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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즐넛커피 Sep 20. 2023

기분이 나쁠 때, 왜 나쁘지? 하고 되돌아본다면

감정도 연습이 필요하다.

Photo by Ahtziri Lagarde on Unsplash

살다 보면 불현듯 불쾌한 순간 생긴다.

기분이 나쁠 때, 기분이 왜 나쁘지? 하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인간이 오랜 역사를 갖고 진화하면서 바야흐로 '혼돈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말 그대로 한 가지로 단순하게 정의할 수 없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인간의 생활은 매우 편리하게 바뀌었다. 인터넷의 속도는 그 끝을 알 수 없게 빨라지고 있고, 이제 차가 도로에만 달리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 다닐 준비를 하거나, 심지어 인류가 지구에서 사는 게 아니라 화성에 가서 정착하려는 연구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보면 세대 간의 갈등이나 차이가 눈에 띄게 커지는 느낌이 있다. 소위 말하는 MZ 세대들이 지금의 청년들이 되고 사회활동을 하면서 기성세대와 부딪히는 가치관들로 많은 말들이 나온다.

애초부터 시간이 바뀌고 세대가 바뀌어도 결국 이 세대 간의 갈등이나 문화 차이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고 결국에 커지기만 하는 성격의 것이었을지 모르겠다.


인류가 진화하고 발전하고 시대가 변화하는 것 자체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저 단순히 우리가 갖고 있는 살고자 하는 본능이 무의식의 뒤편에서 인류를 채찍질하면서 이런 변화를 만드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차원의 어떠한 거대한 힘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부채질당하는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더 가까이 우리 주변의 생활에서 보면, 지금도 나이가 많으신 노인 분들은 일반 식품 매장이나 식당에서 쓰는 키오스크의 사용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MZ보다 어린 젊은 또는 어린 친구들이 보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을 광경이다. 터치 몇 번으로 메뉴를 주문하고 기다릴 시간이면 연세 지긋하신 분들은 메뉴판 정독에 터치 몇 번 시도 끝에 실패에다가 결국 프런트 데스크로 가서 대면 주문을 하지만 이마저도 다시 점원의 불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이내 키오스크로 돌아가거나 어렵게 주문을 마무리하는 경우가 있다.  길 찾기에서 그 모습은 더욱 처참하다. 젊은 친구들은 휴대폰 어플을 이용해서 현재 위치, 목적지의 이름만 알아도 도보, 차량, 대중교통을 이용한 이동 소요시간과 경로를 금방 파악해 버리는 반면에 연세 있는 분들은 아직도 버스정류장의 노선표를 찾아봐야 하고 물어물어 목적지까지 가야 하는 분이 많으시다. 현상 자체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이 들지만 이런 장면 장면에서 각자 서로가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지 궁금하다. 나이가 많은 사람과 어린 사람, 기계를 잘 다루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기억력이 좋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등등 다양한 차이를 우리는 매 순간 겪고 살아가고 있다. 그런 차이는 누가 만들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만들었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결국 그 모든 장면의 주인공은 우리이다.


우리가 일상 속에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하고 겪게 된다. 이미 오래 알고 있는 친하고 익숙한 관계나 아니면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새로운 사람들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고 겪으면 우리의 일생이 지나 가질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왜냐하면 무언가 일을 하거나 시험을 준비해 보면 결국 보통 왕도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느 일정 양의 시간과 노력이 뒷받침이 되어야 통과할 자격이 주어진다. 사람과의 관계가 시험이 아닌데도 우리는 많은 시간을 들이고 긴장할 때가 있다. 어려운 상황을 마주하게 될 때 우리는 스스로가 모르게 우리를 보호하려는 본능이 있어서 비슷한 행태를 취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그것은 '관계의 단절'이다.  친하게 지냈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갑자기 어려움을 겪고 관계가 불편해지면 마치 너무다 당연하게 우린 제일 먼저 연락부터 끊게 되는 경우가 많다. 잘 알던 선배나 직장 상사가 나를 차갑게 대했을 때, 오해로 인한 상황에서 공격을 받게 될까 봐, 스트레스받는 상황에서 대처하는 법을 모를 때 등등 많은 상황에서 나오는 행태일 것이다. 어떨 때는 가장 비겁한 방법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가장 쉬운 방법이기에 이런 방식을 취하는지도 모르겠다.


