟구쳐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참을 수 없었다.
"어떻게 만날건데? 연락 못하게 하잖아."
"내가 친구 만나는 날, 우연히 너를 만난 것 처럼 하는 거지."
M은 자신을 볼드모트처럼 생각하라는 말을 남기고, 반응을 피하듯 전화를 종료했다. 나는 M의 메신저에 긴 글을 남겼다. 너의 연극에 참여하고 싶지 않으니 연락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지난 10년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오래 전 M과 걸으며 나눴던 말도 떠올렸다.
"진짜 회사로 놀러올 줄은 몰랐네."
"그럼, 넌 속고만 살았냐."
"어, 많이 속고 살아서 원래 잘 안 믿어."
"그럼 이제 좀 믿어봐. 나 믿기 쉽잖아."
그 중에는 결코 잊고 싶지 않은 것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