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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신곡2 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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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lle Oct 28. 2024

05. 가라앉기를 기다려라, 무엇이 그토록 탁하였는지

(15)

“최 성숙! 담임이 진로 희망 조사서 다음 시간까지 내래는데...  너 진짜로 ‘무당’이라고 적어내면 혼날것 같은데…”


1학년 말, 이과반과 문과반 희망자 조사 시절에 성숙이 끝까지 이과인지 문과인지를 표시하지 않아 실랑이 중이었을 때 성숙은 무심하게 흔들리는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다 지나가는 말처럼 대답했었다.


“글쎄... 이과를 가면 점사볼 때 쌀알을 좀 더 수학적으로 던질라나... 태어날 때 부터 뭐가 되기로 정해진거 진짜 이상할 것 같지? 이제는 진짜 이게 팔자인건지... 아님 우리 엄마가 나를 그렇게 세뇌시켜 키워 그런건지... 잘 모르겠단 말이지... 


너! 오늘 체육시간에 뛰지 마! 발목 나가!”


그 날 체육시간에 윤조는 정말 발목을 삐끗하자 성숙이 괜히 불쾌했었다. 윤조는 여지껏 성숙이 저주를 퍼부어 일어났다고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갑자기 오늘 눈 앞에서 보고 있는 성숙은... 

18살에 아기 무당이 되려고 외로운 내림굿을 받는 중인 성숙은 ... 참 고되 보였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채로 잠시 숨을 고르고 있던 성숙은 양보살이 다시 북끈을 고쳐 쥐고 일어서자 서늘한 표정으로 한복 저고리의 고름을 매만지며 따라 나서고 있었다.


가뜩이나 하늘을 향한 눈꼬리가 더욱 치솟은 양보살이 독기를 가득 품은 눈을 번뜩이며 북을 요란하게 두들긴다. 땀과 물에 흠뻑 젖은 채 마른 몸을 오돌오돌 떠는 성숙이 서서히 이상한 기운을 뿜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알 수 없는 냉한 기운에 소름이 돋은 윤조는 대체 자신이 이 시간에 왜 이런 곳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어야 하는지 따위에 대해 생각할 정신은 없었다.


“멍청한 것…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은 것을 왜 몰라. 왜 스스로 재수없는 것을 없애지를 못하고 붙어 있느냐 말이다!!!”


갑자기 춤사위를 격렬하게 추던 성숙이 일순 몸을 멈추고 50대의 걸걸한 남자 목소리로 버럭 윤조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윤조는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뒤로 젖혔지만 한주는 비웃듯 한쪽 입 끝을 일그러뜨리며 비아냥거리고 있었다.


“퇴출당할까봐 어지간히 무서웠나보군. 끈덕지를 만들려고 발버둥을 친 것을 보면…”


성숙은 핏발이 잔뜩 선 흰자위를 희번덕거리면서 젯상에 올려놓았던 막걸리를 찾아 단숨에 들이켰다.


“차라리 ‘그 곳’에 떨어지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나본데, 거기를 거칠바에야 차라리 구천에서 영원히 헤매는 것이 낫다고! 애먼 애 곁에서 맴돌지 말고 생각을 바꾸라고…”


아까부터 익은 말투라고 생각중이던 윤조는 그제사 성숙의 몸에 들어간 것이 주정뱅이 영임을 알아차렸다. 마침 북쪽하늘에 번개 한 가닥이 번뜩이자 퍼렇게 질린 한주의 옆얼굴은 징그러울리만치 시퍼렇게 달아올랐다.  성숙의 호통에도 한주의 얼굴엔 표정이 없었다.


“미친 영감… 누가 누구한테 훈계질이야… 업신들도 직업윤리가 세서 철저하다더니 맞나보군. 영감탱이가 진 빚도 잊고 주둥이를 마음대로 나불거리는 걸 보면…”


큰 돌 사이만 도는 두꺼운 계곡물 보다 더 가라앉은 목소리로 한주는 낮게 중얼거렸다. 험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뱉는 한주를 바라보던 윤조는 그제사 한주는 이런 투의 말을 하는 아이는 아니었단 사실을 떠올렸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지… 아니면 죽음은 누군가를 이토록 무섭게 변하도록 하는 것인가… 


“뭐해? 네 친구 안 살릴거야? … 얼른 물어! 성숙이가 초짜라 지금 완전 비운 상태에서 신이 든거라구. 그래서 신 받은지 얼마 안 된 무당들이 영험한거라구. 그러다 세월 타면 무당이 인이 박혀 신을 받을 때 완전히 비켜주질 않는다구. 제가 신이 된 것으로 착각하는거지. 이때부터 하는 소리들은 대부분 맘대로 지껄이는 것이던가 귀신이 하는 소리를 제멋대로 해석한 것이야. 하여간 그런 걸 설명할 시간 없고, 돋보기가 초짜라 아마 곧 못 이기고 뱉어낼거야. 영들은 단독으로 있을 땐 함부로 보이는 걸 말 못하게 되어 있지만 무당의 부름에 응한 업신들은 직업상 산 인간이 묻는 건 답을 해 주게 되어 있어. 그러니까 얼른 해!”


“아… 저기….”


윤조는 다급하게 성숙의 주의를 끌었다. 성숙은 여전히 뒤집힌 눈을 들어 윤조를 노려보았다.


“… 그런데… 뭘 물어야하지?”


윤조는 당황하여 한주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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