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zelle Jun 07. 2024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은 호기심…

(8)

“지금 일부러 반항하는 겁니까? 본인 줄라고 싼 거 다 알면서?”


“아니 각자 싸 먹으면 되지 왜 누굴 싸 주고 그러세요. 그리고 누구는 싸주고 누구는 안 싸 주고 그러면 되겠어요? 원래 먹는 거에 제일 빈정 상해요.”


“난 싸주고 싶은 사람만 싸줄 건데? 그나저나 일주일 만에 봐서는 이렇게 성게같이 구는 이유가 뭐요? 이 추운 날에 백수가 방문 나서는 건 얼마나 큰 정성인지 아시오, 낭자?”


“그 유치한 사극 집어치우시고요. 그 일주일 동안 왜 연락 안 한 겁니까? 대체 뻐꾸기는 왜 날리는데? 니는 백수라서 시간이 남아도는지 몰라도 나는 억수로 바쁘거든?”


갑자기 일주일 동안 화장실 갈 때마다, 잠깐 커피 마시는 시간에, 밥 먹다가, 그리고 잠들기 전 오래… 그를 궁금해했던 것이 생각나자 화가 치민다. 화가 나면 원래 모국어, 아니 모촌어? 가 나오는 법이다. 그리고 갑자기 이 열린 공간, 이 많은 아재들이 눈에 안 들어오고 딱 이 남자만 보이면서 이미 트인 입을 주체할 수 없다.


“…. 지금… 이거는 웃길라고 쓴겁니꺼, 진짜로 화가 나니까 더 이상 서울말이 안 튀어나오는 겁니꺼… 이거 보세요, 김 대리님. 일 잘하신다는 데이터베이스 엔지니어 김 대리님. 내 딴에는 좀 천천히 알아갈라고, 안 놀래킬라고, 2년이나 같이 채팅으로 떠들었다가 이제 겨우 한 번 만났는데 처음부터 전화번호 묻고 어쩌고 하면 도망갈까 봐 다시 우리에게 익숙한 그곳에서 좀 더 친해지려고 했는데 대체 쪽지 수신 거부는 왜 한긴데!! 가시나야, 싫었으면 싫다고 그 자리에서 국수 묵다가 말하던가. 그리 헤어지고, 내가 분명히 다시 보자 했재. 근데 니 쪽지 딱 거부해 놓았더라? 그라면 내가 우찌 생각하겠노. 니만 일주일이 그랬나? 나는 지옥이었다. 그래서 내가 하다가 하다가 내 사촌한테, 것도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형인데,… 


뭐? 형 니는 지금 낄 때가 아니다. … 뭐라꼬? 니 안 좋아하냐고? 몰랐나 그라믄. 눈치가 그리 없나? 망둥어 뛰니까 같이 팔짝대는 꼴뚜기가 뭐꼬? 아 마 시끄럽고. 몰랐으면 그라믄 인제 알면 되겠네. 나 니 싫어한다. 됐나. … 


하여간에, 그래서 내가 진짜 다시 봐서 함 물어볼라고. 내가 뭘 우쨌다고 쪽지는 거부한 긴데? 그라믄 니는 왜 아구찜 묵으러 가자 할 때 딱 잘라서 싫다고 안 했는데?”


“… 그거는… 아… 몰랐는데…”


말문이 막혔다. 사실 방이 좀 인기가 있어지면서 하도 따로 들여달라는 쪽지나 이상한 아저씨들의 작업 쪽지가 많아서 아예 쪽지 자체를 수신 거부해 놓고서는 그걸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남자는 진짜 어설픈 사투리로 마무리했지만 사뭇 정말 화가 나 있었다.


“미안… 요… 사실은 하도 쓸데없는 쪽지가 많이 와서… 만나고 나서 쪽지 거부해 놓은 게 아니라 원래 쪽지 수신 자체를 거부해 놨었다고… 나는… 사실 그래 놓은 것도 잊고… 그쪽이 쪽지도 안 보낸다고 욕을… 엄청…”


“… 우리가 처음 만난 날 오래 본 건 아니지만… 우리 굉장히 중요한 거 같이 했잖아요…. 우리… 차 같이 탔고 밥 먹었잖아요. 원래 옛날에는 그랬대요. 기차 안에서 만난 사이로 결혼도 많이 하고, 그리고 끼니를 함께 한 것 또한 큰 인연이라고… 그리고 내가 나쁘지 않았잖아요. 그러면 욕 하기 전에 본인이 먼저 나를 찾을 수도 있었잖아. 나는 쪽지 거부 안 해 놨는데… 내 아이디 알면서. 이름을 그냥 영문으로 친 거라고… 그 큰 비밀도 그날 내가 특별히 말해줬잖아.”


