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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lle Jun 03. 2024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은 호기심…

(6)

장 대만 씨…


일주일 전 야밤에 강남 한복판에서 나랑 국수 먹은 그 남자… 그런데, 분명히 만만했었는데… 다시 보니 왜 안 만만하지?


분명히 그랬다. 나는 남자가 연락하지 않아 궁금했고 기다렸는데… 그래서 이 남자가 곧 등장할 거라는 걸 알았을 때부터 어쩌면 많은 인사말을 준비했는데… 그냥 흔하게 잘 지냈냐고 물었으면 좋았을걸.


“장 대만 씨, 남의 회식 자리엔 웬일이래요?”


지금 돌이켜 보아도,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간대도… 촌스러운 나는 꼴랑 저 말 밖에는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고, 장 선생!!! 이리로 와!! 내가 뜨뜻하게 지져놨지. 여기로 앉으시게나. 병원은 왜 쉬는 거야, 너무 힘들어서? 하긴… 우리 장선생이 얼마나 막중했나. 지칠 땐 좀 쉬기도 하고 그래야지. 잘했어, 잘했어. 내일 수술 있어 못 마십니다. 이런 소리 오늘은 못하겠구먼. 우리 마누라도 어찌나 장 선생 이야기를 많이 하는지… 한 번 집에 초대하고 싶다는데 내가 바쁜 사람 부담 주지 말라 말렸었구만 이제 우리 집에도 한 번 와줄 수 있겠나.”


“여부가 있겠습니까. 좋은 술 하나 뽑아 뵈러 가겠습니다!”


“사람 참 언제나 시원시원하다니까. 그럼 내 집사람이랑 의논해서 연락하겠네. 저기, 한 대리야. 우리 선생님 오셨는데 토시살이랑 육회 한 사라랑…”


“상무님, 웬만하면 고기는 익혀 드시죠.”


“아, 그래? 저기 뭐꼬, 육회 취소하고 치마살이랑 생등심이랑 이렇게 저렇게 좀 섞어서 시키 봐라!…


그나저나 우리 김 대리하고는 우찌 아는 사이고?”


보니까 신기하게 상무도 장 선생을 좀 어려워하는 것 같다. 건강을 맡기는 의사 선생은 아무래도 신 다음 급쯤 되나 보다. 경상도 아저씨 무뚝뚝하다고 누가 그랬는지? 사람은 누구나 상냥한 자아 하나쯤은 숨겨두고 사는 법이다. 


생식 선생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뭔 수술을 하는 의사 선생인갑다. 솔직히 말해서 매력이 배가 되는 순간이지 뭔가. 똑똑한 남자는 항상 매력적이다. 게다가 내 생명연장이라던가 보건에 도움이 된다면 더욱…  갑자기 이 남자랑 친해지면 물어보고 싶은 건강 우려 사항이 한 열두 가지 생각나는 참이다.


“아… 

제가 김 대리님 이 년 가까이 쭉 지켜보다가… 가만 보니 하루에 한 번 웃는 게 이 여인 때문이더라고요. 

그래서 얼마 전에 만났었습니다.”


장 대만은 상무의 질문에 아무렇지 않은 듯 꽃등심을 계속 구우면서 대답했다. 


“쭉 지켜보다이? 어데서? 장 선생 스토커가? 스토커 하기에는 너무 바쁜 몸 아이가?”


“상무님.. 오데예.

이 아가씨가 유니텔에서 채팅방 방장이라예. 


살다가 이렇게 말 웃기게 하는 여자 처음 봐서 어느 날부터 꼭 한 번 보고 싶다…  생각하다가 저번 주에 눈 같지 않은 눈이 오더라고요. 눈이 오면 사람들은 대부분 싱숭생숭하거나 심심하지요.

이심전심… 둘 다 심심해서 한 번 만나 밥 먹었습니다.”


“오… 그런 것도 있나. 마 그렇게 만나면 얼굴은 서로 모르고 만나는기네?”


“한 2년 동안 얼굴만 모르고 대충 성격은 봤지요. 욕심나더라고요. 단독으로 모셔놓고 웃고 싶다…”


“오… 요즘 사람들 신기하네.

그렇게도 만나는구만. 어쨌거나 우리 김 대리 웃긴 거야 인정.

