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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즐넛커피 Jul 23. 2023

비행기를 날려보자

콜라와 고무동력기의 따뜻한 추억

Photo by Oxana v on Unsplash

  최근에  '놀면뭐하니'라는 예능 프로그램의 '영업사원'편을 보다가 옛 추억이 소환되었다.  이번 편은  폐업을 준비하는 동네 문방구의 물건들을 출연자들이 직접 영업사원처럼  가게 구석에 있는 것까지 끌어모아 발품을 팔고 팔아주는 내용이다.  내용 중에 내가 어렸을 때 의미 있게 갖고 만들었던 장난감 아닌 장난감이 보였다. 그것은 바로 고무동력기이다.

출처 : 유투브 채널 '엠뚜르마뚜루'  화면 캡쳐

바구니에 담겨있는 게 고무동력기 상자들이다. 그것들을 보니 어릴  적 추억이 하나 떠오른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매년 5월이면 '과학의 달'이라고 해서 다양한 행사가 있었다.  학교마다 다를 순 있지만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대표적으로  '과학상자'라는 조립식 장난감 비슷한 것을 이용해  다양한 것을 만드는 대회가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대화가 바로 모형비행기이다.  크게 고무동력기를 만들어서 날리는 대회와 글라이더라고 고무줄 같은 동력 보조 없이 바람을 이용해서 날리는 조립식 비행기 대회가 있었다. 그중에서 내가 참가한 대회는 '고무동력기 날리기'대회였다.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린 나이에 장난감이 많던 집도 아니고 당연히 모형비행기 같은 걸 만져본 적이 없는 아이였다. 당시 친구는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데 조립을 하고 태엽을 감으면 움직이기까지 하는 고가의 조립식 장난감도 갖고 있어서 매우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 집에 꽤나 오래 있던 장난감은 다른 집에서 버린 종류가 막 섞여있는 정체불명의 레고 장난감이 다였다.


어쨌든  내가 대회 참가하기로 했고 반에서도 거의 다 참가하는 분위기여서  경쟁이 대단했다.  고무동력기는 동네 문방구에서 쉽게 구입이 가능한 흔한 장난감이다.  검색해 보니 지금도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만원도 안 하는 저렴한 가격에 판매가 되고 있다. 처음 구입하고 만들어야 하는데 상자를 열면 커다란 종이 도면이 나온다.  당황스러웠고 간단한 공구를 써야 하는 상황에서 당연히 혼자 만들 수가 없었다.  역시 아빠 찬스를 쓸 수밖에 없었다.  아빠라고 만들어봤을 리 없고 평소에는 잘 계시지도 않는 아빠지만 대회준비로 시간을 내서비행기를 만들기 시작하셨다.  아빠는 집안일도 모두 사람 부르는 일 없이 배관문제,  전기문제 등 거의 모든 집안일은 직접 맨손으로 뚝딱뚝딱 해치우셨던 분이다. 고무동력기를 만들고 나서 학교에 갖고 가서 대회에 참가했다.  당시 아무 다른 도구도 없고 경험도 없으니 열심히 비행기 앞에 약한 플라스틱 프로펠러를 손으로 열심히 감아서 날렸다. 결과는 1등이다.  아빠의 맥가이버 저리 가라 수준의 손기술이 기적을 만들었다.


