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스럽게 울린 초인종

미안하다는 말 앞에서

by 헤이즐넛커피

이사를 오고 한동안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낯선 집에 적응하는 일보다, 예상보다 조용하다는 사실이 더 고마웠다.
밤이 되면 바닥은 잠잠했고, 위층의 존재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이번 집은 괜찮겠구나’ 하고 안도하기도 했다. 그도 그런 것이 이사 오기 전에 지내던 집도 오래된 구축 아파트인데 모든 구축 아파트들이 원래 그런가 싶을 정도로 층간소음 문제가 심했다. 어느 정도냐, 집에 그냥 앉아서 티브이를 보는데 핸드폰 진동이 울려서 빨리 끄려고 찾아보면 나와 아내 모두의 것이 아니었다. 벽을 타고 내려오는 진동이 마치 바로 옆에서 핸드폰이 울리는 것처럼 느끼게 할 정도로 꽤나 심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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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부터인가 이사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우연인 줄 알았다. 며칠은 워낙 조용해서 윗집에 누가 살지 않는 빈집인가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조금씩 짧게 울렸다가 사라지는 발소리, 가끔 떨어지는 무언가의 둔탁한 소리가 들렸지만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전에 살던 집에 비하면 아주 가볍고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의 빈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소리는 점점 규칙을 잃었다. 뛰는 소리는 이미 세 시간을 넘게 이어졌고 집이 흔들릴 정도로 커졌다.


당연히 처음에는 참아보려고 했다. 헤드폰을 끼고, TV 볼륨을 올리고, 괜히 내가 예민한 건 아닐까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러나 잦아들 기미는 보이지 않고 심지어 쿵하고 내리찍으며 천정이 울리 듯한 소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섞여 나를 괴롭혔다. 유난히 심하고 오래 지속되고 있어 참는다는 선택지가 더 이상 의미 없어지는 순간이 있다.
마치 마음속 어딘가에서 ‘이제 그만해도 된다’는 신호가 켜지는 것처럼. 아이들이 있으니 박하게 굴지 말고 또 오래된 건물이니 어느 정도는 이해해주려 했다. 하지만 시간이 길어지고 충분히 참았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하고 이제는 더 참는 건 바보스러운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보다도 화가 자꾸 올라왔다.


사람들과 어떤 문제로 싸워본 기억이 거의 없다. 불편한 것은 비껴가고 웬만한 건 참아내는 그냥 무던한 평화주의자가 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실제로는 그냥 더 불편한 문제를 만들기 싫어 그 상황과 적당히 타협하고 있는 나약한 인간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나인데도 도저히 이번의 상황은 용납되지 않을 정도였다. (혼자 살면 모르지만 나중에라도 같이 사는 아내가 이웃과 마찰이 생기거나 껄끄러운 상황을 마주하지 않게 먼저 움직여야 할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올라가면서 여러 장면을 상상했다. 무례한 얼굴, 방어적인 말투, 어색한 침묵 있는 건 아닐까. 혹시 싸움이 되면 어쩌지, 괜히 일을 키우 어쩌지.
초인종 앞에 섰을 때,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정작 힘들고 못 참아서 올라간 나인데 벨을 누르기 전의 그 짧은 정적이, 그날 가장 조용하고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혹시나 언쟁이라도 생기면 쉽게 물러서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문 앞에서 나는 숨을 고르고 있었다.

드디어 문이 열렸다. 마치 영화의 느린 장면처럼 천천히 열리는 느낌이었지만 긴장감은 최고였다. 문을 연 사람은 생각보다 차분했다.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 한 분이 나오셨다. 아주 뽀얗고 고상하고 인자하게 생기신 분이다. 는 일단 최대한 웃는 낯으로 오래 기다려보고 있는데 진동과 함께 소음이 심해서 오게 되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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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은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사실 예측을 하고 있었는지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로 사과의 말을 이어갔다. 아이들이 있는 집이 아니고 어쩌다 와서 아이들이 뛰어서 그렇다며, 조심시키겠다고 했다. 아주 담백하고 간결했다. 변명도, 짜증도 없었다.


그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주인분의 대응에 내 화가 바로 가라앉아서가 아니다. 일단 되려 화내거나 얼굴 붉히는 불편한 상황으로 악화되지 않은 것에 대한 안도와 함께 긴장이 탁 풀려버렸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그 집주인의 얼굴에서 과거의 나를 본 것 같아서였다.


전에 살던 집에서 비슷한 항의를 받은 적이 있다. 그때도 오로지 한 번 아랫집 사람이 올라왔었다. 사실 그때 우리 집에 누가 온 것도 아니고 뭘 하고 있지도 않은 상태였는데 항의하러 온 아랫집 사람이 많이 불편하고 기분이 나빴다.

건물 자체의 특성 때문에 층간소음에 대한 방송이 자주 나오는 단지였고 그때 즘 아랫집 사람의 상황도 영향이 있었으리라 생각은 하면서도 어쩌면 나도 누군가에게는 소음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 나 역시 몰랐던 불편을 만들며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내려오는 길에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아까와 같은 소리였지만, 느낌은 달랐다. 층간소음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그 위에 얹힌 감정이 바뀌어 있었다. 그날 이후 소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집은 가끔 울린다. 다만 이제는 그 소리는 다시 줄었고 줄이려는 노력을 하는 게 들리는 듯했다.


다시 올라가는 일은 다행히 아직 생기지 않고 있다. 서로 배려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생각보다 쉬운 문제일 수도 있다. 층간소음은 소리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문 하나를 사이에 둔 삶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걸 그날 밤, 초인종 앞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 2026.01 이사한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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