“… 맞는 말이네요… 미안해요.”


“그래애? 마 생각보다 시원시원하데이, 미안하면 이거 묵어라 가시나야.”


결국 그 피가 질질 흐르는 커다란 보따리 쌈은 억지로 내 입안으로 구겨 들어왔다.


“마 걱정하지 말고 그냥 묵어라. 인간의 입은 생각보다 억수로 크데이”


“웁… 우….”


다 씹어 삼키는데 정말로 오분은 걸린 거 같다. 


“그 되지도 않는 사투리 진짜 그만 안 두면 앞으로도 계속 쪽지 거부할라니까.”


“오… 얼마나 그 말하고 싶었을까. 씹는 동안. 내가 이거 삼키기만 해 봐라. 이 소리 바로 해야지! 했지? 맞지!!”


밉살스럽지만 아까처럼 성게 같은 가시를 세울 수도 없다. 지은 죄가 있으니… 


“어머나…. 이히히히.(진짜 내공이 높은 애교녀들은 재채기 소리, 웃음소리도 여러 가지 구비해 두고 적절하게 귀여운 소리들을 골라내는 재주가 있음.) 김 대리님 이히히 붕어 같애요.”


피맛 고기가 본인 차지가 아니어서 많이 삐진 듯하다.


“기다려. 경미 씨는 내가 싸줘야지!”


저 여인의 계속되는 까칠한 공격을 내가 큰 포용력으로 안아주는 것을 보여줄 테다. 즉시 그녀만을 위한 쌈 제조에 들어갔다. 생마늘 두 개를 등심위에다가 브로치마냥 콕콕 박아서 잠시 동안이나마 마늘 제군들의 알싸함이 저 여인의 부담스럽게 달콤한 애교를 마비시킬 수 있도록…


“둘이 다 싸웠어? 

아까부터 아는 사이도 모르는 사이도 아닌 것처럼 민숭민숭하더니 차라리 속이 다 시원하네. 그러니까 김 대리가 받을 수도 없는 상태로 해놓고 연락 안 온다고 군 시렁 댄 거 아냐.”


한 대리 의외로 요약력 있네? 살다가 서울대 나온 모지리를 꽤 보았는데 그 모지리들의 특징은 또한 급작스럽게 놀라운 정리력, 통찰력, 요점 정리력을 드러내어 천재와 바보는 한 장 차이라는 진리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간단하게 전화번호를 묻던가.”


채팅이 뭔지도 잘 모르던 상무도 그새 시스템 파악이 끝났고, 좀 오래되었지만 역시 최고 대학 출신답게 솔루션 정확하다. 그렇지. 남자답게 전화번호 물었음 되었지. 역시 선배님이 후배를 항상 이긴다.


“원래 안 될 인연이 그렇게 첨부터 삐끄덕 거리거더엉.. 쿡쿡쿡”


아뿔싸… 저 여자 쌈 안 주니까 우리끼리 말 주고받는 사이 돌아 앉아 세 잔 꺾더니만 아직 1차도 안 끝났는데 본격적으로 만화 웃음 시작했다… 어여 나의 특제 쌈을 먹여야 한다.


“경미 씨잉, 아 해주떼엽. 나으 크다란 사랑이여요. 아아앙!!”


야, 니만 만화 보고 컸냐. 나도 만화 좀 봤다. 다만 내가 본 만화엔 구영탄이 주인공이고 평생 머리 안 빗는 까치 총각의 처절한 자수성가 스토리, 또는 갑자기 유기동물들 떠안아 망해가는 소시민 고길동 아저씨… 등이 나와서 내 지금 솔직히 애교 함 떨어볼라니까 자꾸만 둘리네 희동이 소리만 튀어나오지만서도… 마 됐어. 원래 애교 중 최고봉은 아기 애교야.