  여기서부터 크게 기대하지도 않았던 긴 여정이 시작됐다. 반에서 1등으로 통과하고 학년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이때는  다른 비행기를 준비하는 것은 아니고 갖고 있는 것으로 다시 참가를 했는데 여기서도 1등이 되었다.  학년 대회를 통과하고 학교 대표를 뽑는 대회가 있었다. 아마 기억에 그 대회까지가 같은 비행기로 나갔던 것 같다.  결과는 또 1등.  계속 통과하는 게 기분이 좋기보다 얼떨떨했다. 대회가 계속될지 예측도 못했고 1등을 계속하는 게 뭐지 싶은 그런 느낌이었다.  초등학생 6학년까지 전부 제치고 이제 학교 대표가 되고부터는 다른 분위기가 되었다. 학교 대표로 이후에 출전한 대회는 구청대회이다.  구에서 모든 학교 대표들이 모여서 하는 대회이다.  이때부터 고무동력기는 누가 만들어주는 것으로 하는 게 아니다.  내가 직접 만들어서 대회에 참가하는 것이고 그것도 미리 만들어 놓는 것이 아니다.  대회장에 내가 쓸 간단한 공구만 지참하고 고무동력기 재료는 현장에서 지급받았다.  만드는 시간도 2시간 제한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연히 그동안 나처럼 운 좋게 아빠 찬스로 올라온 친구들이 많았지만  이때부터 진짜 실력 겨루기가 된 것이다.


  대회 일정을 미리 알고 있기 때문에  그때부터 나는 직접 사다가 직접 만들어 날리는 연습을 했다.  쉽지 않았고 시작은 매우 어설펐다. 아빠처럼 만들 수도 없었고 제한 시간 지키는 것조차 어려웠다.  다 만든 상태에서 가볍게 날려보아도 잘 날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고 노력한 끝에 점점 제한 시간 안에 좀 더 안정적인 고무동력기를 만들 수 있었다.   결국 구청대회에서도 통과해서 교육청 대회에 올라가고 또 통과했다. 이 때는 예상치 못한 높은 대회에서 통과하는 게 어리둥절하면서도 직접 만들어서 통과하는 기분이 너무 좋았고 달게 느껴졌다. 나중에 한 생각이지만 아빠를 닮아서 내가 손재주가 있나 보다 하는 생각도 들었다.


교육청대회 다음으로 기다리는 것은 서울시 대회였다. 여의도 근처 학교로 갔었고 대회 시작도 전부터 나는 나의 운이 여기까지고 이번 대회 탈락임을 예상했다.  택시를 타고 갔던 것 같은데 학교에 도착하는 시간이 늦었다. 다행인 건 많이 차이가 안 나서인지  출입을 막진 않았던 것이다.  학교로 먼저 가는 것은 대회에 쓸 고무동력기 조립을 하기 위해서다. 실제 비행기를 날리는 것은 여의도 공원이었다.  학교에 급하게 도착하고 간신히 교실을 찾아 도착했을 때 이미 대부분 아이들이 벌써 만들기를 시작한 때였다. 교실에 늦게 들어가니 당시 감독관 비슷한 선생님이 놀라시면서 갖고 있는  고무동력기 재료를 주셨다. 늦게 도착한 것만으로도 마음이 급하고 긴장감이 확 올라가 있었는데 문제는 재료였다.  상자를 열어 도면을 꺼내고 비행기 몸체가 되는 나무 막대를 꺼냈는데 막대가 상한 것같이 색도 어둡고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이 상태가 평소와는 달라 보였다. 불량이 의심되지만 재료 탓하기엔 시간이 너무도 촉박하기 때문에 그대로 만들기를 시작했다,  당연히 잘 될 리도 없고 내가 봐도 그동안 만들어 온 중에 상태가 최악이었다.  


고무동력기 만들기는 제한 시간과 함께 마무리되었고 여의도 공원으로 단체로 이동했다.  한강변이라 바람이 제법 강했다. 자칫 바람만 잘못 타도 망할 수 있는 조건이다.  다른 사람부터 한 명씩 날리기가 시작되었다.  역시 각 학교를 넘어서 지역 대표로 온 사람들이라  날렸다 하면 몇십 분은 기본인 사람들이 많았다. 참고로 교육청 대회정도부터는 바람만 잘 타면 비행기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로 점점 날아가 시야에서 사라져 버릴 정도로 이별하는 경우가 생긴다. 시간 측정 불가이고 그런 사람은 당연히 통과다.  서울시 대회에서도 대단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런 사람들의 기록에 마냥 빠져있을 순 없었다. 내 차례가 되고  나름 신경 써서 날린다고 날렸지만  채 몇 분도 못 날고 바로 고꾸라졌다.  예상했지만 슬펐다. 많은 대회를 거쳤지만 거의 가장 형편없는 처음 대회 수준으로 마지막 대회를 마무리했다. 결과를 기다릴 필요도 없이 그렇게 대회장을 나왔다.  


