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이즐넛커피 Nov 19. 2023

인연이 보이는 것이라면

너무  답을 찾지 말자

Photo by Holger Woizick on Unsplash


  오랜 동기 녀석에게서 연락이 자주 온다.  그 녀석의 고민은 옛 여자친구를 잊지 못하는 것이다.  인생살이의 흔한 모습 중 하나로 누구나 한 번쯤 있었을 만한 장면이다. 이 녀석은  연애 경험이 많지는 않아도 신기하게 언젠가부터는  잊을만하면 누군가와 새로 시작하곤 했다. 몇 명을 만나고  그 와중에 결혼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가 있고 직업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기 때문에 이 또한 이상할리 없다.  어느 연인이나 연애기간이 길어지면 지속할지 결혼이라는 매듭을 지을지 아니면 이별이라는 매듭을 짓게 될지 결정하는 순간이 온다. 그것이 원하든 원치 않든 말이다.  


불현듯 만나 결혼까지 짧게 가는 인연이 있고  오래 지속해 왔지만 별거 아닌 이유로 또는 해결하지 못했던 고질적인 문제로 이별을 결정하는 인연도 있다.  어떤 시험을 칠 때 문제를 보면 우리가 답을 알든 모르든 답을 정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인생은 시험의 연속인 거 같은데 더 어려운 건 답이 없다. 각자의 환경에서 최고의 답은 다 다를 수 있겠지만 당연히 누가 콕 집어주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 선후배와 같은 지인들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 안에서 비슷한 정답을 찾기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동기 녀석의 질문은 이런 것들이다.

1. 나를 그 자체로 받아줄 수 있는가.
2. 우리 가족들과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인가.

뭔가 기준 자체로 보면 나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것도  보는 이에 따라서 다른 자잘한 조건들 제외하고도 너무 자기 위주의 기준들이 아닌가 약간 갸우뚱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어차피 결혼이라면 자기 자신의 기준도  중요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녀석이 최근 깊은 실의에 빠졌다. 최근까지 만나던 여자친구에게 간이 걸렸지만 자기와 맞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러 결국 이별을 했기 때문이다. 사실 결론을 내기에 시간이 걸렸을 뿐이고 인연을 끊어내기가 어려웠지 결말을 예상한 지는 꽤 오래전이다.  상대방도 나름의 사정 때문에 이 친구가 매몰차게 이별을 하기에는 또 그놈의 정 때문에 시간이 길어진 것도 있다.  이런 과정을 옆에서 듣고 있자면 참 안타깝기 그지없다. 둘의 사정과 생각이 이해가 가면서도 각자 입장에서 최선이 이별이라면 결국  아픈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는 이해되지 않던 말이 '사랑하니까 헤어진다.'였다. 사실 비겁해 보였다. 결국 포용이나 포기하지 못해 일어난 결과를 좋은 감정으로 덮어 아픔을 최소화하려는 마지막 발악의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다 보니 좀 더 포기에 대한 필요도 알게 되었고 배려가 항상 선행되지만 않는 것도 알기에  저런 말이 어쩔 수 없이 나오는  가장 소극적이지만 적극적인 노력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런 어쩔 수 없어도 겪을 수밖에 없는 아픔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친구 녀석은  과거 만났던 다른 여자친구가 대부분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지만 위의 2 질문 중 두 번째 문제로 이별을 해야 했던 경험이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그녀와 같은 사람은 만날 수가 없는 것이다.  누가 볼 땐 잊지 못하는 그녀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이 굉장히 그의 발목을 잡고 문제가 될만한 태도일  것이다. 어쨌든 더 개입하지 않고 그 녀석 입장에서 얼마나 큰 무게의 짐이고 숙제일까. 이렇게 누군가에게 정착하지 못하고 시간이 흐를 때 인생이 표류하는 그 느낌은 상당히 불쾌하고 불안할 것이다. 과거의 그녀가 인연이었을지 모르지만 현실의 본인 잣대에 맞지 않는다고 끊어낸 것이 맞는 것인가.  본인의 기준까지 충족하지 못하면 그 자체로 인연이 아니라고 치부되어 버리기 쉽다. 그럼 아직 인연을 만나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무언가 하나만 바뀌었어도 인연은 만났을 것이다.  이렇게 복잡하고 보이지 않는 것이 인연이다.


이 글의 처음 사진이  참 재밌어서 골라보았다. 같은 곳에서 같은 위치에서 심지어 같은 도구로 서로를 바라보지만 바라보는 방향만 달라도 완전히 기대한 것과 다른 것을 보게 된다.  인연을 찾는 것은 바로 우리의 눈과 머리이다. 인연이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이런 모든 상황을 원하는 대로 바꿔가기 더 쉬울까. 2차원에서 3차원을, 3차원에서 4차원의 세계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처럼 인연은 공존하지만 찾기 어려운 다른 차원의 무엇인가  일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선명한 기준을 만들고 답을 찾는데 우리는 익숙해져 있다. 인연이 보이는 것이라면 그렇게 찾아갈 수 있고 누구에게나 쉬운 문제였을 것이다. 가끔 우리는 답을 찾으려는 노력을 줄일 필요가 있다. 그럴 때 새로운 시야가 생기고 인연은 더 선명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 2023.11 겨울 앞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