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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즐넛커피 Apr 14. 2023

차 한 잔의 여유

여유가 맛있다

바쁘게 일을 하고 그 일이 나에겐 버겁게 느껴질 때  그럴 때는 정신이 없는 나머지 시간이 나기만 하면 잠깐 눈을 붙이고 모자란 잠을 채우기 일쑤였다.

그렇게 매일을 똑같이 일에 치여 지내다 보면 어느새 몸관리나 취미는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사치스러운 느낌마저 들기도 한다.



여느 때와 같이 일을 마치고 평소 같으면 일찍 일이 끝나고 누릴 수 있는 행복은 고작  저녁을 맛있게 먹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저녁을 또 해결하고 일도 익숙해져서 저녁 식사 이후에 잠에 곯아떨어지지 않는 시간도 생기면 그다음엔 무얼 할까 가 새로운 고민이 되었다.


같은 부서는 아니지만 항상 붙어지내는 녀석이 있다. 그 녀석의 별명은 '짐승'이다.  이유는 직접 보면 알 수 있으나 자세한 묘사는 생략하는 게 낫겠다.  어쨌든 그 짐승 녀석 하고 칼로리 넘치는 저녁식사를 하고 나면 가끔 날씨 좋을 때 건물 근처를 산책하며 소화도 시키고 바람도 쐬었다.  그러다 짐승이 제안했다.

"차나 한 잔 마시러 갈래?"  

짐승은 실상  동생이지만 이미 친구 먹은 지 오래다.  술 좋아하는 건  알았지만 이유를 물으니 차 마시는 것도 즐긴 다한다.

생각보다 별명하고 어울리지 않게 고상한 취미를 갖고 있다.


직장에서 30여분을 차로 달리면 교외에 작은 천을 끼고 형성된 카페거리가 있다. 그곳으로 가서 그중에 홍차를 마시기  좋은 카페로 들어갔다.  그곳은 날씨가 좋으면 가게 앞에 유리문을 젖혀서 개방시키고 야외에 앉는 느낌으로 차를 마실 수 있다. 인기 있는 체인점이라 그런지 주말이면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카페이기도 하다. 연애를 하면서 이런 곳을 다녀본 적도 없는 내가 그 짐승을 데리고 커플들 사이에 앉아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괜히 눈치가 보이고 가게에 민폐를 끼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오히려 짐승 녀석이 더 좋아하면서 눈치 보지 말라고 한다.


주문하고 얼마나 지났을까  찻잔 위에 주전자가 덮인  두 개의 찻잔 세트, 저녁을 먹었지만 일하면서 굶어 우리가 보복흡입이라도 할 것 같은 다급함으로 시킨 과일이 올려진 파이가 같이 나왔다.

예전에 대학교 때도 그랬지만 사람들과 다니면서 시간 때우기 용도로 들고 다니는 커피 정도 말고는 다양한 차를 마셔본 적이 없기에 기대도 되진 않았다.


한 모금을 들이켠다.  일단 뜨겁다가 쌉싸름함이 입에 퍼진다.  '역시  맛을 잘 모르겠어~'라고 생각이 들지만 몇 번 더 마셔본다.  그 때다!   봄 내음이 같이 들어오고 따스한 차를 마시니 온몸에 남아있던 긴장과 피로가 사르르 녹는다.

맛있다. 몰랐던 맛!

그렇게 몇 번을 마시고 등을 의자에 기대고 길게  다리를 뻗고 앉으니 그제야 카페 안에 사람들도 눈에 들어왔다.


그렇구나, 여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었구나!

학생부터 나처럼 일을 마치고 들어가다 약속모임을 하는 직장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그때 익숙해진 차 맛 뒤로 알 수 없는 감정이 올라온다.

' 사람들은 이렇게 지내는구나~'

여기 있는 사람들도 각자 바쁘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고 잠깐 여유를 만들어 나온 거겠지만 지금 이 풍경은 내 생활과도 너무 달랐기에 그 안에 내가 있는 것이 어색하기도 하고  이런 여유를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하기도 했다.




몸이 아플 때 진통제를 먹고 효과가 올라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통증이 사라지듯이 바쁘고 긴장된 삶 속에서  여유를 내어 휴식을 갖는다는 것은 신경안정제 없이 몸과 마음을 재부팅하는 좋은 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똑같이 바쁘고 힘든 일상에 찌들어있다 보면 시간을 일부러 내서 여유를 갖는다는 것도 귀찮거나 사치스럽게 느끼고 못하고 있을 때가 많을 것이다.


다시 차를 마시면서 생각한다. 차도 맛있고 여유도 맛있다!


                - 2023.04   차 한잔의 여유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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