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대형견 견주로 살아남기 - 02
중형견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대형견 하쿠
지난 3월 1일자로 식품위생법이 개정된 이후 반려동물 동반 식·음료 업장은 아직 혼란스러운 모양새다. 기존에 반려동물 출입을 허용하던 매장도 동반 정책을 보류하거나 폐지하겠다는 입장을 줄줄이 내놓으면서 이번 제도 시행을 원망하는 견주들의 목소리도 있었다. 그런데 사실, 솔직히 사실은 하쿠 같은 강아지를 기르는 견주 입장에서는 더이상 불리해질 것도 없는 기분이기는 하다.
나의 강아지는 현재 16kg 언저리의 보더콜리. 워낙에 대형견 위주의 공간만을 다녀 버릇하다 보니 가끔 얘 정도면 참 작다는 착각(?)을 하곤 하지만, 도심을 거닐며 따가운 시선을 받다 보면 절로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마음 속으로야 몇 번이고 작고 귀여운 나의 강아지라며 그를 다독이지만 밖에서는 10kg, 아니 7kg 강아지마저도 입장을 거부당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대형견 하쿠는 어떻게 바깥 생활을 해 왔는가? 밖에 나갈 준비 그 첫 단계. SNS와 지도 앱, 포털 사이트를 샅샅이 뒤져 반려동물 출입이 가능한 업장을 찾는다. 서울에는 생각보다 많은 곳이 애견동반 딱지를 붙이고 있지만, 그 중 상당수는 테이크아웃 전문점이다. 우리는 시간을 보낼 장소를 찾는 것이니 이를 제하고 남은 선택지를 하나하나 클릭해서 ‘진짜’ 동반 가능한지를 검증한다.
Welcome! 그러나 실제로 하쿠가 나타났을 때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저희는 10kg 미만 강아지만 들어올 수 있어요, 강아지는 야외 테라스 석만 이용 가능해요, 이런 대답에 강아지를 데리고 돌아서서 나오는 길은 꽤나 슬프다. 특히나 작은 강아지 친구들을 보고 자신도 들어가서 인사하고 싶다며 하쿠가 칭얼대기 시작할 때면 더욱 그렇다.
하쿠를 입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애견동반이 가능한 곳인데도 큰 개는 거절당하기 십상이라는 점에 놀랐다. 무엇보다 무게, 체고 등 제한사항을 정확하게 공지하지 않은 경우 들어갔다가 헛걸음을 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에, 몇 번씩 후기를 읽어보고 전화로 확인을 마친 뒤에야 출발하는 습관이 생겼다. 물론 허락을 받고 들어가더라도 주위 손님들의 불편한 기색에 곧 자리를 뜨는 일도 있었다.
당연히 어떤 개가 들어오고 말고는 업주의 100% 재량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여름에는 아스팔트가 들끓고 겨울에는 손끝이 얼어붙는 이 가혹한 기후의 나라에서, 오갈 곳이 없다는 건 집 밖을 나올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게 대형견주들은 차로 한 시간을 넘게 달려 가야하는 교외의 애견카페, 인적이 드문 캠핑장, 고가의 독채 숙박업소로 밀려난다. 이런 생활도 하루 이틀은 할 수 있겠지만 영원히 그렇게 지낼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이번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에 개인적으로 기대하는 부분도 있다. 동반가능 업장의 모수는 당장 줄어들 수 있겠으나 명확한 표기를 통해 강아지를 데리고 갈 수 있는지, 된다면 몇 kg까지 가능한지 확인할 수 있고, 입장해서는 강아지에게 떳떳한 제 자리를 제공할 수 있다.
방문 후기에 우리처럼 큰 개 사진이 있는지 살피고, 작은 강아지들이 가끔 실내에서 줄을 풀고 다녀도 우리 개만큼은 꽉 묶인 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일들도 이제는 없지 않을까? 조금 온화해진 날씨에 하쿠와 공원을 거닐며 생각해본다. 이번 여름에는 하쿠를 반겨주는 곳을 하나쯤은 더 만들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