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 태풍이 지나가면서 비가 잦아들고 흐리고 바람도 불긴 했지만 어렵게 오후부터 움직이기 시작해서 저녁을 처음으로 미슐랭 식당을 찾아 맛있게 해결을 했다. 그 후에 이전 글에는 그냥 하루를 마무리한 것으로 마무리했으나 저녁식사 후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침사추이에서 남쪽으로 홍콩섬이 보이는 곳을 갔다. 스타의거리라고 유명 예술인들의 핸드프린팅이 있는 공원 같은 곳이다. 생긴 지 오래된 것 같지 않은 K11musea라고 쇼핑과 전시가 같이 있는 복합문화공간이 있는데 우리는 쇼핑에 관심이 없어서 그냥 지나쳤다. 명품샵도 잘 모여있는 대형 쇼핑몰이라 생각하면 되는데 쇼핑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번 들러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침사추이에서 홍콩섬으로 다시 돌아갈 때는 페리 타는 것도 좋다. 비용이 저렴하고 이동 시간이 길지 않다.)
스타의 거리에서 바라보는 홍콩의 야경은 정말 멋있다. 이곳이 바로 침사추이의 야경 명소인데 커다란 빌딩들에 들어오는 조명과 대형 간판의 불빛들이 꽤나 화려한 느낌이다. 낮에 특히나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동네에서 볼 수 있는 낡은 건물과 소박한 식당들의 모습과 완전 딴판이다. 저녁 8시가 되면 건물들과 건물 옥상에서 레이저도 나오면서 음악에 따라 조명이 변하는 '심포니 오브 라이트'가 약 10분 정도 진행된다. 홍콩에 간다면 꼭 보는 것을 추천한다.
셋째 날부터 돌아올 때까지
드디어 셋째 날 아침이다. 여행 일정 중 절반이 지나가는 시점이지만 태풍 때문에 아직도 활기찬 홍콩의 일상을 제대로 보지는 못했다. 숙소에서 밖을 내다보니 날이 개었고 아침에 출근하는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좋아!
이제부터 홍콩의 진짜 맛을 제대로 느껴보겠어!'
싱흥유엔 - 토마토 라면, 크리스피 번과 동윤영
우리가 알아봤던 곳 중에 너무 궁금하고 꼭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던 것 중에 하나가 바로 '토마토 라면'이다. 토마토 라면이 다소 생소할 수 있다. 이미 백종원이 방문을 했었고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도 잘 알고 있는 메뉴였다.싱흥유엔은 셩완 역 A2나 E2 출구에서 도보로 약 5~7분 정도 거리에 있다.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와도 멀지는 않은데 언덕 사이 좁은 골목에 오래전부터 있는 허름한 식당으로 아침이나 점심 등 간단한 식사를 위해 현지인들도 오기도 한다. 우리는 아침식사를 위해 갔고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았다. 자리에는 빈틈이 없고 역시나 합석을 한다.
할머니들이 영어를 잘하시는 거 같지 않지만 할로~ 하면서 오시고 음식을 내주신다. 토마토 라면은 말 그대로 토마토 페이스트 베이스 국물에 면이 들어있는 음식이다. 거기에 토핑이 뭐가 들어가느냐 정도의 차이인데 백종원은 소고기가 든 토마토 라면을 먹었는데 비프는 없다는 할머니 말 때문에 햄과 소시지가 들어간 토마토 라면을 시켰다. 토마토 국물 라면이라는 게 호불호가 있다는 리뷰를 좀 봐서 큰 기대는 없었는데 결론은 맛이 괜찮았고 나중에 떠오를만하다. 기름기 적고 맵고 짠 면보다 나은 것도 같고 오히려 토마토가 있어 몸에도 좋을 것이다. 처음엔 엥? 이러지만 먹다 보면 은근히 당기고 잘 넘어간다. 내가 먹은 햄소시지가 들어간 조합도 나쁘지 않다. 그리고 같이 곁들여 먹는 것이 크리스피 번이다. 식빵은 아니고 햄버거 빵 같은 도톰한 버터 바른 빵을 굽고 연유를 바른 것이다. 완전 너무 했다. 맛이 없을 수가 없다. 그리고 또 같이 먹는 것이 동윤영이다. 동윤영은 커피가 들어간 밀크티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는 밀크티를 원래 좋아하지도 않고 많이 먹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먹는 밀크티는 좀 단 맛이 강한 경향이 있어 커피보다 금방 질리고 배도 부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홍콩 안에서 먹는 밀크티는 막상 단 맛은 강하지 않아서 오히려 비슷한 맛은 아니지만 비유하자면 라테 느낌으로 다른 디저트나 식사와 같이 먹기에 딱 좋다.
(팁: 메뉴판을 보면 백종원이 먹은 메뉴가 어떤 건지 한눈에 알기 어려운데 , 토마토라면은 재료 차이기 때문에 꼭 같은 걸 원하는 게 아니면 37 홍콩 달라 짜리 메뉴에서 먹고 싶은 것을 시키면 된다. 사진과 같은 크리스피번은 메뉴판에서 20 홍콩달러짜리, 동윤영은 15 홍콩달러의 음료를 가리키면서 주문하면 된다.)
