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과거 학생 때 썼던 글이 있었지 하고 찾아보다가 다시 발견된 글이다. 지금보다 지식과 경험이 부족했던 때지만 실제 현장에서 겪고 느꼈던 것이 오늘날의 나를 되돌아보게 하고 새롭게 자극한다.
생명이 다하면 인간은 죽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이 생명이라는 것은 원천이 따로 있는 그 무엇인가, 아니면 단순히 신의 영역에서 결정되는 것인가. 우리는 운명이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삶은 정해져 있는 길을 따라가고 사람은 정해진 명이 다 하면 죽음에 도달하는 것처럼 말하곤 한다. 하지만 더 이상 종교나 철학적인 관점에서 벗어나극히 우리 인간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얼마나 노력하는가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 더 많은 것 같다.
임상실습을 시작한 지 이미 오래되고 응급의학과 실습으로 응급실을 지키고 있던 중이었다. 사람들은 ‘응급실’하면 큰 사고를 당하고 신체의 여러 부위에 큰 부상을 입고 피가 철철 넘쳐흐르는 사람들이 와서 긴박하게 돌아가는, 흔히 드라마에서 생동감을 살리기 위한 극적인 연출에 가까운 모습들을 떠올리기가 쉬울 것이다. 나 역시도 그런 생각을 했던 건 사실이다. 응급실에 들어오는 환자들을 봤을 때 언뜻 봐서는 저 환자가 어디가 어떻게 아픈 건지 얼마나 응급 환자인지 구분이 안 가는 경우가 있다.
응급실 한편에는 소생실이라는 구역이 따로 정해져 있다. 이곳은 이름 그대로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환자들이 자리하는 곳이다. 최근에 이곳을 머물렀던 두 환자가 있었다. 연세가 70대는 되는 분들로 오기 전에 떡을 먹다가 호흡곤란이 오고 의식 없이 심정지까지 와서 병원으로 오는 구급차 안에서 심폐소생술을 지속하면서 왔던 분들이었다. 티브이에서 또 흔히 묘사되는 장면 중 하나가 눈에 불빛을 비춰보는 것일 것이다. 동공의 반응으로 뇌줄기에 손상이 갔는지 보는 과정으로 소생가능성을 보기 위한 간단한 신체검사 중 하나이다. 두 분들은 병원 도착 당시에 이미 불빛 검사에서 반응이 없던 분들이었다. 일단 응급의학과 선생님들과 응급구조사 분들께서 달려들어 심폐소생술을 하고 나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이렇게 시행하면서 동시에 가족분께 상태나 예후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는데 옆에서 들어보니 가망이 별로 없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들려왔다. 이미 노력을 하기엔 너무 멀리 떠나신 분들이었던 것이다.
또 중환자실에서 심폐소생술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비슷한 분이었다. 보호자들도 이미 들어와서 내가 동기와 번갈아가며 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심폐소생술을 하면 더 심난하다. 마침 환자의 부인인 할머니가 통곡을 했다. 열심히 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힘이 쭉쭉 빠지기 마련이다. 심장마사지를 하면서도 이분이 다시 돌아오지는 않을까 기도하는 마음에 가까워지게 된다. 결국 소생실에 계셨던 분이나 중환자실에 계셨던 분들은 모두 결과적으로 먼 길을 가셨다. 참으로 안타까웠다. 이럴 때는 정말 생사는 신의 권한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힘든 응급실 실습도 중반이 넘어가던 어느 날이었다. 한 중년의 남성이 가슴부위에 통증을 호소하면서 구급차에 실려서 응급실로 도착했다. 처음 들어올 때 그분은 앉은 상태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약간의 호흡곤란이 있었고, 가슴에 심한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환자와 의사소통이 가능한 상태였다. 오기 전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니 친구와 가볍게 술을 곁들인 식사를 하고 당구장에서 모처럼 당구 한 게임을 치다가 갑자기 주저앉으면서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고 한다. 구급대원과 보호자로 따라온 친구에게 그렇게 듣고는 침대를 응급환자구역으로 옮겼다. 아주 짧은 동선이었고, 시간은 1분도 되지 않을 것이다. 선생님들의 부탁을 받고 우리가 맡은 임무대로 심전도 검사를 위해 환자에게 갔다. 하지만 너무 환자가 괴로워하는 상태인 데다 몸을 움직여서 좋은 상태(?)의 심전도 결과를 얻을 수 없었지만, 그대로 해본 결과 심근경색이 확인되었다. 바로 옆에 있던 내과 전공의 선생님께서도 ‘맞네~’ 이러시면서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환자 상태만으로 짐작하고 계셨던 것이다. 환자가 이어서 갑자기 환자는 가슴 통증에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아직 단순한 검사나 특별한 처치가 없는 상황, 그러나 응급의학과 선생님들께서는 안 좋은 상황임을 직감한다. 처음에 이 와중에도 나는 그런 상황의 심각성을 잘 느끼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곧바로 누구나 알 수 있는 응급상황이 발생한다. 환자는 엄청난 고통에 몸부림을 치다가 얼굴이 파랗게 변하더니 질문에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반응을 제대로 보이지 못하더니 이내 소위 말하는 입에 거품을 무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고 정말 순식간에 의식을 잃다시피 했다. 근처에 있던 간호사와 응급의학과 선생님들께서 급히 맥박을 잡아보고는 ‘이런...’이라는 짧은 탄식과 함께 바로 CPR(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이런 상황이 일어나면 응급실은 특히나 더 분주해진다. 담당 팀이 구성되어 있어서 모든 인원이 환자에게 달려들기 때문이다. 