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조건
엄마는 항상 말했다.
"결혼은 두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집안과 집안이 하는 거야."
이 말에 따라 상대방의 직업, 학벌뿐 아니라 부모님과 형제자매의 직업까지 중요하다는 기준이 설정되었다.
어릴 적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면, 당연히 이것이 옳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드라마 속 재벌가의 시부모가 가난한 여주인공에게 돈을 쥐어주며 헤어지라고 말하는 장면들이 현실에서도 적용될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난 어릴 때부터 엄마한테 난 그냥 선봐서 결혼할게, 대신 내 연애는 그냥 건들지 말아 줘.라고 말했다.
이렇게 말한 건 두 가지 이유였는데 첫 번째는 엄마가 내 연애까지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고, 또 한 가지는 실제로 엄마가 반대하는 결혼은 내가 하지 못할것라 체념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너 성격이 개차반이라 아주 넓은 그릇을 가진 존경받을 만한 사람을 만나야 해. 그래서 나이 차이가 좀 나고 돈이 많거나 집안이 좋아야 한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엄마의 기준이었다.
나는 나보다 나이 많은 남자가 싫었다. "오빠가~" 하며 잘난 척하는 모습도 싫고, 나이가 많다고 해서 진중하거나 생각이 깊은 것도 아니었다. 내 또래 사람 중에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존경이란 무엇으로 얻는 것일까?
첫 결혼을 고민했던 예전 남자친구도 연하였다. 학벌은 평범했고, 직업도 고소득이 아니었다. 엄마의 반대에 나는 쉽게 굴복했다. 그러나 그건 그 사람과의 애정이 그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엄마는 종종 "그때 헤어지길 잘했지?"라며 나를 가스라이팅했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비혼을 선언했다. 하지만 엄마는 몇 차례 강제로 선을 주선했다. 그 속에 내 의사는 전혀 배려되지 않았다.
사실 그 친구 이전에도 비혼에 가까웠는데 내가 가장 결혼을 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내가 과연 내 가족에게 사랑을 줄 수 있을까. 주변사람에게 고통을 주느니 혼자 살자.
또 하나는 의도하지 않은 가족의 확장이었다.
엄마의 재혼을 보며 느낀 점은 결혼을 하면 내가 의도하지 않은 가족이 늘어난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 배우자만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싶은데, 배우자의 가족까지 책임지고 돌봐야 한다는 부담이 싫었다.
지금의 예비 배우자를 만나면서, 결혼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결혼이라는 걸 다시 결심했을 때는 이미 (예비) 시댁 식구들도 만났었고 그 가족들이 좋은 사람들이라는 걸 느꼈고 나를 벌써 가족으로서 챙겨주고 돌봐주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또 처음에 말했듯이 그가 나를 좋은 사람이 되게 해 주고, 내가 진심으로 상대방을 존중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결심한것였다.
하지만 우리 엄마의 반대? 불 보듯 뻔했다. 그리고 내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말을 하자마자 가장 먼저 물어본 건 "뭐 하는 앤 데, 학교 어디 나왔는데, 걔네 부모 뭐 하시는데"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좋은 혼처 찾아줬을 때는 결혼 안 하겠다고 그 지랄을 하더니 어디서 그런 애를 데려왔냐는 거였다. 엄마가 말하는 '좋은 혼처'는 엄마의 기준일 뿐이었다. 내 기준은 아니었다.
내 기준은 확고하다.
학벌? 난다긴다 하는 남자애들도 많지만 이상한애들 투성이다. 학벌 높다고 상식이 높거나 반드시 똑똑하거나 그런건 아니라는걸 누구나 다 알고있다.
돈? 엄마의 영향으로 나는 여자가 남자보다 능력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스스로 해결할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돈은 내게 큰 우선순위가 아니다. 물론 많으면 좋겠지만.
중요한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자격지심을 갖고 있지 않은가. 이다. 자존감이 높아서 소위 너 와이프 잘 만났네 하며 비꼬는 말도 어쩌라고 하고 넘길수있을 만큼 단단한 사람인가. 너무나도 불안한 정서와 외로움을 갖고 있는 나를 단단하게 버틸수있게 해주는 땅 같은 사람인가? 소득에 관계없이 본인의 맡은 일을 책임감 있게 하고 그에 따라 조금씩 인정 받고 성장하는 사람인가 ?
결혼은 내 삶을 함께할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것은 엄마를 만족시키기 위한 일이 아니다. 엄마의 기준과 기대는 존중하지만, 그것이 내 행복을 담보로 삼아서는 안 된다.
결혼은 사랑과 존중으로 이루어진 관계를 만드는 것이며, 나의 선택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것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엄마의 기준에 나를 끼워 맞추지 않을 것이다.
결국, 결혼은 나의 행복을 위한 선택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