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나 Sep 03. 2024

우리 집 저녁 식사


이것은 내가 이제 막 기억을 할 수 있게 되던 즈음의 이야기이다. 매일 저녁 여덟 시 정각이 되면 우리 가족은 일제히 집안의 모든 창문을 열고 청소를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온 식구가 함께 모여서 먹는 저녁식사를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그때는 집에 청소기가 없었으므로 짚으로 꼼꼼하게 엮어놓은 빗자루를 이용해 바닥을 쓸었는데, 할아버지가 큰 빗자루를 들고 집안을 휘휘 돌아다니면 그 사이 할머니가 저녁반찬을 준비했다. 엄마는 화장실에 걸쳐놓은 절반 크기의 수건을 물에 적셨고, 나와 두 살 터울의 여동생이 하나씩 가지고 방으로 갈 수 있도록 힘을 다해 물기를 짜냈다. 아빠는 대부분 작은 방에서 컴퓨터로 게임을 했는데, 매일 저녁 이뤄지는 이 순서에 어떠한 관심도 없었다.


할아버지가 쓸어놓은 먼지들을 모아 쓰레기통에 버리면 나와 동생의 차례가 돌아왔다. 우선 물기가 적당히 스며든 수건을 예쁘게 접은 뒤 바닥에 두고 엎드려서 그것을 손으로 잡았다. 그런 다음엔 엉덩이를 높이 들고 수건을 밀듯이 방 안 구석구석을 다니는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놀이였지만 우리는 나름대로 구역을 나누어 작업했고 보람과 감사를 느꼈다. 엄마는 손목에 힘이 약해서 수건을 짜고 나면 힘들어했는데, 우리가 방을 닦는 동안 잠깐의 휴식을 가졌다. 청소를 마친 뒤에는 다시 수건을 빨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때로 우리가 걸레질을 하는 것에 싫증을 내면, 엄마가 걸레를 가지고 가서 직접 바닥을 닦았다.


그러는 사이, 열어놓은 창문으하루 동안 집안에서 묵은 공기가 다 빠져나갔다. 대신 다른 집의 밥 냄새가 시원한 바람을 타고 들어왔다. 우리 집은 엄마와 아빠의 퇴근시간에 맞춰서 저녁을 늦게 먹었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은 십분 안에 끝이 나야했다. 청소가 끝난 뒤엔 정사각형으로 잘 짜인 앉은뱅이 원목식탁을 펼쳤다. 낮에는 다리를 접어서 벽에 잘 기대어뒀다가 매일 같은 시간에 펴는 식탁이었다. 나와 동생은 동생이 다섯 살이던 때 어른들 눈을 피해 그 식탁에 누워본 적이 있다. 그때 마침 그 상의 지름이 동생 키만 한 것을 확인하고 굉장히 크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당시 우리가 아이였으므로 그 느낌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종종 하게 됐다.


분명히 집이 작았다. 열세 평짜리 주공아파트였고, 그 집의 큰방이라고 해봤자 오평 남짓일 텐데, 베란다를 제외한 세 개의 벽이 모두 가전으로 둘러싸여 있어 여섯 식구가 한 번에 들어가면 가득 차는 크기였다. 세 개의 벽 중 한 곳은 옷장이 양쪽으로 기둥처럼 서 있고, 중앙에는 작은 서랍장을 놓고 그 위에 TV를 두었다. 온 가족이 상을 둘러싸고 앉아 일제히 TV를 바라보는 형태로 앉았는데, 펼쳐진 상을 정사각형의 도형이라고 생각했을 때 TV가 놓인 벽의 면은 아래쪽이라고 볼 수 있다.


아랫면과 맞닿은 오른쪽 면은 베란다로 통하는 유리문이 있다. 창문이라기에는 벽의 전체를 차지했다. 틈 사이로 찬바람이 슬금슬금 들어왔는데, 그쪽에는 할아버지가 혼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베란다 앞에는 언제든 손 닿는 곳에 할아버지의 담배와 재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와 맞닿는 윗면에는 아빠가 혼자 앉았다. 위쪽 벽에는 화장대와 거실장, 이불장이 있었다. 화장대 아랫칸으로는 여섯 식구의 양말과 속옷 등이 개어져 있었고, 중간에 놓인 거실장에는 엄마가 혼수로 가지고 왔지만 절대로 쓰지 않는 예쁜 접시와 그릇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이불장은 위칸과 아랫칸으로 나뉘었는데, 나와 동생은 곧잘 그곳에 숨어 들어가서 놀았다. 팔다리의 구조와 손의 악력을 이용해 위칸으로 올라가는 것은 내가 더 잘했다. 하지만 올라간 뒤에 혼자 방안을 내려다보고 있자면 자꾸만 심심해졌다. 반면 아랫칸에 있는 동생은 자신이 자리 잡은 공간에 강아지도 데려오고 이불로 비밀구역을 만들기도 하며 잘 놀았다. 김이 빠진 나는 샐쭉해져서 내려오곤 했다.


방의 윗면과 아랫면을 잇는 왼쪽 면에는 방문이 있었다. 그쪽 면의 상에 엄마, 동생, 나, 할머니 순으로 줄지어 앉아서 밥을 먹었다. 엄마는 늘 아빠의 밥 위에 반찬을 올려주었고 동생이 원하는 대로 김을 싸주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아빠의 요구를 채워주느라 밥 먹을 틈 없이 부엌과 큰방을 오갔다. 나중에서야 알았는데, 부엌에 물건 가지러 가는 일은 할머니가 아니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상의 한쪽면에 여자 넷이 앉는 방법 외에도 넓은 상을 이용할 수 있는 방법도 많이 있었다.


여덟 시 이십오 분이 되면 가족들은 밥을 먹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때부터 가족들이 다 같이 보는 저녁드라마가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밥 먹는 중에는 아무 말을 하면 안 되고, TV에서 흘러나오는 인물들의 대사에 집중해야 했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정해놓고 말한 것은 아니지만, 드라마를 보다가 누군가 반응이라도 하면 곧바로 엄하게 꾸짖는 소리가 이어졌다. 밥을 씹는 소리나 수저로 그릇을 긁는 소리가 나는 것도 용납되지 않았다. 밥과 반찬은 남김없이 다 먹어야 했다. 밥을 다 못 먹을 것 같으면 식사를 시작하기 전에 미리 덜어내야 했고, 자신의 밥그릇에 담긴 밥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릇에 붙는 밥알이 한 톨도 나오지 않게끔 다 긁어먹어야 했다.


저녁드라마는 아홉 시경 끝이 났다. 그때까지 가족들은 대부분 밥을 다 먹었는데, 혹시라도 아직 다 먹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모두가 앉은 채로 그 시간을 기다렸다. 시간이 늦어지더라도 끝까지 밥을 먹어야 했다. 하지만 드라마가 끝난 뒤에도 대화를 나누거나 그러지는 않았고, 주로 아빠나 할아버지가 보고 싶은 뉴스를 시청했다. 나는 뉴스를 보는 아빠의 멍한 표정과 할아버지의 무서운 미간을 보았다. 드라마 내용에 대한 감상을 가족들에게 말한 뒤, 그들의 반응도 살펴보았다. 그러나 나는 아무런 답을 듣지 못했고, 다만 밥 먹는 것이 불편했을 뿐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