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vita è bella-취리히의 밤(2)

by Hazelle

파티에 계획했던 대로 너무 이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게 적당히 도착을 했고 벌써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 사이에 스며 들었다.

내일 따로 미팅이 잡혀 있긴 하지만 미리 운을 떼려면 오늘 밤 디노 발레스트라와 친밀한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웨이터에게 코트를 맡기고 장내를 찬찬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집을 둘러보면 그사람의 성격이나 취향을 대충 알아차리는데 도움이 된다.

아는 얼굴이 보이면 가볍게 인사를 하면서 집 안을 거닐었다.

안주인이 없는 집 치고는 꽤나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쓴 인테리어다.

파티를 돕고 있는 웨이터와 웨이트리스는 총 5명인데 외부 사람이 아니라 이 집에서 원래 일을 돕는 사람들임이 분명했다. 모두 능숙하고 편안하게 마치 집주인처럼 사람들을 대하고 있었다. 1층에서 2층으로 연결되는 대리석 계단에는 오늘 파티를 위해 새로 깐 듯 희미하게 매캐한 새 카펫 특유의 냄새가 나는 페르시안 카펫이 묵직하게 깔려 있다. 난간 시작 부분의 메두사가 훌륭해서 쓰다듬다 무심코 눈을 들었다. 2층 난간에 기대 독일 방송국 사장과 얘기중이던 디노와 눈이 마주쳤다. 황급히 눈을 돌리려는데 그가 반갑다는 듯 미소와 함께 손짓을 한다.

그가 먼저 환영을 해 주니 잘 된 일이지만 여전히 저 남자에게 호감이 가진 않는다.

곧 내려가겠다고 수신호를 하는 그에게 최대한 상냥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무겁지 않고 흥미롭게 프로젝트 제안을 할 궁리를 하고 있는데 반갑지 않은 웃음 소리가 뒷쪽에서 들려왔다.

허스키하면서도 톤이 높은 웃음소리에 특유의 애교스런 말투... 티내지 않으려 애써도 별 수 없이 묻어나오는 폴란드식 억양의 프랑스어...세상엔 그런 여자가 많겠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여자중 저런 목소리를 가진 여자는 딱 하나다.

소피 로돕스키.

아랄도의 첫 번 째 부인 ...

세상은 넓은 듯 하지만 각자가 속해 있는 세상은 그다지 넓지 않다는 것이 안타까운 점이다.

저 여자를 몇 년간 일주일에 한번씩 꼬박꼬박 만나왔는데도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인간이다. 더구나 오늘은 더더욱 말을 섞고 싶지 않다. 둘이 모여 있는 꼴을 본 참새들이 아랄도의 전처 둘이 사이가 좋다 할 것 아닌가. 웬만한 아랍 석유 왕자 뺨치게 복잡한 인생을 사는 남자와 결혼했었던 댓가란 곳곳에 사소하게 갚아야 하는 빚처럼 남았다.

“오! 마리나~ 난 미리 명단을 봐서 참석하는지 알고 있었는데, 내가 여기 있을거라곤 상상을 못했죠? 아하하하”

가뜩이나 높은 목소리를 애써 한 옥타브 더 높게 내며 암코양이처럼 발자국 소리도 없이 그녀가 다가오고 있다... 소피의 아버지는 그 유명한 브라질의 거대 조각상으로 유명한 폴 로돕스키다. 예술가가 사교계를 주름잡는 파리에서 소피는 특별히 내세울 커리어가 없음에도 아버지 덕에 꽤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여자중 하나였다.

어떻게 할까, 아무렇지 않게 형식적으로 인사를 나눌까 아님 안 들리는 양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 버릴까 생각하는 사이 소피는 어느 새 코 앞에 다가와 있었다. 언제나처럼 이해하기 힘든 패션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리고 너무나 잘 어울리는 디올의 독한 향을 머리가 딱 아플만큼 풍기고서...

“못 본 새 살이 더 빠진것 같기도 하고..? ‘내 딸’이 독립한 후론 서로 보지 못했으니 꽤 오랜만이죠? 하하하. “

“방송쪽 일에도 관여하고 있는 줄은 몰랐군요.”
이런 공적인 파티자리에서 전 남편의 전 처와 마주 서서 내가 내키지 않았어도 키워야만 했던 그녀의 딸 얘기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다. 재빨리 말을 끊는 내 의중을 파악한 듯 그녀는 입을 삐죽이다가 꼭 방금 생각난 듯 조잡한 입술을 바삐 움직이기 시작한다.

“참, 그런데 내가 이상한 소문을 들었는데 말예요. 아랄도와...”

이 여자는 머리가 그리 좋지 않은데 비해 교활하려 애쓰는 쪽이다. 뻔한 말을 하고자 뻔한 제스추어부터 취하는 그녀를 보자 이상하게도 폭소가 터지려한다.

“아까부터 다큐 기획 건으로 중요한 얘기를 나누려고 주최자께서 기다리시는 중이라... 소피씨는 저와 그다지 중요한 얘기를 할 일은 없으신 것 같군요.”

안 보는 척 눈을 다른 곳에 두고 있지만 이쪽의 대화가 궁금해 죽는, 귀가 두 개라 편리한 인간들의 관심이 부담스러워 평생 모든 것에 무치인 소피를 남겨두고 무작정 마침 보이는 2층쪽 계단으로 발을 옮겼다.

이전 03화La vita è bella-취리히의 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