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이즐넛커피 Oct 29. 2023

옳다구나 킹크랩

싸지만 맛은 비싸네

  요즘 킹크랩 가격이 많이 싸졌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뉴스를 찾아보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산 해산물 수출을 금지하고 중국에서도 매출이 감소된 상황에서 러시아산 레드 킹크랩이 대량 우리나라로 물량이 공급된 탓이라고 한다. 마침 대형마트들이 가격 경쟁을 하면서 예전의 반값 수준으로 행사를 하는 것이 있었다.  킹크랩은 킬로그램당 쌀 때 7만 원대  보통은 8~9만 원대의 가격으로 평소에 웬만해선 먹기 힘든 비싼 해산물이다.


사실 뉴스로 알아보기나 해서 저런 이유가 있구나 하고 알게 되었지 평소 관심이 없기에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었다.  예전에 언젠가 대게 값이 많이 떨어졌다고 나올 때가 있어서 그때 아내와 같이 직접 수산시장으로 먹으려고 갔었는데 약속이나 한 듯 가게들 수조에 비싼 킹크랩 몇 마리씩 들어있는 것 말고는 대개는 구경조차 할 수 없던 적이 있었다. 신기했다. 평소 수조를 가득 매운 대게들이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늦은 시간에 간 것도 아닌데 모든 가게에서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게 가능한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회만 먹고 왔던 기억이 있어 이번에 킹크랩 할인행사 소식이 있어도 나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아내는 달랐다.  본인도 본인이 킹크랩 언제 먹은 지 기억도 잘 안 날 정도로 아주아주 오래전 한 번이나 먹은 듯한데 너무 먹고 싶어도 비싸서 못 먹었다고 그런다.  대개만 해도 만족스러워하고 좋아하지만 당연히 자주 먹지도 않는 음식인데 이번 킹크랩 할인행사는 아내한테는 근래 보기 드문 빅뉴스 인가보다.


"오빠,  내가 내일 오픈런할게~"

"응? 오.. 픈.. 런...?"

"응! 킹크랩 반값 수준으로 행사하는데 주말 동안이야. 내가 오픈런으로 사 올게!" (아주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근데 오픈런할 수 있겠어? 그러려면 일찍 일어나야 될 텐데?" (평소 주말만 되면 회사에 나가지 않아 늦잠을 즐기는 아내다. 나는 상당히 가능성을 의심했다.)

"당연하지. 내가 또 마음먹으면 하지!"

"그래 그럼...  근데 눈 떴는데 11시고 그러면 막 짜증 나겠다 ㅎㅎㅎ~"


정말로 이번 기회에 킹크랩을 먹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되든 아니든 마음은 먹을 수 있으니까 그러려니 하고 나는 토요일에도 여느 때와같이 일찍 출근을 했다.


  일을 한창 하고 있는데 톡이 와있었다. 번호표를 받았다는 메시지다. 결국 성공한 것이다.  그땐 '이게 되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아주 일찍 간 것은 아니지만 번호표 받기에 성공이다.  마트당 평균 100개 정도 예상이 됐고 적게 파는 마트들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는데 아내의 대기번호는 46번.  우리 동네마트는 마지막 번호가 50번이었다는 것이다.  하마터면 일찍만 일어나고 놓칠 수 있었는데 평소 같은 늦잠의 욕심을 버리고 킹크랩에 대한 강한 욕망으로 아내는 대기표 받는 데 성공한 것이다.


 집에 들어오니 2.6킬로짜리 킹크랩이 저렇게 있다. 들고 오는데도 힘이 들었을 것 같다. 100그램당 4990원 가격이다. 매장에서 찜 서비스 해주면 좋은데 행사날이라고 찜은 못해준다고 했단다.  처음에 가까이서 정말로 오래간만에 보는 킹크랩의 크기와 포스에 나도 놀랐다. 가만 보니 살짝살짝 움직이는 살아있는 것이었다. 만두나 찌는 납작한 찜기밖에 없는데 그곳에 뒤집어서 다리를 최대한 오므려봐도 뚜껑이 채 닫히지 않는다.   안 쪄질걸 생각해서 원래 찌는 시간 30분이라고 했다는데 우리는 좀 더 길게 찌고 뜸도 들였다.


인고의 시간이 지나고 이렇게 아주아주 오동통 부드러운 킹크랩 살을 만날 수 있었다. 식당처럼 손질해 주는 것도 없지만 우리는 가위를 들고 열심히 뜯어가며  킹크랩을 해치웠다.


"아~ 죽인다. 너무 맛있네! 역시 킹크랩"

"진짜 맛있다!"

"오빠를 위해서 내가 이렇게 맛있는 킹크랩을 사 왔지!"

"응~ 고생했어! 고마워~!"


물론 싸다고 해도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비싼 가격일 수 있다. 지금 행사로 가격이 그나마 내려갔지만 맛만큼은 비쌀 때 그대로이다.  우리도 자주 먹지는 못하는 음식인데 우연한 기회에 아내의 사랑과 노력으로 아주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아내에게 감사하고 한 끼 맛있는 식사에 감사하다.



        - 2023.10  오랜만에 맛있는 저녁을 먹고


매거진의 이전글 홍콩의 특이한 맛(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