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티브이 채널을 돌리다가 아무거나 재밌어 보이는 다큐나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편이다. 최근에는 연예인이나 여행유투버들이 나와서 외국을 다니면서 여행하며 겪는 일들이 나오는 프로그램들이 많아졌다. 사실 그런 프로그램을 일부러 찾아보지는 않는다. 여행을 자주 갈 상황이 아니기도 하고 그냥 뭔가 '세계테마기행'같이 아주 여행 전문가나 마니아들이 직접 부딪히면서 외국의 일상이나 문화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면 실제로 연예인들이 많이 돌아다닌다 해도 그저 보여주기에 가까운 가공된 느낌이 조금 싫은 것도 있다. 물론 출연하는 연예인들도 해외를 다니는 게 막 편하고 마냥 좋지만 않겠지만 그래도 제작진이 많이 관여도 하고 관리가 되는 상황이거나 적어도 출연료도 받으면서 제작진의 편의를 아예 제공받지 않는 것도 아니기에 연출된 느낌이 들어서 조금 꺼려지는 것도 있는 거 같다. 그래도 아직은 해외여행도 많이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라도 가끔 대리만족이나 정보를 살짝 얻을 겸 여행 관련 프로그램들을 나오는 대로 틀어놓고 볼 때가 있다.
요새는 예능도 공중파 말고 종편부터 여러 채널에서 재방송까지 포함하면 같은 방송을 여러 번 다시 볼 기회가 있다. 자주 지나쳐 보았지만 계속 방송을 보진 않았던 프로그램 하나가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시즌2'이다.여행유투버인 빠니보틀과 크리에이터 덱스와 함께 기안 84가 인도를 여행하는 모습을 담았다. 예전부터 하던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기안 84가 얼마나 독특하고 때로는 엽기적인지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런 모습이 어떤 때는 장점으로 어떤 때는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부담이 제작진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예능에서 봐왔던 모습을 생각해 봐도 아직까지는 그저 독특하고 재밌고 착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아이 같은 순수함은 가끔 엽기적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뭐 어떤가. 그는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준 적도 없고 부정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이번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시즌2(인도 편)'은 처음부터 전부 보지 않아서 자세한 것을 모두 알지는 못하나 잠깐씩 봤던 장면들이 있다.
인도 갠지스강의 화장터가 나오는데 이곳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이다.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화장하는 곳이고 바로 앞에서 직관하는 기안 84는 이 모습을 보면서 해탈한 듯 한 한마디를 내뱉는다.
"별거 없네요... 인생...", "뭔가 내려놓게 된다."
화장터에서 시신이 모두 화장되기까지 3시간, 그 시간이면 어떻게 살았든 우리는 자연으로 돌아가게 된다. 항상 허술하고 엉뚱한 기안도 여기서는 숙연한 모습을 보인다.인도의 갠지스강은 다른 강과 반대로 흐르며 강하류로 해가 지기 때문에 인도 사람들은 천국으로 흐르는 강이라고 하며 신성시 여기고 그래서 이 강 주변에서 종교의식이 행해지는 것이다.
화장터가 있는 바라나시에서 길을 가다가 현지인들에게 붙잡혀 말도 안 되는 엉망진창 집단 마사지를 받으며 바가지요금을 요구받기도 하고, 현지인들 결혼식에 초대되어 춤을 추는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갠지스 강은 앞서 말한 여러 가지 이유로 강물이 깨끗하지는 않은 것으로 아는데 강물을 먹어보는 기안의 모습을 보고 많은 시청자들이 경악했을 것이다. 어쨌든 바라나시 이후 뉴델리, 암리차르의 황금사원, 히말라야 산맥 아래의 레까지 이동하며 각 도시마다 다른 분위기와 자연, 현지인들의 생활 등을 그대로 보여준다.
중간에 어떤 이유로 헤어지게 됐는지 모르지만 내가 보고 감명 깊고 글로도 쓰게 된 계기는 이번 시즌 마지막에 기안 84 혼자 7명의 동자승과 보내는 모습을 보고서이다.
코르족 사원에 사는 초등학생 나이 7명의 동자승들을 만나고 이들과 사진처럼 좁은 방에서 같이 자고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낸다.
