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가 나르시시스트가 아닐까 의심한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체크리스트를 보거나 관련 책과 유튜브를 찾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엄마가 나르시시스트인지 확신하기는 어렵다. 엄마와의 관계에서 느끼는 고통 때문에, 혹시나 엄마가 나르시시스트라면 그 사실을 통해 벗어날 방법을 찾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엄마는 몇 가지 면에서 나르시시스트와는 거리가 있다.
나를 질투하거나 사소한 영역까지 통제하려 하지는 않는다.
내 인생의 큰 틀은 통제하고 싶어 하지만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싶어 하거나, 내 삶을 지나치게 세세히 간섭하지는 않는다.(궁금해하기만 함)
특히 금전적인 부분에서 나에게 의존하려 하거나 부양을 요구한 적도 없다.
어린시절 나에 대한 보살핌이 부족했던 것에 대한 죄책감 있다. (본인피셜)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엄마가 나르시시스트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자신이나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여긴다.
자신의 기준에서 벗어난 행동은 잘못이라고 단정 짓는다.
내가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을 때만 인정해 준다.
화가 나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폭언이나 저주에 가까운 말을 서슴지 않는다.
공감 능력이 부족하며, 나에게 최악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공포감을 조성한다.
자기연민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내가 본인의 마음에 들지 않는 주장을 하거나, 제시한 길과 다른 길을 가려고 하면 대화 대신 인신공격이나 저주를 한다.
부모가 나를 본인과 지나치게 동일시하거나 나에 대해 잘 안다고 과신한다. 자신의 인생 역정과 내 인생 역정이 동일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올해 초에 내가 이직을 했는데 원래 있던 곳은 정말 누구든지 "세상에 ! 그런 직장을 다녀요?"라고 할만한 세계적인 직장이었다. 지금 이직한 곳은 뭐 그 정도까지는 아니긴 하지만 좋은 회사다. (역시 알아주는 회사지만 한국회사다, 이전에 비해 못할 뿐) 다만 나는 지금 더 성취감을 느끼고 재미가 있으며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좋아서 너무너무 만족하고 있다. 하지만 엄마는 여전히 주변사람들에게 내가 아직 그 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말하고 다닌다. 그때 이미 진짜로 엄마는 나를 트로피로만 여기는 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결혼 얘기를 하면서 더 심각해진 것이다.
반대를 하는 방법도 다양하고 교묘한데, 처음엔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다가, 차분하게 나를 설득하려 들었다. 설득의 방식은 내가 처할 최악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며 공포를 심는 것이었다. 본인이 다 살아봤기 때문에 다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내가 "그래 내가 그렇게 극단적인 상황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 같아"라고 말했을 때에도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라 그게 너에게 닥칠 현실이라니까"라고 받아쳤다.
예를 들면, 예비배우자가 집이 없어서 (매매 한 집이 없다는 뜻) 안된다고 하길래 예비배우자의 부모님이 도와 주실수도 있다고 하니, 그럼 동생이 불만을 품어 둘 사이가 틀어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는 가능성 있는 일이긴 하지만, 반드시 그런 일이 생긴다는 보장은 없다. 그럼에도 엄마는 "그게 너에게 닥칠 현실"이라고 확신하며 나를 굴복시키려 했다.
다행히, 예비 배우자는 엄마의 말로 인해 고통받는 나를 위로하며 두려움 속에서도 평정심을 찾도록 도와주었다. 덕분에 나는 차분히 사고할 수 있었고, 엄마가 단순히 통제적인 부모를 넘어 나르시시스트일 가능성에 대해 합리적으로 의심하게 되었다.
나는 정신과 전문의도 아니고, 엄마가 상담을 받은 적도 없기에 엄마가 정말 나르시시스트인지 알 수 없다. 엄마가 나르시시스트가 아니더라도 결혼을 반대할 것이다. 하지만 엄마를 설득할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예비 배우자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기 때문에, 언젠가 엄마의 마음에 들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엄마가 나르시시스트라면, 나는 더 이상 엄마의 허락이나 인정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 내 인생은 내가 고민하고 결정해야 한다.
한 가지 걱정은, "엄마가 나르시시스트라서 나는 고통받았고, 불쌍하다"는 자기 연민에 빠질까 두렵다는 것이다. 이제는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기보다, 내가 원하는 삶을 선택하고 책임지는 어른이 되고 싶다.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규정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인지를 찾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