역시 알코올기 만연한 여인은 경계심을 일단 버렸다. 그리고 약간의 판단력에도 문제가 생긴 것이 감지된다. 그렇지 않고서야 하마가 갑자기 귀엽다는 생각을 하고서 있는 대로 어금니를 개방하는 짓은 안 할 텐데… 눈을 아예 지그시 감고 한껏 귀여워 죽겠는 표정으로 입을 크게 벌린 그녀에게 나의 소중한 쌈을 잘 쑤셔 넣어주었다. 그리고 매우 사랑스럽게… 이유식 받아먹는 아기 보는 엄마 표정으로 그녀를 살핀다. 희한하네… 생마늘 브로치 먹은 거 같은데 아무렇지 않네… 

앗! 그렇다… 알코올은 미각도 마비시키는데…아… 저 정도로 빠른 진행이라면 저 여자 오늘 상당히 위험스럽다. 여자 둘이 유치하게 쌈전쟁 중인데 장 선생은 아랑곳 않고 계속 나한테 못다 한 말들을 이어간다.


“그렇게 뻔하게 전화번호 묻고… 그러면 보스에서 발바닥 비비다 만나는 애들이랑 다른 게 뭐야. 우리는 건전하게 같이 밥 먹었잖아. 그래서 나는 좀 더 조용하고 천천히 가고 싶었다고.”


“아 둘이 그만 싸우라고. 남의 회식 자리에서 진짜 뭐 하는 거야 정말. 하나는 외부 직원이고 하나는 직원 이종사촌이고… 떽!!”


저쪽 샤부샤부 테이블에서 죽까지 섭렵하고 다시 고기 자리로 돌아온 안 부장이 뒤늦게 입바른 소리를 하며 나타났다. 항상 어디서건 상무님이 중심이 되어 그의 복음을 어린양들이 다소곳이 듣고 있어야 하는데 상무님이 방청객인 모양이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그런데… 내 아까도 말했지만… 인간이 열심히 가방 들고 회사 다니는데 승진이 친구보다 늦을 때는 요모조모 본인의 여러 가지 행동거지들을 잘 고찰해 보아야 하거늘 늘 그렇듯 가장 큰 팩터는 ‘눈치 부족’ 되겠다.


“안 부장!! 지금 우리 안식구 수술 직접 집도해 주신 주치의 선생님한테 그 무슨 무례한!! 내가 이러니 자네가 부장 된 건 그나마 조상 덕이라고 하지!!”


말했잖소… 이 상무는 여러 인격체를 보유하고 있다고. 그중 가장 만만한 부하를 대하는 인격체는 유독 혹독하다.


“그때, 왜 그 사모님 입원하셨을 때용… 선생님! 보시어요, 선생님? 장 선생니임?! 선생님, 기억하시죠. 그 밤! 제가 상무님 심부름으로 저녁에 사모님한테 들렀을 때요! 그때 선생님이 저한테 캔커피 주셨잖아용! 홍홍홍! 저 엄처엉 순진하거든요. 그런 거 주면 막 크게 생각하고 설레고 그러거덩요… 게다가 저한테 이름도 물었잖아요. 그래서 저는 오늘 한 대리님이 저 찾는다고 하시길래 진짜 너무 좋았거던요?? 근데… 이거 뭔 시츄에이션인가요???”


“옴메… 이건 뭔 또 아침 드라마여? 그니까 지금 우리 경미 씨가 진짜 캔디인겨? 우리 경미 씨가 먼저 만난는갑네. 이 의사 쌤을…”


“안 부장. 좀 조용히 해봐라. 지금 좀 흥미진진하다잉… 이거 끝나면 우리 2 차가자.”


무슨… ‘드라마 끝나고 광고할 때 화장실 가야지?’ 하는 것도 아니고… 이 아저씨들이 아예 시청자 모드를 하고 연신 고기는 잊지 않고 먹어가면서 구경하고 있는데 이미 여러 잔의 소주 마취로 부끄러움부터 상실한 저 처자가 막 달린다. 그리고 나도 굉장히 이 드라마에 관심 있다. 잠깐만… 쟤가 캔디면 내가 일라이저야? 원래 마몽드 쓰는 애가 캔디고 랑콤 쓰는 애가 일라이이저 아냐?


“이 새끼 이거 웃기는 새끼네. 그러니까 경미 씨한테도 캔커피 주면서 친절 떨고, 우리 김 대리한테도 국수 사주고… 니 그리 할 일이 없나 이 자슥아… 이 가문에 똥칠하는 자슥아.”


“내가 캔커피를 줬다고요?”

이전 14화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은 호기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