비난하지 않는 상황에서의 오해도 단순하게 소통에 문제를 낳고 오해가 생기면 관계에 문제가 따를 수 있다. 그렇다면 생활 속에서 비난이나 험한 말을 통해서 우리가 겪는 불편감, 그로 인한 관계의 문제들이 어떤 결과를 수반하는지 지나고 보면 후회하거나 좋지 못한 경험을 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어찌 보면 '다름'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이 많을 것이라고 보는데 이럴 때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다름'의 문제에 대해서 전부 조절하고 대처하기에는 많은 경험과 공부가 필요하다.  외부적인 요인을 모두 다루거나 제외하기 전에 내부적으로 스스로 갖고 있는 문제나 반응에 먼저 고민해 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처음으로 돌아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자.

'기분이 나쁠 때, 왜 나쁘지? 하고 되돌아본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것들을 수 있을까.


Photo by David Clode on Unsplash


누구에게 잔소리 들었을 상황을 상상해 보자,

학원에서 선생님으로부터, 직장에서 상사로부터, 사회에서 선배로부터 핀잔을 들었을 때 까칠하게 반응하거나 퉁명스러운 반응으로 대화가 마무리된 경험들이 많을 것이다.

첫째로, 상대방에게 문제가 있다 하자. 그러면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상대방이 말한 배경이나 의도를 파악하기 전에 내가 기분이 나쁜 것을 표현하는 것도 과연 맞는 것인가.

둘째,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경우를 생각해 보면, 상대방도 이유는 있어서 나무라는 경우가 충분히 가능은 했겠지만 내가 언뜻 받아들이기 못하고 기분이 나쁠만한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의 가능성으로는 요즘 말로 '뼈 때렸다. 뼈 맞았다'하는 경우일 것이다. 너무 정곡이 찔렸거나 나에게는 치부와 같은 부분이 자극되었거나 숨기고 싶은 부분이 드러난 경우에 불쾌감이 들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기분이 나쁜 것인가 수치감에 내가 불쾌한 것을 나쁘게만 느끼는 것인가. 그렇다면 내부에서 느껴지는 당혹감과 화를 참지 못하고 상대에게 표현하거나 전가시키는 것도 문제가 있게 보인다.

또 하나의 가능성으로 내가 반복적으로 잘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라면 내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는 이상 타인으로 하여금 불편함을 줄 수 있고 그 결과로 나에게 잔소리나 비난이 올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그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상대방의 언행만 보았을 때 불쾌함을 느낄 수 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나의 문제점을 지적당하는 것은 어떨 때 나에게 좋은 채찍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내가 깨닫기 어려운 것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는데 부적절하게 반응한다면 그 기회를 버릴 수 있고, 반복된다면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른 무언가를 하는 내가 되어 계속 사람들과 마찰이 생기거나 오해를 일으키고 다닐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을 생각하다 보면 이미 화가 날 포인트가 지나가고 불편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생각보다 우리 생각은 단순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을 벗어나면 감정이 누그러들고 그러다 보면 불필요한 과잉대응도 줄어들 수 있다.


Photo by Tim Mossholder on Unsplash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서로를 위한 거리가 존재한다. 사적영역은 1m 내외, 공적인 거리는 3m가량이 된다고 한다. 친밀함의 거리는 45cm 정도로 한 팔을 벌려 닿는 거리이다. 우리의 감정에도 이런 보이지 않는 거리가 있지는 않을까. 이 거리에 우리의 감정영역도 포함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거리가 있지만 거리와 상관없이 들리는 언어와 소리, 보이는 몸짓 등 다양한 것이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이것들을 잘 다루고 잘 이해하며 조심하는지가 서로의 안정감과 상호 간의 편한 관계에 매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실제로 가깝게 있지 않아도 무심코 던진 말이 불현듯 너무 우리의 보이지 않는 감정 영역을 너무 근접해서 나의 태도와 다르게 지나갈 때에 우리는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 사이에 매너를 배우고 배려를 하는 것처럼, 소통으로 만들어지는 관계에서 우리는 감정을 돌아보고 연습한다면 그것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서 매우 어렵겠지마 어쩌면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도 어쩌면 운동처럼 실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Photo by Tylor Nix on Unsplash


다시 또 처음으로 돌아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자.

'기분이 나쁠 때, 왜 나쁘지? 하고 되돌아본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것들을 수 있을까.

이제는 어떤 것을 볼지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나와 상대방, 그리고 둘을 모두 바라보는 외부의 누군가의 시선과 각자의 입장에서 이 상황이 어떤지를 고찰해 보자. 이것이 바로 감정 연습이다.



        - 2023.09 비 오는 날 오후 빗소리를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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