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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즐넛커피 Jul 29. 2023

그림 같은 엄마의 정원

당신은 기억나는 엄마와의 추억이 있나요

  살다 보면 옛 추억이 가끔 떠오를 때가 있다. 그것도 아무 이유 없이 문득 떠오를 때가 있는데 그렇게 떠오른 추억에 가끔 잠겨서 알 수 없는 뭉근한 감정 속에 빠져있곤 한다. 여러 종류의 추억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에게 가끔씩 떠오르는 대표적인 추억 중 하나는 '엄마와의 추억'이다. 지금은 아직까지 자주 연락드리거나 챙겨드리지는 않는 생각보다 살갑지 않은 자식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엄마생각은 왜 이렇게 가끔씩 내 머릿속에 나타나는지 신기하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엄마랑 함께 했던 순간이 가장 따뜻하고 잊기 싫은 기억이어서 그럴 것이다.  


  초등학교 때 갑자기 비가 오면 학교 앞으로 우산을 든 어머니들이 많이 나타났다.  우산을 가져가지 않은 자식 걱정에  시간 맞춰 우리 아이 비 맞을까 싶어  다들 챙겨 오셨었다. 학교수업이 끝나고 하교가 시작되면  어머니들의 걱정과 달리 아이들은 씩씩하게 교문을 나선다. 오히려 우리 아이 찾기에 바쁜 어머니들이 더 정신없어 보였다. 예상을 했든 안 했든 갑자기 엄마를 만난 아이는  신나서 뛰어가 엄마 품에 안긴다. 나는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봐야만 했다. 우리 엄마는 비가 와도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때는 우리 엄마는 날 아끼지 않는 건가 하는 잡념도 했지만  그럴리는 없었을 것이다.  집이 멀지 않아서일까  이 정도는 맞고와도 된다고 생각하셔서일까 알 수 없다. 풀리지 않았지만 꼭 풀 필요도 없는 의문이다. 이후로도 쭉 나는 엄마가 강하게 키우기 위해서 그랬다고 혼자 답을 내렸다. 그런 상황이 익숙했었던 나는 비를 잘 맞고 집까지 씩씩하게 돌아갔던 것 같다.


  어렸을 때 우리 집은 가난했었다. 흙수저의 표본에 가까운 모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주 어렸을 때 연립주택에 살면서 건물 사이 주차장 마당에서 놀 수 있었다.  일반 주택으로 세 들어살 때는 집 마당 밖을 거의 나가지 않았던 거 같다. 초등학교도 지나 거의 학창 시절 대부분 기간 동안 아빠는 얼굴 보기 힘들 정도로 몇 시간 주무시고 일 나가기 바쁘셨다. 엄마는 부업으로 동네 아주머니들하고 손목시계 줄 끼는 일도 하셨던 거 같다. 몇 가지 부업을 하셨던 거 같은데 어렸을 때라 잘 기억나진 않지만  힘들게 일해서 조금씩 돈을 벌어 살림에 보태려는 엄마 옆에 붙어 있다 보니 가끔 과자를 얻어먹을 때가 있었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부업으로 버는 돈이 큰돈도 아니셨을 텐데  과자 사는데 들어가는 돈이 부담스럽지  않은 게 아니라 나랑 못 놀아주는 것을 과자로라도 대신 달래주셨던 거 같다. 


그런 시절에  부모님 모두 취미생활 따위는 당연히 없었다. 그냥 치열하게 하루하루 버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내가 봐도 그렇다. 가끔  운동한다 치면  엄마랑 나는 가까운 초등학교 운동장을 나가  몇 바퀴씩 걷다가 들어오곤 했다. 시간이 한참 흘러 내가 크고 대학생이 되어도 어렸을 때만큼은 못하지만 가끔 시간이 나면 그렇게 집에서 가까운 공원을 걷곤 했다. 어릴 때나 커서나 엄마랑 시간도 보내고 걷는 내내 대화도 많이 할 수 있어 운동 이상의 즐거운 시간으로 기억된다. 전원주택이나 정원 딸린 저택에 살아본 적 없고 살 수도 없는 우리 집이다. 하지만 이런 우리 엄마의 정원은 바로 동네 곳곳의  풀나무 들이다.


