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꼴 갖추게 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힘이 든다

스트릿 출신 보더콜리, 그 험난한 동거생활 - 04

by 하진

주인도 개털, 개도 개털


지금도 하쿠의 털 상태는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지만, 처음 집에 왔을 무렵에는 정말 심각했다. 오죽하면 하쿠의 입양 공고에서 유일하게 외관을 묘사한 문구가 ‘털엉킴’이었을까. 보호소에서 빗질을 여러 번 한 것이 이 정도라는 사실이 믿기 어려웠다.


당시 하쿠의 털은 제멋대로 자라나 속부터 군집을 형성하면서 뭉쳐 있었다. 엉덩이에는 털이 수북이 뻗쳐 두 배로 커져 있었고, 겨드랑이처럼 자주 접히는 부위에는 호두알보다 큰 것부터 엄지손톱만 한 것까지 덩어리진 털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KakaoTalk_20260403_163512582.jpg 빛바랜 털이 푸석푸석한 하쿠


거기에다 냄새까지 났으니 그 때에는 아주 오래 바깥 생활을 했으리라고 짐작했다. 불쌍한 강아지를 위해 위탁 목욕과 미용도 알아봤지만, 보더콜리는 한 번 자른 털이 다시 자라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 비용도 상당해서 추천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일단 씻겨!


고민은 시간만 지체할 뿐. 우리는 2개월의 임보기간 동안 하쿠에게 보다 매끄러운 털을 선물하기로 했다. 입양도 용이해질 것이고 입양가정에 가서도 더 예쁨을 받을 수 있을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려면 우선 목욕이라고는 해본 적 없는 것 같은 이 강아지를 씻기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다.


우리는 2인 1조로 역할을 나누어 스트레스 저감 목욕을 시도했다. 한 명은 씻김 담당. 보호소에서 받아온 샴푸를 짜서 냄새 나는 털에 듬뿍 발라 물로 헹구어 냈다. 나는 유흥 담당. 쉴새없이 하쿠의 최애 공을 삑삑거리며 강아지의 정신을 장난감에 집중시켰다.


KakaoTalk_20260403_163605834.jpg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올 것 같지 않은 목욕 뒤 하쿠


그 덕분인지 강아지는 배신당한 표정으로 물을 몇 번 피하기는 했으나 비교적 얌전하게 목욕에 응해 주었다. 다음 단계인 말리기와 빗질은 내가 도맡기로 했다.


박박 빗겨!


당시 집에는 우연히 여러 개 선물 받은 아○다 빗이 있었다. 커다란 빗의 몸통을 한 손으로 움켜쥐고, 한 손으로는 공으로 연신 하쿠를 홀리며 여기저기를 빗어댔다. 처음에는 조금만 빗길 생각이었는데, 빗을수록 죽은 털이 좍좍 나오는데다 털결이 달라지는 게 눈에 보여 멈출 수가 없었다.


KakaoTalk_20260403_163409394.jpg 빗질은 싫지만 장난감은 포기할 수 없어


강아지는 빗을 피해 몸을 요리조리 비틀면서도 공은 가지고 놀고 싶어서 계속 나에게 다가왔다. 다가올 때마다 좌우로 빗을 사정없이 움직여 뭉친 털을 사르르 풀어냈다. 지금이야 결을 생각해서 한 방향으로 빗질을 해 말리지만, 그 때는 그런 걸 논할 상태가 아니었다.


KakaoTalk_20260403_163358005.jpg 잔뜩 쌓인 하쿠의 엉킨 털


그렇게 두 시간 정도를 내리 빗기자 하쿠는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나는 뿌듯한 기분으로 명품견을 만들어 낸 스스로의 손을 칭찬했다. 다음 날 손목이 비명을 지르며 아작날 거라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고.


KakaoTalk_20260403_163440232.jpg 밤새 빗질을 당해 피곤해 보이지만 털은 부드러워진 하쿠


이것이 진정한 보더콜리?


나는 개를 기르고 싶은 마음만 굴뚝 같았지 실제로 개와 함께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보더콜리는 다 하쿠 같이 털이 자라는 줄 알았다. 그렇지만 때 빼고 광을 낸 하쿠의 모습을 보자 하쿠가 굉장히 꼬질했었다는 게 새삼 실감이 났다.


개를 기르는 지인에게서 강아지용 이발기를 빌려다가 수북한 엉덩이털을 조각하듯이 깎아냈다. 엉덩이인줄 알았던 것이 1/3만 홀쭉하게 남았다. 물론 이발 실력 덕분에 마인크래프트처럼 네모지게 각이 진 채였다.


그 후 우리는 틈날 때마다 하쿠의 미용에 골몰했다. 놀이를 해주다가도 슬리커 빗으로 뭉친 데를 슬그머니 풀고, 하쿠가 설핏 잠들면 이발기를 켜서 몸에 맺힌 털공을 깎아 부피를 줄여 보았다. 이렇게 예뻐지면 하쿠도 좋은 집에 입양갈 수 있겠지?


하지만 하쿠를 나의 집에 들이게 되리라는 복선은 천천히, 그리고 탄탄히 쌓여 가고 있었다.






개털을 빗기기 위한 빗은 아주 다양하다. 장모이자 이중모인 하쿠가 사용하는 빗은 아래와 같다.


콤빗 : 주로 스텐 소재의 참빗처럼 빗살이 곧은 빗. 세밀하게 섹션을 나누어 가며 빗질할 수 있고, 피부를 관찰할 수 있어 피부염이나 진드기 따위를 확인하기 좋다.

핀브러쉬 : 핀이 꽂힌 것 같은 형태의 빗으로 자극이 적어 간단하게 빗질을 할 때 자주 이용한다.

돈모브러쉬 : 억센 돼지털이 달려 부드럽게 빗질이 된다. 기분 탓인지 약간의 마사지 효과도 있는 듯하며 엘 아미고라는 유명 제품을 사용 중인데 그립감이 좋아 종종 손이 간다.

슬리커빗 : 엉킨 부분을 풀어내는 용도의 빗. 보호소에서 받은 것을 아직도 사용 중인데, 사용법을 숙지하지 못한 것인지 사실상 엉킨 부분이 통째로 떨어져 나와 하쿠가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자주 털이 엉키기 때문에 꼭 필요한 빗 중 하나이다.

갈고리빗 : 하쿠가 가장 싫어하는 빗. 이중모 강아지의 죽은 털을 솎아내는 역할을 하는데, 힘이 좋아서 죽은 털이 단번에 딸려 나온다. 매우 싫어해서 털갈이 시기에만 제한적으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