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vita è bella-취리히의 밤(1)

by Hazelle

- 겪어보니 이 책에 표현된 하나 하나 궁상맞은 감정의 표현을 속속들이 알겠다.

처음 읽었을때는 어쩌면 이런 멍청한 남자가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다시 읽었을때는 몇 몇 심리 묘사 부분은 어느 정도 수긍이 가기도 했다.

마침내 다시 한번 더 읽었을때는 ... 이 남자는 정말 멋있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가 가질 수 있었던 선택이 과연 몇 가지나 되었을까... 그리고 그 중 가장 우아한 헤어짐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버림 받는 것 보다 차라리 베푸는 것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이 이토록 오래 스테디 셀러인 것은 그만큼 나같이 겪은 사람이 많다는 뜻이리라.

갑자기 좀 덜 외롭단 생각이 든다.

사실 나도 오랜기간 그저 침묵해 왔다.

나도 그가 떠날까 두려워 그저 입을 다물고 있었을 뿐이다.

헤어졌다고 말했을때 친구들 중 그 누구도 진정 놀라진 않았다. 모두 놀라는 척 내 앞에서 부러 호들갑을 떨었을 뿐...

그리고.. 나도.. 놀라지 않았다.

사랑에 빠질 때 그냥 저절로 알게 되듯이.. 그렇다.

사랑이 끝났을때도 그냥 알게 되어 있다. 아는데 그저 눈을 감을 뿐...

6개월을 넘게 심리테라피를 받았는데 여전히 체한 듯 속은 답답했었다. 그런데.. 이 얇은 책 한 권으로 치유가 되다니...

왠지 이 사람을 만나야 할 것 같다. 그와 만나 얘기를 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그의 눈을 한 번만 들여다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이 작가가 정말 본인이 겪은 일을 쓴것이라면, 그는 안타깝고 따뜻하며 지적이다.



취리히의 밤



생각보다 길었던 컨퍼런스를 마치고 드디어 며칠간 묵을 호텔방에 짐을 풀어 정리한다.

조용하다 못해 적막한 호텔방 한 가운데 앉아 있자니 시간이 멈춘 듯 왠지 작은 움직임조차 부자연스러운 느낌이다.

하루를 떠나도 집이 아닌 다른 곳에 머무를라치면 최소 큰 트렁크 하나와 작은 트렁크하나를 준비하는 나를 아랄도는 못마땅해 했었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떠나면서도 늘 처음부터 삐걱거리곤 했다.

이번엔 내가 트렁크를 대여섯개를 가져온다해도 옆에서 군소리를 할 인간도 없어졌는데 아무 것 하나 들지 않아도 이미 너무 무거운 자신을 끌고 다니느라 피곤한 나머지 작은 트렁크 하나가 짐의 전부다.

장거리 여행중 마침내 도착지 호텔에 다다르면 죽을 듯 피곤해도 우선은 트렁크를 다 비우고 호텔방에 차곡차곡 정리를 해 놓아야 직성이 풀리곤 했지만 그것 역시 지금은 하고 싶지 않다.
옷도 갈아 입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워 천정을 바라보자니 갑자기 화가 났다.



아랄도!

당신이 대체 내게 무슨 짓을 한건지 알아?

당신은 내 마음을 찢었을 뿐 아니라 겪지 않아도 될 수치심과 불편함을 곳곳에 심어두고 심지어 평생 즐기며 살았던 ‘나 다운’ 짓들도 부질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군.

당신과 결혼할때도 수많은 눈초리와 편견들에 맞서야 했었지.

그래도 그때는 당신이 있어 두렵지 않았다고 해야겠다.

그런데 혼자 맞서야 하는 세상의 눈은 송곳처럼 날카롭고 얼음처럼 냉정해.



많이 차분해졌다 생각했었는데 분노는 또 눈물이 되어 흐른다.
뭐 어때. 오랜만에 아이들에게 들킬 염려 없이 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해 부러 참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벨을 누른다.

룸서비스를 부르지도 않았는데... 실컷 울 수도 없어 잔뜩 신경질이 난 상태로 문을 열어 제끼자 호텔 지배인이 훈련한 듯 말끔한 미소를 머금고 서 있다.

“ 컨퍼런스 참석자 분들은 스위트 룸을 내 드리라 했는데, 착오가 있었습니다.

방을 옮기시지요. 혹시 짐을 벌써 푸셨다면 저희가 그대로 옮겨드릴테니 번거로우시겠지만 스위트룸으로 일단 가신 후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컨퍼런스를 많이 다녀보았지만 스위트룸을 제공하는 건 처음이다.

디노 발레스트라가 왜 이 형식적인 컨퍼런스에 이렇게나 공을 들이는지 모를 일이다.

어쨌건 가식과 형식으로 잔뜩 치장한 인간들을 만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참석하고 싶은 의지는 요만큼도 없지만 새로 기획중인 ‘환경 다큐멘터리’는 디노 발레스트라의 적극적인 지지가 아쉬운 상황이라 어쩔 수 없다.
준비해 온 드레스 세 벌을 차례대로 침대에 펼쳐놓고 쳐다보기만 30분째다.

가슴을 강조하는 하이웨이스트 드레스를 입자니 왠지 ‘새 남자를 물색하는 중’으로 보일까 주저하게 되고 샤넬라인의 블랙 수트 정장을 입자니 장례식 분위기를 풍기는 ‘정신적 상중인 이혼녀’로 보일까 두렵다.

결국 짐을 챙길때 부터 입게 되리라 알고 있었던 로랑의 미니드레스를 입고 있다.

긴 목을 반쯤 가리는 단정한 디자인이지만 길이가 짧아 답답하고 우울해 보이진 않을 것 같다.

제기랄.

옷 하나를 고르는데 대체 몇 가지를 고려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얼마 전 세실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이혼녀로 산다는건 말야 난해한 컬트 무비의 감독이 된 기분이랄까?

난 아무 생각없이 하는 행동인데 남들은 자꾸 내 행동에 거대한 해석을 붙이곤 한단 말야.
예를 들면 며칠 전 일요일인데 싱크대 배수관이 막혔어. 오후에 티 파티도 있었는데...

당황스러워서 전화번호책을 펼쳐놓고 동네 배관공 모두에게 전화를 했지만... 알잖아? 우린 게을러 터진 프랑스에 살고 있단 말이지.

결국 손재주가 있는 아는 남자에게 부탁하기로 했는데 그 아는 남자의 범위에 유부남을 포함시킬 순 없잖아. 그의 아내가 기분 나빠 할테니까...

그래서 난 프랑수와에게 전화를 했어. 흔쾌히 와서 도와주더라구.

그에게 사례를 하고 싶어 저녁을 대접했어.

그 다음 주에 회사에 출근을 해 보니 그와 내가 시작하는 연인이 되어 있더라구. 하하.

이런 식이야.

앞으로 네가 파란색을 입어도 사람들은 붉은색이라고 할거야.

점점 익숙하게 돼.

결국 사람들은 보고싶은대로 보고 떠들고 싶은대로 떠드는거
니까... 네가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어. 그들은 나에 대해 재미삼아 얘기하고, 난 그들의 그런 오지랖을 비웃는 재미로 살아 ..”







이전 02화La vita è bel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