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악마여, 영원하라!

너는 내가 더 좋은 주인이 되고 싶게 해 - 01

by 하진

강아지 때문에 골치가 아팠던 순간을 셀 수 없이 읊을 수 있지만, 한편으로 이 개가 정말 착한 개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새벽에 도통 잠들 생각이 없는 나에게 다가와 가만히 잠투정을 하는 개를 안고 잠자리에 누워 뜨겁게 뛰고 있는 그의 심장 위 보드라운 털을 쓰다듬으면, 형용할 수 없는 안도감과 만족감, 그리고 이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하리라는 생각과 동시에 그와 함께하는 이 순간이 영원히 이어지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이 찾아온다.


이별을 생각하기에 아직은 이른 나이지만, 언제든 이별이 찾아올 수 있다는 마음의 준비를 한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날에는 조금 더 강아지를 쓰다듬고, 조금 더 눈에 담아본다.


나의 강아지는 소위 개에게 기대되는, 충직하다 못해 주인이 쓰러지라면 쓰러지는 시늉이라도 하는 그런 개는 아니다. 눈치가 아주 빠르고, 말은 듣되 기대하는 바가 정확하고, 겁은 많지만 어디까지 봐주는지 발을 뻗어보고, 마음에 드는 사람이 알은체를 하면 주인은 돌아보지도 않고 꼬리를 치기 바쁘다.


한때는 이런 녀석이 미운 적도 있었다. 일방적인 관리의 책임이 무겁게만 느껴졌고, 강아지는 소위 개춘기로 말을 듣지 않기가 극에 달했었다. 그런 날들 중 하루였다. 자잘한 습관 문제 때문에 담당 훈련사는 생활공간 분리를 권했고, 가벽을 세우기에는 당장 설비가 없어 높은 네트망에 얼기설기 짐을 쌓아 막고서 개를 집어넣었다.


강아지는 늘 그랬듯 짖거나 저지레를 하지 않았다. 다만 계속해서 담을 뛰어넘어 사람이 있는 곳으로 왔다. 외롭고 어색한 것이 당연한데도 단호하게 원칙을 세워야 버릇을 고칠 수 있다는 생각만이 가득했었다. 불안함 속에 평소보다 훨씬 높은 담을 쌓고 출근한 날, 집을 비운지 두 시간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펫캠 속 강아지의 공간은 텅 비어있었다.


담 밖에는 식수와 배변패드를 비롯한 집기를 하나도 갖춰두지 않았다. 그야말로 비상. 직장이 나보다 가깝지만 오전에는 자리를 비울 수 없다는 동거인을 닦달하고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집으로 달려갔다. 어렵게 짬을 내어 강아지를 제자리로 돌려보내고 혼쭐을 냈다는 동거인의 전화를 받고 높아진 언성만큼 언짢은 기분으로 집을 향했다. 기왕 나온 김에 다시 탈출하지는 않을지 살펴볼 겸해서였다.


또 뛰쳐나왔다가는 이 사고뭉치에게 단단히 경을 치겠다는 마음을 먹고 벌컥 연 문 뒤에는 강아지가 얌전히 앉아 있었다. 바로 몇 분 전에 사람에게 잔뜩 혼났으면서도 담 너머에 사람이 다시 등장했다는 사실에 그저 행복해하며 바보 같은 얼굴로 웃고 있었다.


자기를 혼내러 온 줄도 모르고 신난 하쿠


오는 길에 품었던 악한 마음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내 뜻대로 해주지는 않을지언정 나쁜 뜻 없이 나를 반길 줄만 아는 녀석에게 무슨 짓을 한 건지 싶어 눈물이 났다.


물론 지금도 개가 항상 예쁘지는 않다. 이 일 이후로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은 것도 아니고, 책임감이 갑자기 치솟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런 순간들이 마음에 쌓인다. 어머니가 말 안 듣는 자식에게 치를 떨더라도 사랑할 수밖에 없듯, 나의 천방지축 강아지도 시간을 거듭하며 쌓이는 내 사랑을 먹고 자란다. 참 밉살맞을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말간 얼굴을 보면 헛웃음이 나오는 내 강아지야, 네가 내 곁에 조금 더 오래도록 머물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