남한산성 산책 중 성곽 아래를 궁금해하는 엄마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내가 군대도 다녀온 이후부터 우리 엄마는 특별한 취미가 생겼었다.  그것은 '압화'이다.  꽃, 나무, 풀  등을 자연에서 채취하고 그것들을 잘 말려서  그림의 재료로 활용하는 것이다.  자연에서 유래한 말린 풀 등이 바로 재료가 되는 것이다. 특별한 풍경이나 그림들을 밑그림 삼아  말린 꽃이나 풀들을 위에 붙여서 풍경화 같은 그림을 완성하는 과정이다. 일단 재료가 되는 풀이나 꽃들을 모으려면 파는 것도 있지만 재료비를 아끼려면 직접 발품을 팔아 모으면 된다.  동네 공원 산책로 주변,  한강 둔치 등등 운동삼아  재료도 모을 겸  산책을 할 때  따라다니면서 같이 풀도 주워보고 했다.  그냥 잡초도 좋다.  엄마는 바람 쐬고 풀도 모으는 재미에 빠지셨다. 아주 건강하고 좋은 취미이다.


 '근데 이게 작품이 된다고?'


나는 그냥 흔히 지나치는 풀들, 이름도 모르는 잡초나 꽃 들, 가끔은 다 떨어진 나무줄기 껍데기들을 주워 모으면서도 상상이 잘 안 됐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걸로 작품을 만들지 하는 의문이 들었으나 작업하는 모습까지 보진 않았어서 처음엔 그저 즐거우시면 그만이지 하는 생각으로 특별함은 없어 보이지만 엄마가 빠져있는 취미가 있는 것에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엄마의 작품 중에

  나중에 완성된 것을 몇 개 보았을 때는 깜짝 놀랐다.  어느 사진을 밑바탕으로 만드셨는지 모르겠지만 초보 치고는 그럴싸한 작품이 만들어져 있다. 액자까지 만들어놓으니 상당히 작품 같다.  이렇게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발품을 팔고 풀잎 하나하나 놓으며 정성을 쏟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티 내지 않았지만 울컥했다.  작품에게 고마워해야 할 거 같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들어보니 압화를  배우는 곳도 있고 그곳을 통해서 대회도 있어 출품하고 상을 타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출품작 앞에서 행복한 엄마

  시간이 더 지나 전남 구례에서 여는 전국단위 압화 대회가 있어 작품을 제출하고 큰 상은 못 받았으나 입선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궁금해하는 엄마하고 직접 가보기로 했다. 그곳에는 어마어마한 작품들이 많았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그런 작품들이 많았다. 솜씨 좋은 분들이 참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액자 크기가 그리 크지 않지만 그래도 당당히 한 구석에 저렇게 엄마의 작품이 걸려있어서  너무도 기뻤다.   오랜 세월 동안  특별한 취미도 없고 사람들하고 크게 어울리거나 돋보일 일 없던 엄마이다. 엄마가 찾은 취미로 인해서  엄마가 신체적인 건강 외에 정신적으로 행복감을 느끼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그 기회에 너무 감사하고 기뻤다. 압화가 끝이 아니라 이렇게 또 다른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취미를 이어나가시길 바란다.


 내가 어렸을 때 나는 잘못하는 게 있으면  엄마에게 호되게 혼났다.  손에 잡히는 것이 있으면 빗자루건 뭐건 상관없이 매질을 받기도 했다. 글쎄 그게 요새 시각에서 보면 아동학대일지 모르겠으나 나는 오히려 그런 것에 나쁜 기억이 나트라우마는 전혀 없다.   다 커서 그게 언제인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압화를 한창 하시던 시기쯤이었던 거 같은데 한참 대화를 하다 보니 엄마가 그랬다.


"어렸을 때 살기 바쁘고 여유는 없었을 그 시절에  다른 건 할 줄도 모르고 그랬지.   그때는 너희가 말을 안 들으면 엄마도 그렇게 화가 나고 어쩔 줄 몰랐던 거 같아.  그때 엄마가 우울증이었던 거 같아. 그저 힘든데 그런 상태로 그렇게 너희들 혼내고 심하게 그랬네...     엄마가 미안해...!"


너무 가슴 아펐고 듣는 내가 힘들었고 미안했다. 그 시절 요새 그 흔한 공황장애나 우울증이란 말도 잘 모르던 시절에 엄마는 스스로 우울증을 진단하고 견디어 낸 것이다. 엄마의 아픔을 몰라서 미안하고 그 어려웠던 시절에 힘들었을 엄마를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해외여행도 한번 못 가보셨고 그 시절 다른 사람들은 자전거 타기, 테니스, 수영 등 다양한 취미생활을 하는 게 이상하지 않았지만 못 하고 살았던 엄마, 시간이 지났지만 '압화'라는 취미는 그런 엄마를 나 대신 달래준거 같다.   평생  희생의 아이콘으로 살던 엄마가 딱 한번 인생의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다. 이후에 몇 번 저런 말씀을 하실 때마다 나는 단호하게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했다.  미안할 필요 없으니까.  살다가 운이 좋아 돈을 많이 모으던가 하면 엄마의 정원을 그림이 아닌 실제로 만들어 드리고 싶다.



                          - 2023.07 옛 사진을 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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