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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lle Jun 05. 2024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은 호기심…

(7)

“… 나는 김 대리가 경리고, 경미 씨는 상무님 비서인 줄 알았죠.”


이것 봐라…? 이름도 안다?


“그러니까 인어님, 인어님은 경리직이 아니라는 거죠? 그럼 뭘 하시길래 그렇게 바쁘신지?”


정신 사납고 어색하기로 최고인 희한한 재회 이후 처음으로 그가 나를 제대로 바라본다. 뭐가 그리 웃기는지 눈이 잔뜩 웃고 있다. 눈으로도 폭소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며 저런 것도 재주인가 이상한 궁금증이 든다. 어쨌건 내가 저 남자를 많이 웃기나 보다. 나쁘지 않지만 그렇다고 또 막 신나는 것도 아니다. 대학 때 나보다 더 웃긴 친구가 그랬었다. 여자가 웃긴 거.. 그거 장점도 뭐도 아니고 그냥 만고 쓸데없는 거라며…


“아니 우리 김 대리가 뭐 하는지도 모르는 사이야??


우리 김 대리가 얼마나 심오하고 중요한 업무를 하는 여인인데… 이 대한민국 최고의 정유회사 다음 해 예산이 저 여인 손가락 끝에 달렸다고. 의사결정 시스템을 지금 혼자서 다 해주고 있지. 아주 매력덩어리야. 그 복잡한 시스템 혼자 다 짜고, 매주 배 이만큼씩 나온 아저씨들 30명씩 모아놓고 교육도 해주는데 내가 직원들 사내 교육 기다리는 꼬라지를 처음 보잖아. 우리 김 대리 덕에. 아주 똑 소리 나고 술도 잘 먹고, 노래방에선 박 미경이 저리가라로 잘 놀고 아주 인재 중 인재지. 암.”


상무가 왜 저리 칭찬이 늘어지나 했더니… 드디어 소주 이병을 영접한 지 좀 되었구만. 어쨌건 장 선생에게 나를 마구 치켜세워주니 고맙고 또 예쁘다. 


“아… 데이터베이스 엔지니어?

우리 방장님 마 멋진데?”


상무가 내 칭찬을 랩처럼 늘어놓으니까 경미 씨가 갑자기 조용하다. 조금 자신이 생길라 한다. 어쩌면 예쁜이 보다 똑똑이를 좋아하는 별종일지도 모른다…


장 선생이 양쪽으로 살짝살짝 피만 굳힌 거의 살아 있는 꽃등심 한 조각을 가져가서 쌈을 싸기 시작한다. 돌이켜 봐도 웃긴 상황이란 그 남자가 쌈을 싸는데, 대체 왜 사람 넷이 뚫어져라 거기에 집중을 하고 있었느냐는 것이다. 싸고 있는 남자마저 너무도 쌈에 집중하여 눈 여덟 개가 그의 첫 쌈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남자는 다소곳하게 싱싱해 보이는 적당히 작은 상추 하나를 깔고 그 위에 모로 무쌈 하나를 올린다. 그 위에 피가 질질 나고 있는 아프지만 싱싱한 꽃등심 중 도톰한 한 점을 집어 소금에 살짝 대듯이 묻히고 무쌈 이부자리 위에 올리더니 구운 마늘과 고추 토막에 쌈장 모자, 파채를 보슬보슬 올리고 드디어 오므린다… 


신기하지?

그 바라보는 넷 중 셋은 그 쌈의 주인공으로 간택되기를 바라고 있다. 아닌 하나는 나다. 저 인간이 남 먹일라고 첫 쌈을 저렇게 정성스럽게 싼다고? 첫 만남에 다음에는 아귀찜이라고 꼬셔놓고 깜깜무소식이던 저 소시오패스가 남을 그리 생각한다고? 그런데 사실 남자는 주저하면서 분명히 이 쌈이 본인을 위한 것은 아니란 것을 바디 랭귀지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절대 나는 아니었으면 한다. 일단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기 먹을 줄 아는 사람 만이 느낀다는 피맛’ 나는 싫고, 그리고 저 자가 지금 만든 저 쌈은 그야말로 보따리만 한데, 갑자기 잘 보이고 싶어 진 저 자 앞에서 흉하게 내 금니가 몇 개인지 보여주고 싶지 않다.


“역시, 자식! 먹을 줄 안다니까. 너는 진짜 똑같은 음식도 제일 맛있게 먹어. 오랜만에 만난 이 형님 것 맞지? 아~~~”


한 대리가 징그럽다는 사전적 의미를 비디오판으로 보여주면 딱 좋을 얼굴 표정을 지으며 입을 벌린다.


무슨 게임 중이었던 것도 아닌데 이 테이블의 모든 이가 갑자기 등장한 이 장 선생만 바라보고 있다. 아니, 그의 쌈이 누구에게로 향할 것인지가 지금 아주 큰 관건이다. 상무도 체통상 아무 말도 안 하지만 눈이 그 남자가 쥐고 있는 쌈에서 떠나질 않는다. 대체 이해할 수 없다. 지금 불판 위에 깔린 게 고긴데, 똑같은 고긴데 그냥 각자 싸서 먹으면 될 일이지 왜 저 남자의 쌈을 그리도 학수고대하는지? 피식 웃음이 나려는데 드디어 나타났다. 3세 여아…


“아아앙. 아! 어쩌주떼염! 어따삐 저 쥴라고 하셨쎄여(이건 아무래도 하셨짢아여… 쯤으로 말하고 싶었는데 발음에 너무 치중하여 본문을 까먹은 케이스인 듯)”


경미 씨는 참 시원시원한 이목구비를 가진 서양미인 스타일이니까 저 쌈에 맞는 사이즈의 입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왠지 장 선생이 이 여자를 위해 쌈을 싼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럼 나는 내가 싸서 먹을 테다. 그 자의 쌈이 어디로 가는지를 보고 있는 것 자체가 유치하므로 나도 상추를 하나 골라 보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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