청힝키 - 구운 딤섬
유명한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로 가던 중간에 머지않은 곳에 청힝키를 발견했다. 2016년 미슐랭 식당으로 선정된 적이 있고 지금은 체인으로 침사추이, 완차이, 틴하우 등 번화가 위주로 있는 구운 딤섬 집이다. 홍콩식 소룡포에 살짝 더 두꺼운 듯한 피의 딤섬을 커다란 판에 구워서 파는데 우리는 고기와 새우가 섞인 것으로 주문했다. 커다란 팬에 기름을 두르고 굽는 거라 다소 느끼한 감이 있지만 맛있다. 안에 육즙이 가득하기 때문에 먹을 때 입안이 데이지 않게 조심하자. 이런 구운 딤섬은 아마 먹어보기 어려운 메뉴라서 한번 정도 시도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청힝키 바로 반대편의 타이청베이커리에서 에그타르트를 사서 계속 움직이면 금방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가 나온다. 이곳이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의 시작하는 곳은 아니나 이렇게 역과 번화가가 있는 아래 지역부터 언덕을 빠르게 올라 윗동네로 편하게 갈 수 있도록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해 둔 것이다. 800m 정도의 거리에 20여 개를 설치해서 편하게 이동하게 만든 것이고 양방향으로 두 개가 설치된 게 아니라 시간에 따라 상행 또는 하행으로 운행 방향이 바뀐다. 세계 최장 옥외에스컬레이터이면서 영화 중경삼림에 나와서 더욱 관심받는 곳이기도 하다.주변에 소호 벽화거리가 있고 여러 식당과 상점들이 골목골목 자리 잡고 있다.
타이쿤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중간에 센트럴 방향으로 타이쿤이 있다. 아주 오래전 경찰서와 교도소였던 공간으로 지금은 과거의 모습에 대해 전시도 하고 광장 같은 공간 주변의 건물에 식당이나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어떤 역사박물관 느낌보다는 빼곡한 도심 속 과거의 흔적이면서 쉼표가 되는 공간인 거 같아 생각보다 볼만하기도 하고 쉬러 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하면 무료 영어가이드 투어도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도 여기서 잠시 쉬어가면서 타이청 베이커리에서 샀던 에그타르트를 먹었다.
피크트램, 스카이테라스 428 전망대
역사가 100년이 넘는 피크트램은 홍콩섬 가운데 언덕 위의 빅토리아 피크라는 곳에 과거 재벌들이나 역대 총독들의 별장을 지을 때 과거 영국 관리들을 위한 교통수단이라고 한다. 트램을 타고 45도 이상의 언덕을 5분여 올라가면 빅토리아 피크에 도달하고 홍콩섬과 구룡반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미리 왕복으로 표를 예약했고 스카이테라스 전망대의 입장권 하고 같이 포함된 것으로 예약했다. 예약하면 QR코드를 받게 되는데 이 QR코드가 티켓을 대신한다.
스카이테라스 전망대에 올라서 트램이 오는 곳을 보면 이런 모습이다. 야경을 보는 것도 좋은데 늦게 오면 사람도 많고 자리 잡기 불편할 수 있어 조금 이른 저녁에 도착했다.
시간이 흘러 해가 지면서 점점 어두워지고 아직 날이 흐려 구름은 있지만 야경을 보기에 충분하다. 바람도 불고 홍콩 답지 않게 비 온 뒤라 기다리는 내내 쌀쌀했지만 밤에 보는 홍콩의 야경은 정말 멋지고 보람 있었다. 멀리 침사추이 스타의 거리에서 보던 것과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참 이상도 하지 이렇게 화려하고 멋있는데 저 안으로 들어가면 그 느낌은 없고 치열하게 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애초 여행을 많이 다녀보지 않아서 홍콩 한번 가보면 되겠지 했는데 여긴 한 번은 다시 와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Sister Wah - 고기국수
결국 마지막 날이 되었다. 태풍이 반쯤 데려간 일정에 시간이 너무나도 금방 지나간 느낌이고 아쉬움이 크다. 열심히 돌아다니기보다 체크 아웃하고 공항으로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맛있는 식사로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은 틴하우 역 출구와 인접한 시스터와(Sister wah)이다.
틴하우역 A2출구로 나가면 저렇게 건너편에 가게가 보인다. 미슐랭 빕구르망 9년 연속 선정된 대단한 식당이다. 줄이 있지만 합석문화와 국수메뉴 특성상 회전이 빨라 들어가는 대기 시간이 길지 않다.
양지가 들어간 고기국수와 탄탄면이다. 일단 다른 수식어 필요 없어 무조건 엄청 맛있다. 또 온다면 다시 먹을 것이다. 삶은 양지가 어찌나 부드러운지 고기에 감탄하고 육수에 또 한 번 감탄한다. 계속 먹게 되는데 두 그릇도 그냥 먹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참았다. 마지막 사진은 육수에 푹 끓인 무인데 그 자체가 특별한 맛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현지인들은 우리가 식사 때 김치 놓고 먹는 수준으로 전부 같이 놓고 먹고 있었다. 무는 굳이 추천하지 않는다. 그저 고기국수 그 자체는 매우 훌륭하다.
이렇게 일정은 마무리가 되었다. 홍콩에 도착해서 궂은 날씨에 가장 평범한 로컬 식당에서 현지인을 만나고 대중교통도 다니지 않는 날씨에 우산을 쓰고 도시를 돌아다녔다. 날씨가 좋아지면서 많이 다닐 수 있었고 높은 전망대에서 해가 지며 하나 둘 불이 들어오는 빌딩 숲도 보았다. 날씨 때문에 불평만 하면서 다니거나 더 좋은 비싼 곳만 찾았다면 또 다른 홍콩의 맛을 느꼈을지 모르겠다. 열심히 찾아놓았지만 가지 못한 곳도 있고 맛있다고 리뷰들에 보이는 더 많은 식당들은 다음에 가도록 해야겠다. 하지만 이번 여행 동안 느낀 특이한 홍콩의 맛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