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던 자취방으로 일을 마치고 돌아갈 때 골목을 지나가게 된다. 골목 사이사이 작은 식당들과 술집, 한 켠에 필요할 때마다 자주 들렀던 편의점까지 부족함이 없다.
어렸을 때, 그러니까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 유치원 시절 차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주택가 골목에 우리 가족은 세 들어 살았었다. 아주 작은 마당이 있었고 항상 같이 놀지 않았지만 강아지도 한 마리 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물린 기억이 선명하기 때문이다. 강아지라는 존재가 겁도 났지만 동시에 귀여움 때문에 쓰다듬기를 무한대로 하던 중에 갑자기 돌변한 강아지가 내 손가락을 물었다. 다행히 큰 송곳니 사이로 아이의 작은 손가락이 쏙 들어가 버리는 바람에 큰 탈은 없었다. 어렸을 때 인생에서 마주한 커다란 배신감 중 하나였다.
아파트와 다르게 이런 주택가에서 저녁시간에 나는 밥 짓는 냄새는 뭔가 더 사람 사는 냄새 같고 푸근하다. 어릴 때와 마찬가지로 자취방으로 가는 그 골목에 접어들면 내 마음도 편안해지면서 온몸의 긴장이 풀어졌다. 특히나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또 있다. 나의 자취방은 같이 일하는 동기들에게 '호텔'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었다.
금전적인 여유가 별로 없던 시절에 늦은 공부를 마치고 뒤늦게 일을 하기 시작했다. 집에 손벌릴 처지도 아니고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어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보증금과 월세를 낼 수 있는 직장에서 가까운 곳으로 작은 방을 얻었었다. 다행히 신축이었지만 역시나 방음도 잘 되지 않는 그런 집이었다. 처음 방을 보러 갔을 때, 벽 두 면에 큰 창이 있고 낮에 간 터라 해가 너무 잘 들고 있어서 아늑하고 따뜻해 보였다.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내 선택에 문제가 있었던걸 알 수 있었다. 일을 하다 보니 그 따사로운 햇살이 들어오는 낮 시간은 내가 전혀 있지 않는 누릴 수 없는 장점이었던 것이다. 일의 특성상 당직이 있고 늦게 끝나는 경우도 많아서 막상 일이 끝나고 당직실 침대에 엉덩이를 붙이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등은 말할새 없이 등도 붙게 된다. 결국 잠이 들어버리면 그대로 다음날 일과를 시작하기가 매우 잦았다. '호텔'이라고 별명이 붙은 이유는 직장에서 도보로 15분 남짓 걸리는 50만 원도 안 하는 월세방에 한 달에 손에 꼽을 정도로 들어가기에 가성비가 '호텔'이라는 것이다. 전혀 사치 부린 게 아닌데 마치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호텔에 사는 것 같은 착각마저 하게 될 정도였다.
그렇게 치열하게 하루가 지나가고 굳은 마음을 먹고 저녁에 터덜터덜 걸어서 가다 보면 분홍빛과 보랏빛으로 물든 노을이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가게 된다. 흐리멍덩한 정신에 피곤한 몸이었지만 잠시 머물고 노을을 감상하는 맛이 아주 좋다. 이 '호텔'의 방값엔 노을뷰가 포함인가 보다. 골목이 좁고 방에 도달하기 마지막 코스인 이 골목은 살짝 언덕이 있다.
이것만 넘으면 나의 '호텔'이 나온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일과의 끝이자 휴식과 행복의 시작인 셈이다.
그래서 이 마지막 작은 언덕이 너무 마음에 들고 오래전 지내던 동네이지만 잊을 수가 없다. 특히 저런 노을은 아직도 다시 볼 수가 없다.
언제 다시 가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난다면 '호텔'방 골목을 다시 한번 가봐야겠다. 지금도 그 골목, 그 노을은 사진과 내 마음속에 저장되어 있다. 그리고 앞으로 자주 하늘을 보는 노력도 해봐야지. 내 인생의 골목에는 항상 새로운 노을이 지고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