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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lle Jun 09. 2024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은 호기심…

(9)

“어머… 지금 오리방(발음이 뭉개지기 시작했다. 오리발이 지금 사뭇 힘겨운 것이다.) 내미시는… 거예요? 사람 그리 안 봤는데 초잡네… 주셨잖아요! 그 왜 닝닝해서 맛도 없는 거! 아무도 안 사 먹는 거… 그래도 주신 거라 제가 얼마나 아껴먹었는데… 지금 와서 준 것도 기억 안나는 척하는 거예요??”


원래 술 취하면 화도 더 잘 나고 웃긴 건 막 배 찢어지게 웃기고, 슬픈 건 막 한강 뛰어내릴 정도로 슬프고 그런 법이다.


경미 씨는 정말 얼굴이 빨개지면서 화를 냈다.


“…아! 그 싼타펜가 뭔가? 그거 어떤 환자 보호자가 줬는데 나 그거 너무 맛없어서… 갖고 다니다가 처음 보는 사람한테 준 건데… 그래도 그게 꾸준히 팔리는 건 누군가는 좋아한다는 거겠죠? 그래서 나는 그 맛이 안 맞더라도 누군가는 좋아할 거라 생각했거든요. 내가 아마 이 캔커피 좋아하시냐고 먼저 물었을걸요? 그랬더니 가장 좋아하는 캔커피라고 했고 그래서 난 참 기뻤는데? 그게 무슨 문제라도?”


“… 아 몰라요! 짜증 나요! 그 커피 좋아하는 애 내 친구 중에 한 명도 없거든요? 본인이 싫어하면 대부분 남도 싫어할 거라고 생각 안 하세요? 참나 정말!”


“그러니까. 내가 물었을 때 싫어한다고 말했으면 좋았을걸요… 김 대리님? 싼타페 좋아해요?”


“아뇨.”


“저거 봐요. 얼마나 간단해요. 저렇게 대답하면 제가 뭐 미쳤다고 제발. 좀 드시라고 하겠어요? 내가 시식 아줌마도 아닌데?”


“오… 나 드라마를 생방송으로 보는 거 처음입니다…”


“나도… 그나저나 상무님, 우리 2차는 언제쯤?”


“잠깐만, 그러니까 지금까지 정리해 보면 경미 씨가 지금 이 상황

드라마에서 헛물녀인 거야?”


“뭔 소리들 하세요. 진짜.”


“… 제가 오늘 회식에 갑자기 끼어들어 정말 죄송합니다만 저는 사실 오늘 이 아가씨 만나면 좀 따지려고 왔습니다. 의학계에서도 제대로 정의 못하는 화병, 상사병 이런 건 초장에 잡아야 하니까… 사람을 갖고 노나… 잘 만나 놓고는 국수도 얻어먹고는 내가 오백 원도 줬는데 떡하니 쪽지를 막아놨길래 사람이 그렇게 비겁하면 안 된다고 말하려고 온 겁니다. 일단은 본인의 실수를 바로 인정하니까 악감정은 좀 없어졌지만 뭐 그렇다고 그리 개운한 상태도 아니고… 경미 씨는 왜 이리 저한테 화가 났는지 모르겠지만 어떤 오해가 있었다면 죄송합니다. 그럼 저는 일단 외부인이고, 초대받은 사람도 아니니까 이쯤에서 가보겠습니다.”


“아 잠깐잠깐, 이 뭔 소린가. 섭섭하게… 남자 주인공이 이리 빨리 꺼지는 드라마가 어딨어! 자네 올 때는 제 발로 왔어도 갈 때는 그렇게 안되네. 자네는 오늘 밤 우리의 포로네. 그런 줄 알어. 야, 한 대리야. 니 사촌 딱 잡아라이.”


“네! 상무님!”


“이거 놔 봐라 좀.”


“안된다. 나는 월급쟁이라서 시키는 대로 해야 된다.”


“말을 하지를 말던가… 아우 냄새.”


“고기 처먹으면 마늘 필수라서 그렇다. 어쨌거나 잡고 있기도 귀찮고, 차 열쇠 내놔. 어차피 니 발로 왔어.”


남자가 갑자기 가볼 태세라 나도 끔쩍 놀랬다. 한 대리 잘한다. 꽉 잡아라. 가기는 어딜 간단 말이고. 니 아직도 내 핸드폰 번호 안 물었다이가. 



“코옹~~바아앝…. 매애눈…. 

아아아아네엑네에에야아아아아아아아, 베적삼이 어쩌고….”


늘 그렇듯 통째로 빌린 오래된 종로 뒷골목 건물 4층에 있는 오로라 단란주점은 은혜로운 기름집 회식에 홀 전체를 비우고 경미 씨의 사전 지시대로 각 테이블 세팅도 마친 상태로 우리를 맞는다. 상무가 부를 거면 초반에 부르고 치우라고 해서 오늘의 첫 가수는 한 대리다. 언젠가 반드시 칠갑산으로 워크샵이라도 가야 한다. 사람이 저렇게 한이 지면 큰 일 나니까…


“자자, 장 선생. 어여 한 잔 받으시게나. 집사람이 저번 주에 외래진료를 갔더니 장 선생 휴직했다 했다더구만. 어디 몸이 안 좋고 그런 건 아니지?”


언젠가 상무가 친아들 하고 전화를 하던 모습이 오버랩된다. 욕쟁이 할매가 보면 감동받을 고난도 욕랩을 발사하던 강인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던 그 사람이 아니다. 저렇게나 상냥한 경상도 아저씨는 처음 보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보드랍다.