저번에 김 대리 본사 들어간 며칠 어찌나 지루하던지… 그래서 내가 지금 하는 시스템 곁다리 보조 시스템도 주문했잖아. 우리 김 대리 끼워서 사는 조건으로다가. 으하하하. 나는 막 아침에 김 대리 등장하면 김 대리가 멀쩡해도 웃긴다니까. 으하하하.”


이 인간들이… 

듣자 듣자 하니… 이기 지금 칭찬이가 멕이는기가… 

만나고 연락 한 번 없었던 저 무매너 의원이나 내 상 갑 상무나 한마디로 내가 지금 웃긴 여자라 이거지? 특히나 저 의원 놈은 첫 만남에 나더러 재미있게 생겼다는 둥 듣도 보도 못한 욕을 하더니… 끝까지 매력적이라던가 예쁘다던가 흔해빠진… 

그래 솔직히 예쁘다가 차마 안 나오면 거 왜 있잖아. 그럴 때 쓰라고 존재하는 귀한 단어. ‘귀엽다’라던가… 근데 이 인간들이 나를 앞에 두고 3분간 나에 대해 토론하며 결론은 내가 웃긴 여자란다. 


“오홍홍,

맞아용 김 대리님 재밌어용. 

저어번에요, 왜 한 달 전쯤 회식에서요 키키키. 

한 대리님이 3차 포장마차 나와서 또 배고프시다고 해서 회계팀 조 대리까지 해서 넷이서 어묵 먹었거든요? 근데 한 대리님이 자꾸만 김 대리님한테 대로변에서 같이 젝키 커플 한 번만 부르자고 조르다가 김 대리님이 폭발해서 한 대리님 뺨 때렸어요. 어묵으로… 키키키키. 그거 진짜 웃겼는데.”


“태어나서 어묵으로는 처음 맞아봤는데, 정신이 확 들더라고요. 넓적한 것이 뭐가 날아와서 볼에 촤악 붙는데… 하여간 우리 김 대리 창의적이에요.”


어느새 화장실 간 안 부장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등심 와서 찬밥 된 차돌을 연신 집어 먹던 한 대리가 거든다. 


아까보다 용용 거리면서 발음이 어려지고 있는 경미 씨가 어느새 내 옆자리를 비집고 앉았다. 이 여인은 원래 술을 한 잔 한 잔 먹을수록 말투가 급격히 어려지는 희귀병이 있다. 원래 그 자리에 있던 장호 씨를 무 솎듯 뽑아내고… 

상무 앞자리에 앉아 고기를 콧구멍으로 먹고 있던 장호 씨도 해방감을 감추지 못하며 자연스럽게 경미 씨의 원래 자리로 가서 구멍을 막는다. 내가 이 여자가 이 자리로 올지 몰랐다면 아이큐 한 자리겠지… 원래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고 이오공감 중 오를 담당하는 오빠가 말했었지.


그리고 오자마자 은근 먹인다.

내가 진짜 술기운에 이성을 살짝 잃고 한 대리의 되지도 않는 어거지를 못 참아 어묵 싸대기 날린 그 사건을 지금 굳이 장 선생 앞에서 웃기다며 말해야 하는지?


“잘했네요 뭐, 술 먹고 헛소리하는 건 어느 정도의 물리적인 제재가 있어야 순간적으로 정신이 돌아오는 법. 우리 김 대리님 적절하게 솔루션도 좋구만.”


이 와중에 다행스럽다. 장 선생이 이 경상도 에미나이 우악스럽다 안 하고 그 마저도 좋게 봐주는 듯하다.


“흥! 그나저나… 장 선생님 실망이에용. 아까 낮에 제가 전화했을 때 그렇게 쌀쌀맞게 받기 있나용? 저 마음에 스크래치 났어용… 알고 보니 우리 모르는 사이도 아님서… 힝…”


아니 가만있어도 일단 외모 최상이라 가진 자의 여유쯤 가져도 될 법 한데 저 여인이 오늘 제대로 작정했다. 목소리가 어려지다 못해 곧 옹알이 랩 예정이다… 근데 뭐? 모르는 사이 아니라고?? 이건 또 뭔 소리. 저것들이 전에 소개팅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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