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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나 Sep 03. 2024

편식하지 않는 아이

나는 편식하지 않는 착한 아이였다. 그리고 또래와 달리 언제나 열심히 먹었다. 마른 체형이었고 키도 또래에 비해 매우 작았지만 할머니는 나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내가 타고나기를 우량하게 태어났고, 밥도 가리지 않고 주는 대로 잘 먹으며, 무엇보다 발사이즈가 크다는 것이 그 근거가 되었다. 발이 큰 사람은 성인이 되면 키도 크고 뼈대도 굵어 잘 아프지 않는다는 게 할머니의 주장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우야꼬, 우째하노."를 입에 달고 사는 할머니의 태도 치고는 굉장히 선명한 편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달랐다. 나는 할머니가 주는 밥 이외에는 먹을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할머니를 걱정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 것이지, 밖에 나가면 늘 맛이 없는 것들이 잔뜩 나왔다. 특히 깍두기를 싫어했다. 유치원에서도 친구들이 다 나가서 노는 점심시간에 혼자 깍두기를 붙잡고 앉아 울었던 적이 있으니까 말이다. 초등학교에 가서는 한두 달에 한 번쯤 나오는 해파리냉채가 아주 고역이었다. 선생님은 도저히 못 먹을 것 같을 때에만 잔반을 남기라고 했는데 나에게는 그 도저히가 자주 찾아왔다.


집에서는 잘 안 먹는 소시지나 감자튀김 같은 것을 주면 친구들이 좋아하니까 호기심에 따라먹기는 했지만, 그렇게 맛있다는 생각은 잘 못했다. 특히 피자나 햄버거는 실망스러울 때가 많았다. 이런 걸 돈 주고 왜 먹는 걸까 생각했지만, 그래도 나는 늘 남김없이 잘 먹었다. 집에서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내가 밥을 맛있게 먹고 나면 할머니가 매우 기뻐했다. 자신의 손맛이 여전히 수려한 솜씨를 내는 것에 만족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나는 할머니의 그 유창한 표정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밥을 잘 먹는 의젓한 큰손녀가 되는 것도 좋았다. 아빠도 혼자 밥을 못 떠먹어서 엄마가 먹여주는데, 나와 두 살 밖에 차이 나지 않는 동생은 아직도 엄마한테 칭얼거리는데, 나는 나 혼자서 밥그릇을 싹싹 긁어먹고 설거지할 그릇까지 모아다 놓는 착한 아이였다. 그래서 칭찬을 많이 받았다. 그러다 보니 맛이 없는 음식도 열심히 잘 먹고 싶었다. 잔반 없는 식판을 보면 선생님도 칭찬을 해주었다. 역시나 맛있어서 먹은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할머니 음식은 좋았다. 자주 했던 음식 중에 기억에 남는 것들이 있다. 우선 콩나물 밥. 평소에는 전기밥솥에 밥을 하지만 콩나물밥을 먹을 때는 오래된 압력밥솥에 밥을 지었다. 쌀과 찹쌀을 적절하게 섞어 넣고 갖가지 조개와 콩나물, 그리고 할머니가 밑간을 한 여러 가지 것들을 넣은 뒤에 자작하게 물을 부어 가스레인지에 올렸다.


콩나물밥은 초저녁부터 재료를 다듬기 시작해서 올려놓고도 오랫동안 불 앞에서 점검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그 밥을 자주 만들었다. 식사 시간에 밥상 옆에 행주를 하나 깔고 엉거주춤하면서 큰 밥솥을 가지고 오면, 각자의 밥그릇에 질퍽한 콩나물밥이 담겼다. 그 위에는 할머니가 만든 청양고추 가득 간장양념장을 뿌렸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꼬막이었다. 꼬막은 마트보다는 시장에서 대량으로 공수해 왔다. 생꼬막을 바로 까려고 하면 아직 생명을 가진 것들이 되려 힘을 꽉 줘서 절대로 열리지 않았다. 펄펄 끓는 물에 데치듯이 익힌 다음, 입을 활짝 벌려 속을 보인 꼬막의 한쪽 껍데기만 떼어내었다. 그 작업은 엄마와 나, 동생까지 붙어서 다 같이 했는데 한참 껍데기를 뗴고 나면 손톱밑에 간질간질해졌다.


꼬막 껍데기가 바닥을 향하도록 접시 위에 하나씩 올려놓은 다음에는, 작은 숟가락으로 양념장을 얹어주었다. 양념을 올린 뒤에는 또 다른 꼬막을 올려놓고, 그 위에 또 양념을 올려놓고... 그런 식으로 피라미드를 쌓은 접시가 세 개쯤 나오면 그날 저녁 반찬이 완성되는 것이었다. 나는 한 손으로는 꼬막을 들고 한 손으로는 젓가락을 들고 쏙쏙 잘도 빼먹었다.  

할머니가 요리하던 풍경도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우리 집 현관문을 들어오면 왼쪽에 큰방, 오른쪽에 작은방과 화장실이 차례로 있었고, 정면에는 작은 문턱을 지나 냉장고가 보였다. 문턱과 냉장고 사이에는 냉장고 문을 간신히 열 수 있을 정도의 틈이 있었는데 그 틈 사이로 들어가 오른쪽으로 돌면 거실정도의 크기로 기다란 부엌이었다.


긴 부엌의 왼쪽에는 쌀포대와 전자레인지, 작은 수납공간이 있었다. 부엌의 끝에는 가스레인지가 있으며, 그 오른쪽에는 설거지통이, 그 위에는 작은 창문이 달려있었다. 할머니는 늘 가스레인지와 싱크대 사이쯤의 공간에 쭈그려 앉아 마늘이나 콩나물을 다듬었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은 주로 역광이었는데, 어둡게 비치는 할머니는 고단한 표정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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