“아닙니다. 한 일 년만 쉬면서 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리 되었습니다.”


“오… 하기사… 그 직업은 직업활동 외에 다른 걸 하기가 너무 힘들지. 아예 그렇게 쉬지 않는 다음에야… 그나저나 저 인간은 칠갑산에 대체 뭔 사연이고, 선산이 있나… 

왜 저리 저 산을 찾아쌌노…”


회식의 상감마마로써 저 자의 칠갑산 독주를 막아야 한다는 사명감이 갑자기 밀려든 상무가 노래책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아까 그 고깃집 상을 그대로 옮겨 온 양 내가 끼인 테이블은 여전히 상무, 안 부장, 경미 씨, 대만 씨, 한 대리가 구성원이다. 일단 좋은 점은 아까부터 나의 사생활이 궁금해 죽는 장호 씨, 성근 씨, 조 대리가 호기심은 일지만 어려운 상무 근처에는 못 와서 저 멀리서만 자꾸 눈으로 모스부호 보낸다는 것 정도… 직장 생활한 사람들은 다 공감할걸… 알고 보면 남자들이 더 말 많고, 소문 제조기고, 남의 일에 엄청 관심이라는 거…


“대부분 회식은 몇 차까지가 의무참석인 것이오?”


자꾸만 조선시대를 넘나드는 장 의원이 옆에서 은근히 물어왔다. 왜? 나 구출해서 따로 어디 데려가게? 그래 주면 좋겠는데…


“음.. 대중없소만… 이 회사는 거의 군대나 마찬가지라 마지막 차 까지 거의 잡혀 있는 게 대부분이지만 사실 저 회식의 상감님의 상태에 달렸소. 저분이 좀 빨리 취하시면 회식 또한 일찍 파하는 것이 규칙이랄까…”


“… 처자의 지금 상태는 어떻소? 취한 거요, 어떤 거요?”


남자가 나와 함께 하는 술자리가 처음이라 가늠이 안 되는 듯 물어온다.


“몇 잔 먹었지만 정신은 말짱하오.”


“처자 아부지가 꽤 술이 세신가 보오?”


“오… 우찌 알았소?”


“인간이 갖고 있는 대부분은 다 유전이라오.”


“술 센 것도 유전이라 말이오?”


“그렇소. 간이 유전이니까…”


장 선생은 덤덤히 말을 이어나가다가 예고도 없이 벌떡 일어나 어디론가 걸어갔다. 화장실 한 번 뜬금없이 간다고 생각하는 사이 (대부분은 그렇잖아. 여러 명 앉아 있는 자리에서 이탈할 때는 굳이 꼭 안 해도 될듯한 본인 화장실 왕래 보고를 옆 사람한테 하고 가는 것이 보통 예의라고 정의되어 있으니까 … 사실 나는 옆사람이 화장실 간다는 소리 안 하고 가도 전혀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는 쿨한 스타일이지만) 한 대리가 마음대로 시작한 두 번째 짜장면 타령을 한 두 소절 부르고 있는 게 귀에 들어왔다. 아뿔싸… 내가 오늘 정신이 딴 데 쏠려 본분을 잊고 있었네. 이미 회식의 상감님이 듣기 싫은 짜장면 타령에 내천자를 모으고 있다… 가차 없이 정지를 누르고 지금 한 3단계 취태를 보이는 경미 씨를 (그녀의 3차 취태의 시작은 먹는 거 가지고 장난치기가 일반적, 아까부터 휴지 말아서 사이사이에 팝콘 부어 부케랍시고 자꾸 이 사람 저 사람한테 핸드메이드 부케를 선물하고 있다. 청소해야 하는 주인아줌마가 보면 썩 기쁘지 않을 짓들이다.) 무대로 쫓아 보낼 그녀의 18번 심수봉의 ‘백만 송이…’를 얼른 꽂아준다. 팝콘 부케에 한껏 빠져 있던 그녀는 역시 익숙한 본인 18번 반주가 흘러나오자 그야말로 뭐에 홀린 듯 그녀가 심하게 엑스자 걸음을 취하면서 무대로 나간다. 일단 송 캔디를 무대로 쫓고 노래 끊겨 자리로 돌아온 한 대리 안 삐지게 얼른 맥주를 찰지게 따라 내민다. 삐질라고 내놓고 있던 입술 얼른 맥주에 빠뜨리게…


“우옷! 오이다.”


어디선가 오이가 가득 담긴 접시 하나가 테이블 위에 놓인다.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음식 만난 양 한 대리가 흥분하며 손을 뻗어오는데 접시를 놓은 손이 파리채 마냥 찰싹!  그의 손등을 때린다.


“술자리에서는 물 마시는 거보다 오이가 최고. 수시로 드시라요. 그리고 앞으로 회식할 때마다 오이 꼭 얻어와서 먹고…”


갑자기 이 남자랑 친하면 만수무강할 것 같다. 욕심난다. 

희한하지… 한참 팔팔할 나이에 청춘을 사리지 않고 심히 피곤하게 사는 중인데도 수명 욕심을 내는 것은 인간의 본능인가…


“… 이 지옥불에서 처자랑 둘이만 나가고자 하면 내 어찌해야 하오? 뭐 어차피 저들도 다 아는 우리 사이, 이제 같이 나가 보겠다고 그냥 지르고 나가면 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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