엄마는 어린아이가 상심했을까 봐 걱정이셨나 보다.  평소 같으면 과자나 콜라 같은 거 못 먹게 하는 엄마가  그날은 콜라를 사주셨다.  대회가 끝나고 한강 둔치에 앉아서  쉬다 보니 노을도 살짝  지기 시작했다.  엄마랑 단 둘이 앉아서  엄마가 사주신 콜라를 마셨다. 평소 잘 먹지도 못하는 맛있는 콜라였지만 그날은 맛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히 콜라는 지금이나 그 때나 달 것이고 어릴 때이니 그때가 더 맛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날 대회에서 탈락되는 씁쓸함이 단맛을 지웠다. 기억은 그래도 따스하게 노을처럼 남아있다.  한강 둔치의 바람은 시원했고 엄마가 사준 맛있는 콜라 하나는  첫 인생의 씁쓸함을 따뜻한 기억으로 남게 해 주었다.  엄마께서 말하셨던 내용들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옆에서 계속 괜찮다고 하셨던 것 같다.   그래 괜찮지. 언제까지 대회가 계속 됐을 리도 없고  나 혼자 왔다면 슬픔이 더 감당이 안 됐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괜찮아. 어려울 때도 있는 거고 내 힘으로 안 되는 것도 있는 거지.  다음에 잘하면 돼."


하고  마음이 다치지 않고 나도 좋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서  그 기억과 경험이 소중하게 계속 남아 있는 것 같고 고맙게 여겨졌다. 아빠가 비행기 만들어주는 것도 좋았고, 엄마랑 대회 참가하려고 같이 다니는 것도 좋았다. 이런 추억이 떠오를 때면 심지어 지금 내가 힘든 게 아니어도 어릴 적 그 따뜻했던 순간으로 돌아가보고 싶기도 하다. 시간이 나면 고무동력기 하나 잘 만들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출처 : 스페이스챌린지 홍보영상 캡쳐

  방송을 보다 우연히 소환된 추억을 회상하다가  고무동력기를 검색해 보았다.  요즘에도 학교에서 이런 대회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팔고 있는 것이 많았고 예전에도 인기 많던 모델들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된  '스페이스 챌린지'가 있다.  소개를 보면 공군 홍보와 항공 우주에 대한 국민 관심 증대를 목표로 '공군참모총장배 모형항공기대회'라는 이름으로 1979년 시작되어 2008년에 정확한 이름으로는 '공군참모총장배 스페이스챌린지'로 변경된 것이다.  매년 열리다가 코로나로 잠시 중단 됐었고  올해 4월에 4년 만에 개최가 되었다고 한다.  예선에는  전국 12개 지역 초중고 학생들 3천여 명이 참가하고 본선에서는 5개 종목(고무동력기/글라이더/물로켓/폼보드 전동비행기/드론 조종) 1300여 명이 참가했다. 결과에 따라 공군참모총장상 등이 수여가 된다. 행사에는 대회 외에도 VR체험, 공군 특수비행팀인 블랙이글스의 비행공연, 군악대 축하공연도 볼 수 있어서 아주 좋은 체험학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 부모님들과도 함께하고 좋은 추억도 될 것 같아서 이런 대회에 참가해 보는 것을 독자분들께 추천드립니다. )



              - 2023.07  고무동력기 대회를 추억하며




※참고

스페이스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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