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님, 그 질긴 매력으로부터 -2-

너무나도 불친절한 당신 그럼에도.

by 하누

옷에 관한 글을 쓰고 옷에 관해 진지한 사람이 된 시작은 그래, 데님이었고 청바지였다. 2퍼센트의 스판 소재가 함유되지 않은 면 100퍼센트의 질기고 탄탄한 그 바지 말이다. 솔직히 옷의 기능적인 측면으로만 보자면 굉장히 불친절한 녀석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로 이상적인 핏을 위한 조건이 까다롭다. 여러 브랜드에서 슬림 스트레이트, 레귤러, 와이드 핏 등 다양하게 출시되지만 적당히 마르고 다리 모양이 일자로 뻗는 체형이 아니면 이상적인 청바지의 모습을 소화하기 힘들다. 너무 마른 체형은 레귤러 핏을 입을 경우 허벅지 부분만 뜨는 경우가 많고 나와 같이 하체에 신체의 온 기운이 몰려있는 체형은 허벅지에 바지를 맞추면 꽉 졸라맨 허리띠에 사타구니 라인이 주름 져 펑펑 우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한창 살이 쪘을 시절에 딱 맞는 청바지를 입었던 사진을 보니 흡사 편의점에서 팔던 닭다리 과자가 생각났던 기억이 있다.


워싱이 예쁜 워싱진의 경우는 어떤가? 기장이 길면 기장을 칠 때 워싱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살려야 하는데 실력이 좋지 못한 집에 수선을 맡길 경우 아끼는 워싱진에 도넛을 달고 다녀야 하는 비극을 맞이할 수도 있다. 결국엔 나와 같이 인간적인 핏을 가진 사람들은 디자인과 핏 모두를 만족시키는 바지를 찾기 위해서 상당히 노력을 해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너무 완벽한 핏을 추구할 필요는 없다. 기장이 살짝 애매하고 허리가 살짝 남아 아쉽더라도 본인이 만족한다면 그것이 자신의 바지라고 생각해도 된다고 보는 입장이다.



두 번째는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다는 것이다. 스파(spa) 브랜드 같은 경우 여름용으로 얇은 청바지를 출시하기는 하지만 데님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보통 데님 전문 브랜드에서 출시한 낮은 온즈의 데님을 입는 경우가 많다. 리바이스라던가, 아페쎄나 뭐 그런 브랜드들의 짱짱하고 클래식한 느낌이 물신나는 것들 말이다.결정적으로 데님에 진심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름에 데님을 '자주' 입지 않는다. 태양이 이글거리는 한여름에 생지 바지를 입어 땀으로 페이딩을 낸 후 여름을 '자신의 데님 만들기' 기간으로 지내는 데님 마니아들을 제외하고는 청바지는 여름에 기피대상 1호 바지다.


겨울엔 어떤가? 대부분의 데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계절용으로 나온 기모가 들어간 데님은 입지 않을 거다. 그들은 영하로 기온이 내려갈 즈음에 검은색 발열내의와 최소 13.5온즈의 데님으로 한 겨울을 버틴다. 온즈가 높아진다고 한들 겨울에 충분 할리가 없다. 그저 '뭘 입어도 춥다와 뭘 입어도 덥다'라는 마법의 주문으로 버틸 뿐이다. 나의 체감상으론 여름보단 겨울이 좀 더 편하다. 나 역시 데님에 빠진 후로 사계절 내내 데님을 입었고 한 여름에도 입었다. 더위나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 아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한겨울 한여름에는 데님에 진심이 아니길 바란다. 우리에겐 건강이 가장 최우선이니까!



셋째로는 장점이자 단점인데 데님에 매력에 빠질수록 '하늘 아래 같은 청바지는 없다.'라는 말을 진리처럼 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가령, 연청 계열의 데님 중 회색 빛의 은은한 워싱을 입을 때와 조금 푸른 느낌의 워싱된 청바지를 입었을 때에 본인은 굉장히 둘의 다른 매력에 빠져 구매했지만 관심 없는 사람에겐 "어제 입던 바지네?"라는 소리를 꽤나 자주 들을 수 있다. 워싱진은 생지 진에 비하면 양반이다. 생지 진 같은 경우는 워싱이 없기에 오로지 색감, 가죽 탭, 체인 스티치, 셀비지의 유무와 같은 데님에 대해 최소한의 지식이 있는 사람만 보이는 것으로 구분이 된다는 것. 관심 없는 사람에게는 그저 짙은 남색의 롤업을 하면 귀여운 정도의 바지(?)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필자의 애인의 경우 내가 최고로 애정 하는 생지 데님을 입었을 때 '물에 푹 적셔진 바지 색감이라 별로야. 생지는 다 똑같이 왜 물에 푹 적셔놓은 느낌일까'라고 해서 슬펐던 적이 있었다. (뜬금없지만 워싱된 바지는 좋아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할까.) 마지막으로는 데님의 가진 느낌들 때문에 옷이 컬렉션의 영역이 되어버려 과소비를 조장하는 큰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나 역시 연청 중청 진청 계열로 데님이 많지만 구매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다. 예쁜 데님은 인테리어다. 걸어 놓고 보기만 해도 좋을 때가 있으니까.

필자의 옷장. 얼마나 아름다운 데님의 그러데이션인가

이 모든 단점과 장점(?)을 떠안고서라도 난 데님에 진심이 됐다. 수많은 데님 마니아들처럼 외국 유명 브랜드의 데님을 접해보고 입어본 적은 없다. 20대의 구매력엔 한계가 있는 데다가 애초에 서양인들 체구에 맞춘 브랜드가 많기 때문에 나랑은 친해지기 힘든 이유가 크다. 가끔 인터넷에서 특이한 디자인의 바지나 룩북을 슬쩍 보는 정도다. 지금은 전편에 언급했듯이 온라인 편집샵에서 잘 나간다는 국내 데님 브랜드들의 바지들을 접했고 몇 번의 시도 끝이 나에게 딱 맞는 브랜드를 찾았다. 그 이후로는 그곳에서만 데님을 구매해 오고 있다. 모든 핏이 잘 맞진 않지만 그럭저럭 만족하면서 7일 7 데님을 실행 중에 있다. 데님의 매력에 푹 빠졌으니 두 꼭지 글 가지고는 표현하기가 짧다는 느낌이다. 앞으로도 입고 느끼면서 데님에 대한 상념이 떠오르면 계속 적어봐야겠다.




2021. 04. 30 @하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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