동자승들을 가르치는 스님께서 일이 있어 외출하시면서 기안 84에게 동자승들의 교육을 부탁한다. 이때부터 동자승과 긴 시간을 보내며 추억을 만들어간다. 기안의 편견 없음과 아이 같은 모습이 잘 어우러져 만난 지 오래되지 않은 동자승과 쉽게 친해지고 어른 이상의 모습이 나오게 된다.
가장 먼저 동자승들에게 건넨말은 '이제부터 10분간 휴식(freedom)'이었다. 그러다 곧 동자승과 무엇을 할지 고민한듯한 기안은 미술 수업을 하기로 한다. 동자승 한 명의 얼굴을 그리는 것을 보여주고 다음은 동자승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라고 한다. 그냥 단순히 번갈아 그림을 그려보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나는 생각보다 뜻깊은 상호작용이라 생각한다. 누군가의 모습을 그려본 적이 있는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그 대상을 자세히 관찰하여야 한다. 동자승들은 이 과정에서 친밀감이 확 올라갔을 것이다.
넓은 마당에서 인도의 인기 스포츠인 크리켓을 동자승들과 함께 하며 같이 어울려 몸을 써가며 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크리켓 게임 이후에 우리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가르쳐 준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발음이 썩 잘 되지도 않을 것이고 대화가 잘 통하지도 않지만 몇 번 하면서 자연스레 그 재미에 빠져들게 되고 동자승들이 흠뻑 빠져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야외에서 다니다가 문득 숙소가 떠올랐는지 동자승들과 함께 숙소의 담요 등 침구류를 모두 걷어 밖으로들고 나온다. 침구류를 2인 1조로 같이 양 끝을 잡고 털고 울타리에 널어 건조한다. 누가 시킨 것일까. 아닌 거 같다. 기안은 숙소에서 같이 자고 있어 보니까 날씨나 여러 탓으로 빨래를 잘하지 않는 것 같고 침구류가 눅눅해서 좀 해줘야겠다 싶어서 했다고 하는데 참으로 좋은 일이다. 우리나라 남자들은 군대에서 해봤을 일인데, 평소에 이렇게 할 일이 많진 않겠지만 침구류를 햇빛에 자연건조 시키면 살균도 되고 잘 말라 꽤나 좋은 방법이다. 우리처럼 세제를 써서 세탁기나 건조기를 편하게 이용할 환경이 아닌데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것을 기안이 잘 포착해서 도와준 것 같다. 이렇게 속 깊은 사람이었던가.
한참만에 외출에서 돌아온 스님이 커다란 짐을 한가득 들고 온다. 알고 보니 스님이 외출 전 동자승들이 필요한 것을 물어보고 이전 출연자들이 떠나기 전 남겨서 모은 돈을 털어 동자승을 위해 스님에게 선물을 대신 사줄 것을 부탁한 것이다. 사진 중간에 빨간 모자와 빨간 옷을 입은 것이 바로 그 선물이다. 그러면서 같이 사진도 남기며 혹시 기억에서 흐려질 수 있는 추억을 한번 더 남긴다.
기안과 다른 출연자들이 그렸던 그림을 만국기처럼 만들어 공부방 한편에 걸고 나중에 그림을 그리면 옆에다 이어서 붙이라고도 한다. 대단하다. 처음 얼굴 그리기에 이어 마지막까지 연결되는 이 모든 게 다 계획에 있던 것인가. 어쩌면 이렇게 아이들 시각에 맞추어 그들과 동화되어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 싶어 놀랐다. 이 과정들이 제작진의 큰 그림의 일부라도 누가 익숙하지 않은 인도의 험난한 여행을 하고 불편한 숙소에 머물며 아이들에게 헌신할 수 있겠는가. 자신이 돋보이고 자신의 편의만 추구하는 출연자라면 다른 그림들이 나오고 이렇게 가슴 먹먹하게 따뜻한 여행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을 것이다. 이미 단순 예능을 뛰어넘어서 프로그램으로 갔지만 민간외교관이나 자선단체의 봉사 이상으로 큰 의미를 담은 따뜻한 다큐물이 되었다.
이미 많은 누리꾼들이나 기사들이 기안 84가 올해 연예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이제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앞으로도 그의 모습대로 열심히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우리와 함께 해주었으면 하고 그에게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