각자의 역할대로 움직이다 보면 우리 학생들은 간단하게 환자의 상황을 알 수 있는 모니터와 제세동기를 준비하는 작업도 상당히 힘들 정도가 된다. 산소를 공급하면서 심장마사지를 계속하면서 환자의 맥박도 확인한다. 약 5분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다행히 환자의 맥박이 돌아왔다. 바로 혈압과 맥박이 정상 수치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규칙성을 되찾고 환자도 안정되었다. 이 모든 상황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내가 직접 심장마사지라도 한 기분이었다. 주변은 아수라장이었다. 모든 상황이 지나고 나서야 각자의 자리에서 하던 일을 계속하는 분위기로 돌아갔다. 심폐소생술 하는 것을 본다거나 해본 경험이 최근 들어 있기는 했지만 이런 분위기는 정말로 적응이 잘 안 되었다. 짧은 순간의 판단과 처치가 환자를 죽음에서 삶으로 다시 끌어올 수 있는 것이었다. 환자 상태가 호전되고 몇 시간이 지나면서부터는 보호자나 의료진들과 대화도 가능해졌다. 심폐소생술 당시에 투입됐던 많은 의료진들이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아닐까 생각되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모든 선생님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본인들 업무에 빠져있었다. 응급실에서 자주 발생하는 상황이어서 그런지 환자를 살렸다는 기쁨이나 보람보다는 안도감 정도만 느끼는 듯한 정도로 각자의 일을 하고 계셨다. 지켜봤던 내가 나만 괜한 뿌듯함을 느끼는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의료진의 손을 잡아주었던 환자에게도 고마운 생각이 들게 되었다. 처음에 가슴 통증이 왔고 즉시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온 것도 다행이었고, 분주하게 움직여서 지체 없이 환자를 살려낸 선생님들 덕에 소중한 생명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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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많은 이유로 응급실을 오게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 전까지는 자기의 건강이나 목숨에 관해서 중요한 것을 느끼지 못한다. 학생으로서 실습 때문이기는 하지만 응급실에 있다 보면 본인의 증상 때문에 고통을 호소하고, 의사가 왜 오지 않냐거나 시간을 너무 끈다는 이유로 의료진에게 항의하는 보호자나 환자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의료진의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탓도 있겠지만, 정말 아플 때면 사람들은 더 이기적으로 바뀌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응급실 책임자가 누구냐부터 시작을 해서 병원장을 만나겠다는 사람도 있고,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물건을 집어던져 파손시키는 사람까지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학생 입장에서 나서서 무언가 설명을 한다거나 제제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참으로 그럴 때마다 답답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렇게 소란을 피우던 사람들도 정말 조용해지는 한 순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이 있는 침대 근처에서 갑자기 심정지 환자가 발생해서 모든 의료진이 달려가고 정신없이 움직이며 심폐소생술을 하는 순간이다. 이것 또한 누구나 티브이에서 봄직한 장면이지만 당장 눈앞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기에 본인의 아픈 구석은 어느새 잊어버리게 되었나 보다. 누가 봐도 그 모습은 참으로 안타깝고 초응급인 것이다. 자신은 비록 배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할지언정 저 사람은 곧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비교가 그제야 되는 것이다. 실습을 하면서 몇 번의 심폐소생술을 경험하기 전의 나의 모습과도 큰 차이가 있어 보이지 않아 짧은 반성도 해보게 되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에 얼마간은 응급실 전체가 차분해지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모두가 말하지 않고 있지만 생명의 소중함, 건강의 소중함에 대한 같은 생각을 동시에 하고 있는 것 같은 시간이다. 더불어 그런 상황이 되어서야 변화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또한 생명에 대한 예의가 필요한가를 생각하게 된다. 예의라는 것은 여러 종류가 있을 것이다. 의료진들은 병원에 오는 사람들 최선을 다해서 치료하는 것이 예의일 것이다. 반대로 일반 사람들, 즉 우리가 다치지 않는 것이 삶에 대한 예의이다. 사람이 사는 것, 살리는 것은 병원에서 의사들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삶이라는 것 또한 결정된 운명이나 신들 만이 결정할 수 있는 그 무엇이라기 보단 우리가 노력하는 만큼 얻을 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몸을 함부로 대했을 때에 돌아오는 고생에 대해서 일일이 예를 들지 않더라도 익히 알 것이다. 따라서 건강하게 사는 것이 삶의 이유이자 목표이다. 실습을 뛰다가 응급의학과 실습을 하게 되면서 옆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 앞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내 공부와 경험을 토대로 삶에 대한 예의를 알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