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다 부모에게 소소한 반항들을 하고 산다.
나도 가끔은 엄마 말의 반기를 들기도 하고 짜증도 내기도 했고 화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착한 딸이다. 엄마가 원하는 삶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물론 당연히 엄마가 원하는 만큼 이뤄내지 못했다. 부모의 기대를 다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엄마가 나에게 본인의 기대, 실망, 좌절, 자기 연민 등을 쏟아낼 때도 나는 그저 다 인내했다. 내가 부족하니까. 엄마가 이렇게 도와줬는데 나는 그만큼 해내지 못했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자신감이 넘쳤다. 어떤 일이든 잘 해낼 수 있다고 믿었고, 새로운 일도 어지간해서는 다 해낼 자신이 있었다. 유학생활도 오래 했고, 자취도 오래 했으며, 지금도 해외에서 잘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독립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나는 정말 엄마와 정서적으로 자아분리가 전혀 돼있지 않으며, 정신적으로 엄마한테서 독립을 전혀 하지 못했다. 이걸 엄마가 결혼을 반대하면서 (심지어 두 번째)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결혼을 반대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엄마와의 관계가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니 인생이니까 결혼을 너 혼자 결정하겠다는 건 말이 안 되고."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이 두 마디를 듣고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 뒤로 계속 관련 책을 읽고, 심리상담도 진행하고 있다. 아직 초기단계이기 때문에 인정하고 깨닫기는 했지만 오늘 당장 엄마한테 온 카톡 한 줄만으로도 심장은 벌렁대고, 속이 더부룩하고, 기분도 매우 다운되었다.
엄마가 나한테 쏟아냈던 그 상처의 말들을 똑같이 엄마에게 돌려주지는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나는 엄마보단 나은 사람이고, 똑같이 상처를 준다고 해서 내 상처가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그렇지만 나도 왜 나만 엄마의 그런 걸 다 참아 줘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고 화도 나기도 한다. 나도 쏟아내고 싶고 또 그렇게 화를 내면서 질문을 하다 보면 대답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는 이제 나쁜 딸이 되기로 했다.
엄마가 말하는 학벌, 집안, 돈, 직장 모든 조건을 갖춘 사람은 아닐지라도, 나는 예비배우자 M과 함께하면서 어른이 되어감을 느끼고 있다.
"왜 이렇게밖에 못하지?"라는 시선 대신, "아, 이 친구는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있구나."라며 사람을 더 배려하고 존중하게 되는 나를 발견한다. 나는 이런 친구와 함께 내 인생을 꾸려나가고 싶다.
엄마의 기준이 아니라, 나 자신을 중심에 두고 내 삶을 살기로 했다. 내 스스로를 먼저 돌보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나쁜 딸이 되기로 결심했다. 물론, 나쁜 딸이 된다고 해서 정말로 개호래자식이 되겠다는 뜻은 아니다. 죄책감에 갇히지 않으려 한다. 그저, 나 자신을 위해, 나를 위해 사는 선택을 하겠다는 이야기다.
이제 나는 진정으로 내 삶을 살아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