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 시. 화장실을 가려고 방문을 열었다. 툭 바닥에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 고개를 돌려보니 어둠 속에서도 느껴지는 실루엣. 잘못 본건가 하고 3초 동안 바닥을 뻔히 응시했다.
뛰어오른다.
뛰어오른다?
검은 무언가가 뛴다. 생각보다 높게. 잘못 봤나?
재빠르게 형광등 스위치를 눌렀다. 바닥에 귀뚜라미와 사마귀를 섞어놓은 듯한 갈색 물체가 있었다.
어디서 많이 봤는데 그 뭐더라.. 몸에 연가시가 있어서.. 매번 혐오스러운 벌레 결승전에서 바퀴벌레와
1등을 다투는 걔 아닌가?? 더듬이는 길고 크기도 큰데 발도 빠르고.. 점프도 잘하는 그 친구.
'곱등이'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순간 몸에 소름이 돋았고 내 쪽으로 오는 그 녀석을 보고 재빠르게 방문을 닫았다.
'에프킬라, 에프킬라 어딨어.. 어딨지?' 그래, 꼭 찾을 때 없더라.
에프킬라는 그 녀석이 있는 부엌을 지나 거실로 가야 했다.
'그냥 방문을 닫고 잘까?, 그래, 잠깐 길을 잃고 우리 집에 들어온 착한 녀석이라 제 발로 나갈 수도 있잖아.'
아니 그럴 수 없었다. 괜찮지만 부모님이 있는 곳으로 갈 수도 있고 아침에 눈을 뜨고 그 녀석을 본다면 더 대환장 파티가 열릴 것이다. 마침 기묘한 이야기 시즌 1을 다 보고 자려는 참이었는데 아마 체험형 미드였나 보다. 거기선 사람보다 큰 얼굴 없는 괴물이 거실 벽지를 뚫고 나오던데.
나에게 가진 무기는 전기모기채. 근접해서 휴지로 잡는 전략은 쉽지 않아 보였다. 엄청 높게 뛰는 녀석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럴 용기도 없다는 것이 가장 문제였다. 최대한 빠르게 배드민턴 스매시 날리듯이 모기채로 내려찍어 못 움직이게 한 후에 지져버리자. 아이 캔 두잇. 군대에서 초소 벽에 붙은 대왕 거미들을 잡았던 기억을 떠올리자.
심호흡을 하고 방문을 살짝 열었다.
거실과 부엌 사이 그놈이 있어야 할 곳에 아무것도 없았다.
어디 갔지?
아까는 보고 도망쳤는데 이제 눈에 안보이니까 공포영화가 따로 없었다. 폴짝폴짝 뛰면서 어딜 간 건가? 숨을 죽이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의자 밑에 숨어있었다. 거리를 두고 최대한 민첩하게!
팔이 긴 게 이럴 때 도움이 되다니. 최대한 팔을 쭉 뻗어서 전기모기채로 그 녀석을 누르고 스위치를 켰다. '타닥타닥' 스파크가 튀는 소리.
'해치웠나..?'
한 서너 번 소리가 나고 당연히 감전사했을 거라 생각해 살짝 채를 들었다. 움직인다.. 그것도 꽤 빠르게..?
방에 들어올 것 같아서 다시 문을 닫았다. 곱등이는 전기에 면역인 건가? 혹시 불속성이 약점..? 라이터가 없어서 진지하게 물리 계열 공격을 생각해야했다. 안 쓰는 두꺼운 책자로 눌러버리기, 6kg 덤벨로 찍어버리기?
그러나 책하고 덤벨이 아까워서 보류했다. 살짝 문을 열어보니 그래도 전기가 통하긴 한 듯 가만히 있었다.
한번 더 빠르게 모기채를 갖다 대고 1분 정도 지졌다. 크기가 커서 계속 타닥타닥 소리가 났다.
죽은 것 같았다. 감전사보단 그냥 모기채로 눌러서 죽여버린 거 같았다. 물리 계열이 벌레 퇴치엔 직빵임을 다시 한 번 배웠다. 움직임이 멈췄지만 마지막 미션이 남았다. 저 큼지막한 시체를 치우는 것. 웬만한 벌레는 많이 치워봤는데.. 큰 곱등이는 처음이었다. 근데 새벽 세시가 되어가기에 잠은 자야 했다. 물티슈 여러 장을 시체 위에 투하해 감전사한 시체를 가리고 이건 벌레가 아니고 쓰레기를 주운 거라고 최면을 걸고 쓰레기봉투 밑바닥에 처박았다.
10분간의 사투가 한 시간 동안 느껴진 새벽이었다. 이마엔 땀이 살짝 맺혔고 가족들의 새벽 잠자리를 지켰다고 생각하니 나름 뿌듯했다. 이번 달 들어 가장 가정에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글로 남긴다. 이 날 이후 다이소에서 산 5000원짜리 전기모기채엔 '모스 칼리버'라는 이름이 붙었다.
2021. 10. 07